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우리가 이렇게 비슷한 면이 많았던가'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키득키득 웃었어. 너랑 알고 지낸 지 대충 6년 정도 됐는데, 역시 사람은 오래 알고 봐야 맛이고, 글은 써봐야 맛인 건가 하는, 농담같은 고찰을 해보며, 2주가 아니라 두 달만에 쓰는 듯한 이 글을 시작해 봅니다.
나도 평창에 다녀온 게 몇 달은 된 일처럼 느껴져. 사소하지만 신기하다 여겨진 너와의 첫 번째 공통점이 바로 '갑자기 바빠졌다'는 점이거든.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내가 언제나 바쁜 줄 알고, 나도 그냥 그렇게 여겨지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야. 난 어떻게 보면 뭐든 서두르는 법이 없는 참 느긋한 인간인데,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삶을 빈틈없이 채우지 못해 안달하기 시작했던 걸까를 가만히 고민해본 적이 몇 번 있어. 근데 놀랍게도, 그냥 대충 태어날 때부터 그랬더라고. '다은이는 참 바빠'라는 말을 초등학교 때도 들었었거든. 가장 친한 친구를 서운하게 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 이런 내가 유별난 거라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그런 종류의 사람인 거지 싶어. 사람이 살아가는 덴 다양한 목적이 있겠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인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도,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도 (그런 게 있다고 가정하면) 아마 어느 정도 자기확인을 위해 각각 선행과 악행을 하는 것일 거야. 같은 심리를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몸과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부류인 거고, 그러다 가끔 지칠 때면 스스로가 스스로이기 위해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부류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하지. 그래서,
지난 6개월은 내게 독특한 시간이었어. 공교롭게도 나뿐 아니라 전인류에게 일종의 특이점이 온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었다지만, 난 할 일이 없어서 집에 있었어. 어찌나 할 일이 없는지, 매일 밤 '내일 뭐 하지'라는 생전 해본 적 없던 고민을 할 때마다 한껏 짜릿했다구. 그러면서 대충 알고 있었어. 나는 나랑 28년을 함께 지내온 만큼 나란 놈을 잘 아니까, 이 놈 이렇게까지 한가하다니 머잖아 어지간히 바빠지겠구만,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칼로 베듯, 내지는 미리 계획이라도 한 듯, 정확히 6개월을 놀고 7월인 지금은 이렇게 일을 하고 있네. 어쩌다 보니까, 그야말로 소 뒷걸음치다 보니까, 매일 출퇴근과 이 글을 연재하는 일을 빼고도 네 종류의 정기적인 일정이 생겨버렸어.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이거 가능할까 싶었는데 어떻게 아직까진 무리가 없네. 그리고 사실은 되게 신나. 역시, 바쁜 게 짱이야. 그런데 신기한 건
하루아침에 생활의 밀도가 달라져버렸는데도 마음의 여유는 그대로라는 거야. 마음에 큰 부담이 될 만한 일들이 아니어서 그런가, 역시 교회 사역을 안 해서 그런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기쁨은, 여전히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고 있다는 거야. 이것 때문인 건가? 실은, 읽고 싶은 책들을 신나게 읽다못해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읽으려고 독서모임을 하나 시작했어. 아직 공식 모임은 한 번밖에 안 했지만, 이게 나 스스로에게 괜히 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모임에서 내가 원하는 대화들이 오가고 내가 바라는 지적이고 심적인 위로를 얻을 수가 있을까 걱정했던 게 반대로 된 예측이었나 싶을 정도로, 딱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모습의 모임으로 진행되고 있어. 책을 읽다보면 생겨나던 고민과 의문들, 내가 믿는 두 가지 신념이 서로 충돌하는 순간의 난감함, 책에 담긴 사상이 가리키는 세상 앞에 선 내 모습의 초라함 같은 것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어두움이 금세 해결되는 걸 느꼈어. 그래서 언제나처럼 무대포로 일단 일부터 벌리고 본 나와 함께해준 그 친구들한테 참 고마워. 그리고 이 감정은 지금 이 시리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다짜고짜 너 나랑 글 쓰자, 들이댄 나한테 너도 꽤나 흔쾌히 응해줬으니까. 여기에 글을 쓸 때면, 일기를 쓰거나, 순간순간 깨달은 것들을 메모하거나, 책이나 영화의 리뷰를 쓰거나, 편지를 쓰는 때와는 또다른 분명한 기쁨이 있어. 왠지 내 삶이 지금 평안하다는 사실을 정리하며 확인하는 느낌. 설령 우울과 자괴감에 허덕이면서 쓰는 때라도 말이야. 그래서 이 글만큼은 꼭 여유가 있을 때 내 방 책상에 앉아 조용히 집중해서 쓰려고 해. 문장을 멈출 때마다 내 10시 방향에 앉아 목을 한껏 뺀 채로 선풍기 바람에 살짝씩 흔들리는 몬스테라 화분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마침내 다이어트에 관해서 얘기해 볼까. 사실 너한테는 명함도 못 내밀 다이어트 실력이지만 경력으로만 따지면 우습게도 거의 이십 대 내내 그놈의 것을 내려놓았던 적이 없어. 그렇게 돌고돌아 결국 같은 몸무게일 거면 그냥 이십 대를 편하게 살 걸 그랬지 싶은 생각과, 그나마 그것마저 안 했으면 지금 내 몸은 훨씬 더 최악이었을 거야 하는 생각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그래서 나는 더욱 화가 나고... 자, 누가 인정을 해주든 안 해주든, 나는 모든 일에 제법 열심인 사람이야. 모든 일에 제법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는 편이고. 근데, 정말이지 다이어트만은 예외더라. 나한테 다이어트는 블랙홀 같은 놈이야. 식이조절이니 운동이니 마인드컨트롤이니 다 때려부어도 전부 그냥 꼴깍 삼켜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물론 그렇게 말하기엔 내가 어떤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을 만큼 다이어트를 지속적으로 열심히 한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왜 그런 줄 알아? 그 의지와 끈기도 다 그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거든! 나 다이어트에 대해서 얘기하면 상당히 예민해지기 때문에 좀 끊어가야 돼. 후. 침착하자.
