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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3*바보 같은 행동의 위대함

《Squid Game 3·2025》

by TERU

㉠로튼 토마토의 팝콘이 엎어진 이유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시즌 2에 오징어게임에 다시 참가할 때부터 우승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동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대신에 오징어게임을 막겠다는 취지로 나아갔다. 게임을 포기하도록 다수의 참가자들을 설득하는데도 실패했고 결국 총을 집어들었다가 자신의 친구와 동지들을 잃었다. 이에 자책하다가 탄약찾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겁쟁이 11번 강대호(강하늘)만 쫓아다니는 모습은 조금 무리수였다. 물론 222번 아기를 만나 개심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고 예수 같은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만 말이다.


완결편이라고 황동혁 감독이 공언했지만, 그것은 홍보에 불과했다. 〈오징어게임: 아메리카〉를 제작 중인 넷플릭스는 IP가 손상당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의 참가 목적을 꺾어버렸다. 기훈은 시즌 2에서 오징어게임을 세상에 폭로하고 다시는 이런 비인간적인 데스 게임을 막기 위해 재참가했다. 주인공의 소망(오징어게임의 폐지)은 프랜차이즈를 꿈꾸는 넷플릭스에 의해 좌절된다.


성기훈은 프런트맨과 대립하지만, 시즌 3에선 흐지부지해버린 것도 마찬가지다. 황동혁 감독이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더 잘 살리고 싶었다면 프런트맨의 과거와 성기훈의 현재를 대비했어야 한다. 프런트맨이 타락하게 된 계기인 결승 전날에 칼을 건네주는 장면에서 그렇게 긴장감이 떨어지고 어설픈 대사를 배치해서는 안 되었다.


정리하자면 시즌3는 프런트맨을 소모시키지 않을 의도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LA에서 프런트맨이 누군가를 지켜봄으로써 〈오징어게임: 아메리카〉을 예고한다. 즉 프런트맨을 다른 시리즈에 출연시키기 위해 시즌 3에서 배제해 버렸다. 오징어게임 폐지를 외쳤던 성기훈의 바람은 공중에 붕 떠버렸고 주인공의 여정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렇다고 시즌 3에 성기훈만큼 시청자가 연민을 느낄만한 캐릭터들이 없었다. 222번 아기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미숙한 존재이며, 390번 박정배, 120번 조현주, 149번 장금자, 222번 김준희 모두 감정선을 쌓기보다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로 소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가 보고 싶었던 것이나, 카타르시스, 궁금증 해소는 〈오징어게임: 아메리카〉 등 후속 시리즈로 넘어갔다.


㉡시즌 3의 눈물겨운 분량 늘리기

(라틴어 문장의 뜻)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 차례다.

황동혁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시즌1의 구도에서 시청자가 예상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비틀었다. 시즌 3의 완성도가 떨어진 까닭은 〈기묘한 이야기 5〉의 제작이 지연되자, 그 공백을 막고자 시즌 2를 둘로 쪼개서 생긴 일이다. 제작사의 입장에 고려해서 시즌 2와 시즌 3은 서브 플롯을 늘려 장황해지고, 전개가 느려졌다. 진행요원 11번 강노을이 246번 박경석을 구하는 소위 북한녀 파트와 황준호(위하준) 형사가 형인 황인호(이병헌)을 찾는 도시어부 편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오징어게임은 뒷전에 놓이게 되어 참가자들의 생사를 다투는 스릴이 거세되었다. 게다가 시즌 3는 시즌 2의 목표인 오징어게임 주최를 막겠다는 것마저 포기했다. 이러니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카타르시스가 생길 수가 없었다.


또한 222번 아기가 등장하면서 아무리 상금에 눈이 멀었다고 참가자들이 아기를 죽이는 그림은 제외됐다다. 제작진도 시청자도 그런 패륜륜은 불편하니까까 말이다. 아기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긴장감이 사라지고 스토리가 무조건 아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이 예상되었다. 그것이 황동혁 감독이 그린 모든 노력을 ½으로 깎아 버렸다.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 임시완

2화부터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면서 44번 용궁선녀 같은 캐릭터들은 더 멋지게 활약할 수 있는 데도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로 소모되었다. 반대로 시나리오를 벗어난 연기를 보여준 역할도 있었다. 333번의 이명기(임시완), 그리고 124번 김남규와 100번의 임정대를 맡은 배우가 역할보다 더 밉상짓을 잘했다.


그럼에도 시즌 3의 서브플롯은 너무 헐겁고 평면적이었다. 북한녀 이야기는 진행요원 간의 내부 다툼을 위한 목적이었으나 도저히 강노을의 동기에 납득하지 못했다. 딸을 북에 놔두고 온 북한녀가 장기입원 중인 딸을 위해 참가한 246번을 동정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그거 하나로 목숨을 걸며 항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박 선장에 놀아나고 최 이사보다 감이 떨어지는 무능한 황준호는 어차피 마지막 회까지 형을 만나면 안 되는 그림인지라 계속 멍청한 짓을 반복해야 했다.


㉢바보 같은 행동의 위대함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하여 경쟁을 심화시키면 생산성이 향상되어 경제가 성장하는 메커니즘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기심을 긍정한 걸로 보이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정의 위에 축조된 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아파트를 계약하는데, 전 재산 같은 내 돈을 떼인다면 누가 하겠는가? 생면부지의 타인이지만 돈은 안 떼일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 즉 `신용’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하는 것이다. 사회정의가 작동한다는 선의와 믿음이 담보되지 않으면 돈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휴지 조각에 불과하게 될 수 있는 게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시즌 3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모두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속물들이라면 자본주의는 꽃을 피울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상품과 용역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쾌락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는 100% 이기심으로 운영될 수 없고, 인간은 100% 이타심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시즌 3의 사회상은 이기심을 조장하고, 성기훈 등 선역 캐릭터들은 알 수 없는 이타심의 화신으로 그려져 있다. 왜 이럴까? 시즌 3의 사상적 토대는 무엇일까?


염세적 허무주의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기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특히 6화에서 다수결을 비판하며 민주주의마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즉 인간을 불신하면서 인간다움을 찬양하는 모순을 범한다. 시즌 3의 게임들은 지난 시즌의 트롤리 딜레마 같은 윤리적 문제나 심리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전부`너 죽고 나 살자‘식의 논리로 살인을 정당화한다. 왜 살인은 성경부터 현대의 형법까지 금기시하는 걸까를 떠올려보면 시즌 3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평면적이고 불쾌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이고, 인물의 감정선에 몰입하지 못하게 방해하며, 만화 같은 비현실적인 VIP이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즌 3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과 애정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기훈은 `바보 같은 행동의 위대함’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그는 우리처럼 어떤 것을 선택을 할 때에도 손익을 계산하지 않았다. 시즌 1에서 성기훈이 이타적인 행동으로 참가자들로부터 인망과 신뢰를 얻어 생존했듯이 말이다. 《오징어게임3》는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이타심에 바탕을 둔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성기훈의 마지막은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투박하고 잔혹한 충격요법인 것이다.


★☆ (1.5/5.0)


Good :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를 위한 거대한 예고

Caution : 미드처럼 시리즈 장기화에 따른 동어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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