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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시대를 고찰하는 액션영화

One Battle After Another(2025) 노 스포일러 후기

by T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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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이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키우는 이야기를 따른다. 16년 전 혁명 단체 “프렌치 75”의 리더 중 한 명인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가 “자유로운 국경”을 외치며 멕시코 국경 근처의 구금 시설에 있는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로 석방시킨다. 이것은 프렌치 75의 정치 이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은 혁명 자금을 위해 은행을 털다가 실패하고 프로피디아는 체포로 결국 끝났고, 이로 인해 모두가 숨어들게 된다.


퍼피디아는 과거 스티븐 J. 록조 대령(숀 펜)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만, 결국 밥을 따라 떠났고 이에 스티븐은 두 사람을 추적한다. 16년 후, 월라가 실종되자 밥은 딸을 찾아 과거의 혁명 이력과 수년간의 약물 남용과 싸워야 한다.


Ⓐ대중성을 확보하고 진입장벽을 낮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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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의 영상 언어를 해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매우 정갈하고, 과시하지 않고 적절할 때만 쓰기 때문에 그것을 배열한 규칙을 발견하기 쉽다. 그런데도 한국 관객들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미국인만이 눈치챌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세부 사항을 빼곡하게 집어넣기 때문이다. 그 시기, 그 지역, 그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놓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다.


《원배틀애프터어나더》은 마치 음악처럼 느슨하지만 짜임새가 있다. 그 유려한 리듬감 덕분에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몰입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 정도면 3.5점짜리 액션 영화 정도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원배틀애프터어나더》는 정치를 논하지 않음으로써 현실 정치가 생각나게 하는 매우 진귀한 작품이다. 그 마법의 비밀은 사회정치적 맥락을 일부러 지움으로써 오늘날의 미국을 상기시키게 한다. 이것이 작품을 읽는 열쇠다.


토머스 핀천의 원작 소설 〈바인랜드〉에서 인물 간의 관계만 가져왔다. 예를 들어 모녀의 도주극을 부녀의 도주극 그리고 추적극으로 각색했다. PTA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오늘날의 미국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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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닉슨-레이건 시대를 조망하며, 부유한 백인 우월주의자들로 구성된 비밀 결사가 “안전하고 순수한”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인다. 이것만 들어봐도 트럼프 행정부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PTA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병이 발병한 닉슨-레이건 시대부터 시작되었던 복지 축소, 무너진 공교육, 치솟는 의료비로 인한 마약 중독, 감세로 인한 양극화, 제조업의 몰락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시작된 미국병이 트럼피즘을 낳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뉘앙스를 풍기며 현재 미국병인 파시즘(트럼피즘)을 조롱하고 풍자한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경제적 궁핍을 겪자 분노에 찬 국민들에게 약자(유태인, 이민자, 유색인종)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그 불만과 분노를 잠재운 파시스트들은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대동아공영권)”를 외치며 2차 대전을 일으켰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이민자 추방, 인종 갈등, 백인 우월주의, PC(정치적 올바름)를 부추기는 트럼프가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꾼 것은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끝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도 모두 그걸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가 최근 군대를 연달아 투입하는 게 심상치 않다)


영화는 이런 원작을 싹 정리했다. 딱 한 명의 파시스트로 압축했다. 그게 악역 스티븐(숀 펜)이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파시즘의 부활을 그대로 담고 있는 캐릭터다. 그가 군인이라는 점에서 전쟁을 부르는 파시스트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조지 C. 스콧이 연기한 강경파 장군 “잭 D, 리퍼”가 모티브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고 비교하는 게 당연하다. 두 작품은 모두 파시즘을 조롱하는 풍자 코미디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가상의 도시 박탄 크로스(Baktan Cross)에서 영화가 펼쳐진다. 마치 미국 전체를 형상화놓은 곳처럼 다가온다. 또 영화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뻔뻔함, 〈플라워 킬링 문〉의 얼빵함을 뒤섞은 희극 연기를 펼친다. 딸을 구하겠다는 일념 외에 대놓고 망가지기로 했는지 혼신의 코미디를 펼친다. 철저히 망가져줬기 때문에, 심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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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백인 우월주의자 스티븐이 쫓는 여성이 유색인종인 퍼피디아과 윌라라는 아이러니가 핵심이다. 퍼피디아가 낳은 딸 윌라가 혼혈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미국인은 허상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진짜 미국인은 백인들이 유럽에서 건너 오기 전에 원주민들 아닌가? 피부색, 성별, 국적 같은 선천적인 요소로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조소한다.



