낙원의 밤, 통일감 없는 연출

Night In Paradise, 2021

by TERU

미리 밝혀드리는데 <신세계>를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한편입니다. 그때부터 박훈정 감독의 팬이 되었는데, 도무지 이 작품은 <V.I.P.>이후로 또 한 번 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박훈정이 시나리오를 쓴 <악마를 보았다>랑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굉장히 허무주의적입니다. 박태구(엄태구)는 상대 조직 북성파에게 시한부인 누나와 미취학 연령의 조카가 살해된다. 이에 남자 주인공은 북성파 보스에게 복수를 감행하고 제주도로 탈출합니다. 태구를 숨겨주는 무기상인 쿠토(이기영)의 집에 일주일가량 머물게 됩니다. 이때 쿠토의 조카인 재연(전여빈)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정을 쌓게 됩니다. 한편, 북성파의 2인자 마성길(차승원) 이사가 태구를 잡기 위해 조직원들을 데리고 제주로 내려온다는 스토리입니다.


대사가 있는 여배우들은 전부 불치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하는 시한부 설정을 들이밀 만큼 이야기 자체가 극단적입니다.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구성했음에도 영화는 장르적 쾌감을 전혀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장르를 구분 짓기 힘들 만큼 장르적 클리셰가 편의대로 취합했기 때문입니다. 태구와 재연이 감정을 쌓아가는 멜로 장면은 무뚝뚝한 연기 때문에 몰입이 방해됩니다. 또, 범죄 스릴러라기에는 서정적이고 멜랑꼴리한 분위기로 인해 전혀 긴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아르라고 하기에는 정치, 심리, 윤리적, 도덕적 규범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기에 그렇게 정의 내리기 힘듭니다.


박훈정은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들마다 극단적인 사연을 덧붙여 설명하고, 자극적인 장면에 의존해서 긴장감을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왜냐하면 코믹스 영화처럼 ‘장르적 쾌감’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작가주의 영화로 판단 내리기에는 작품 안에 작동하는 원리나 윤리가 불규칙합니다. 영화 오프닝부터 ‘예정된 죽음’을 상징하는 검푸른 색채감을 빼면 극이 통일성이 떨어집니다. 이러니 도구적이고 편의적인 진행이 다수를 이룰 수밖에 없고, '전형성'만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일관된 톤을 유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자대면에서의 서스펜스나 차량에서의 칼부림 등 좋은 장면이 더러 있지만, 영화 전체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런 무질서함은 액션과 서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캐릭터들은 거의 대부분 모호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이야기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느슨하게 진행됩니다. 결국 인물들의 설득력이 생기지 않으니 저절로 이야기의 공감도가 떨어집니다. 예를 들면, 전여빈이 슬픈 가족사를 늘어놓으며 삼촌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 연기가 어색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뒷장면에 전여빈이 엄태구를 침대로 유혹하는 시퀀스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창고에서 죽기 직전의 남녀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도록 방관하는 조직원과 약속에 집착하는 악당은 전혀 비장하지 않습니다. 애틋하지도 않고 처절하지도 않으니 그 마지막 10분의 복수극마저 카타르시스가 생성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낙원의 밤>의 최대 장점은 기존 범죄물에서 쓰지 않을 ‘일상적 유머’입니다. 엄태구의 뜬금없는 타이밍이나 전여빈의 예측불허의 언행으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또, 차승원이 맡은 마 이사가 메인 악역임에도 코미디를 담당하는 포지션 파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 (1.9/5.0)


Good : 나름의 윤리관이 확고한 마 이사!

Caution : 익숙한 기시감이 드는 131분!


●<낙원의 밤>은 ‘고어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수위를 나름 조절해서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여빈이 글록 계열 권총을 한손사격자세를 취하는데 1960년대 이후 양손 파지법은 지양하는 게 보통입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