Ⓑ60년대를 그리워하는 히피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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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구하는 아버지 이야기에서 딸 월라(Willa)는 미래를 의미한다.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친구들에게 아빠 같은 방식으로 위협하거나 밥한테 대들 때는 둘이 똑같다. 부녀의 닮은 꼴은 미래의 미국도 현재의 미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시킨다. 즉 과거가 현재의 주인공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줄거리는 건국의 아버지때부터 뿌리 깊은 인종차별, 근본주의 개신교, 총기 사용의 유산이 현재의 MAGA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세대, 역사, 국가의 이야기로 읽힌다. 원주민 때려잡던 미국 조상님의 업보가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제목을 "연이은 전투"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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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자신의 오비완'이라고 소개하는 가라데 사범 '카를로스(베네치오 델 토로)'는 불법 이민자들을 돕고 있다. 그는 밥도 돕는 조력자인데 히스패닉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불법이민자 중에서도 가장 다수이고, 미래의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아질 계층이기 때문이다. 밥에게 빈민층과 농민을 구한 멕시코 영웅 에밀리아노 사바타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영화에서 양비론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중립적인 방관자는 허용하지 않고 모든 캐릭터가 자기가 믿는 신념을 관철하려고 노력한다. 약자를 해방시키는 혁명가 일당이 되든지 인종적으로 순수한 미국을 만들려는 엘리트 모임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을 돕는다. 관객들에게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정하라고 귀띔한다. 물론 극좌이든, 극우이든 우리 인간처럼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미래의 새싹에게 들려주는 미국병을 낫게 하는 백신은 “연대”와 “공존”이라고 일러준다. 더 나은 세상은 우리가 뜻을 모으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것을 제일 먼저 실천하는 곳이 '가정'에서부터라고 것이다.


이건 히피들이나 할 법한 이상론은 미국이 제일 잘나갔던 1940-60년대 그 시절에 통용되던 것들이다. 실제 60년대 혁명단체를 탄압한 FBI의 프로그램이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근거한 것들이 많이 나온다. 이 시기의 미국인들이 제일 정상적이었고 미국 정치가 덜 썩었으며 흑인 민권운동, 페미니즘, 원주민 사과에 모두가 진심이던 미국의 전성기 말이다. 그때의 감각을 위해 60년 동안 쓰이지 않은 비스타비전 카메라와 35mm 필름으로 촬영하였다. 그런데 음악은 70년대 노래를 가져다섰다. 스틸리 댄의 "Dirty Work", 탐 페티의 "American Girl", 길 스콧 헤론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같이 말이다. 60년대 80년대, 10년대 노래도 흘러나온다. 조니 그린우드가 쓴 스코어 역시 라디오헤드와 클래식이 결합한 절충주의 스타일로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규모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액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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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존 윅〉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 액션 영화는 본 시리즈가 어지럽힌 카메라를 다시금 삼각대 위에 올려놨다. 그러한 기법과 한 세대 전의 형식을 계승한 《원배틀애프터어나더》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추격전과 도주극을 뼈대로 삼았다. 그 추격전의 모델은 〈프렌치 커넥션〉이고, 수색과 도주극은 존 포드의 〈수색자〉, 〈미드나잇 런〉이다. 전직 혁명가 부모와 자식의 대물림은 〈허공에의 질주〉이며, 그 혁명에 대한 묘사는 〈알제리 전투〉로 극 중에 중요하게 언급된다. 그리고 도주극과 추격전 사이에 총격전을 배치해놔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한 연유는 "총기"문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기 하기 위함이다.


어쨌든 PTA은 고전에서 영감을 얻고,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의 내러티브 방식을 활용한다. 〈부기 나이트〉처럼 영화는 쉽고, 장면을 짧고, 카메라는 훨씬 동적이다. 이야기할 분량이 두꺼워질수록 장면이 길어지지만, 〈매그놀리아〉처럼 드라마의 층위를 효율적으로 압축한다. 예를 들어 〈매그놀리아〉에서 세 명의 이야기가 겉보기에는 관련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미치며 줄거리가 한데 모인다. 〈매그놀리아〉의 편집 기술을 통해 동떨어진 이야기를 절묘하게 병합하거나 대조한다. 정치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의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인 것이다.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스펙터클한 규모에 얽매이지 않는 액션 영화를 완성했다. 두 개의 차량 추격전을 중심축으로 여러 번의 총격전을 끼워 넣고 그 빈 공간에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게 쪼개어 넣었다. 혁명 단체, 백인 우월주의자의 엘리트 비밀 결사 등 여러 개인과 집단이 사상적·이념적 충돌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딸을 구한다는 게 말이 되게 한다. 동떨어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각의 플롯을 하나의 통일된 내러티브로 귀결되는 게 신기하다. 말이 쉽지, 입이 떡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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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블, DC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코믹스 감성에 집착하는 동안, PTA는 CGI-그린 스크린 합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미국병을 정확힌 진단하고 그 처방전까지 관객이 알아듣기 쉽게 전한다. 속편이나 시리즈에 욕심내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를 위해 촬영, 편집, 연기가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관람하는 것에 최적화된 움직임 덕분에 극장을 나서면 그제서야 메시지가 뒤따른다. MAGA와 트럼피즘을 피부로 체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전하기 때문에 마음껏 떠들고 웃을 수 있다. 어차피 허구라고 쓰고 현실이라고 읽을테니까


★★★★★ (5.0/5.0)


Good : 상황을 엉뚱하지만 우리 현실과 닮아 있어 웃기고 신난다.

Caution : 미국의 MAGA, 총기문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재밌다.


●솔직히 《원배틀애프터어나더》의 평점을 고민하면서 10점 만점과 9점의 차이가 뭘까 꽤 고민했다. 그리고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PTA가 감독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차기작 예산 확보가 쉬워질 테니 말이다. 숀 펜도 3번째 오스카 트로피가 유력해 보인다.


■프렌치 75는 칵테일 이름이다. 1차 세계 대전에 프랑스 육군이 쓰던 75mm 야포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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