일단, 원래 나는 운동 같은 걸 하는 인간이 아니야. 물론 외향적인 성격에다 언제나 새로운 것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절대 집에 짱박혀 있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란 말이야. 내 고질병은, 몇 년 째 운동을 해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 죽겠다는 거야. 운동을 하면 나 자신과 몸에만 집중할 수 있고, 뿌듯하고 상쾌하고... 그런 긍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들어왔고 나도 느껴본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있어 책 읽는 기쁨, 공부하는 기쁨에 비해서는 아주 택도 없는 수준이거든. 그러니 나에게 한 시간이 있다고 치자. 그럼 난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는 편을 택하고 싶지, 굳이 그것보다 덜 기쁜 운동을 하고 싶지가 않은 거야. 내가 매일 고작 30분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항상 이 마음과 싸워야만 해.
내가 아마 가수나 배우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을 뺐겠지. 고3 땐 고도비만이 되고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도록 공부만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덜 행복'해가면서 살을 뺄 이유가 없다고 느끼고, 그런 사실 때문에 항상 다이어트를 금세 때려치고 말아. 가끔 거울 속의 내 모습, 내지는 모니터 앞의 나 자신이 지나치게 건강하지 못하고 한심하게 보일 때가 있지. 또는 멋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입고 싶은 예쁜 옷을 볼 때, 그럴 때면 오조오억 번째로 다짐을 해. 정말로 살을 빼겠노라고. 그러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이 달라지지. 지금 이걸 먹고 행복한 편이 이걸 안 먹고 불행하게 날씬해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래. 내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지. 와구와구. 너무 진부해서 굳이 다 적을 필요도 없는 패턴이지.
그런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셨으니, 그 이름은 바로 척추측만. 평생 멀쩡하다고 믿었던 내 척추가 휘어져있고, 다리는 한 쪽이 다른 쪽보다 3센티미터 짧고, 그래서 옆구리와 고관절에 만성적인 통증이 있다는 걸 알게된 건 작년 초였어. 그 때부터 살을 빼고 싶든 안 빼고 싶든 운동을 며칠만 거르면 곧바로 고관절 통증이 심해지는 몸이 됐지. 어찌나 운명적인지. 진심으로 이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나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운동을 안 했을 거고, 매일 새벽 야식을 먹다가 건강을 다 해쳤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안 하면 아파서야. 아직까지 운동은 내게 즐거움이 아니야. 그저 해야 하니까 할 뿐. 고관절 염증이 심해지면 걷거나 서있기는커녕 앉거나 눕는 것마저도 고통스럽다는 걸 경험해봤기 때문에... 작년 국내선교 때 제주도에서 애들이랑 즉흥적으로 했던 플랭크 대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단조절을 하는 이유도 명확한데, 조절을 안 하면 폭식하기 때문이야. 그다지 조절에 능하지는 않지만, 나란 인간이 너무 극단적(으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예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라는 마음으로 식단을 철저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하루종일 먹기만 하거든. 그래서 재밌게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는 편이야. 내가 엄청 잘 먹는 줄 아는 사람들, 또는 내가 되게 절식하는 줄 아는 사람들. 둘 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세기의 미스터리. 그럼 대체 나는 왜 살이 안 빠지는 걸까요? 아무리 정상체중이어도 이 정도면 좀 빠져야 되는 거 아닐까요? 이 질문은 내일 또다른 두 명의 다이어터를 만나 방을 하나 잡고 시켜먹을 각종 배달음식 형제들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 진짜로 잡아놨어. 내일 사진 보내줄게.
자우림 뮤직비디오 너무 좋더라. 내가 매직 카펫 라이드 미친 듯이 부르던 때는 초등학생 때였는데... 뮤직비디오 주인공이랑 김윤아랑 나란히 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떠오른 한 영화의 장면이 있는데,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이라는 일본 영화야. 전형적인 일본 슬로우 무비인데, '떠나고 싶다'거나 '힐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 중의 하나. 일본 영화 특유의 황당한 개그코드들이 편안하게 탁 트인 화면 군데군데를 채우는데, 자우림 뮤직비디오에서처럼 두 여자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와. (다만 일본이다보니 운전석과 조수석이 반대라는 차이점) 거기서 운전석에 있는 여자가 조수석에 있는 여자한테 약도에 써진 걸 좀 읽어달라고 하거든. 근데 그 약도에 써진 글이 예술이야.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가면 거기서 오른쪽입니다." 묘하게 괜찮은 설명인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절대 목적지를 찾아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한 이상한 말이지. 다만 꽤 상징적이잖아. 살면서 나름의 신념을 밀고 나가다보면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이 반드시 오는데, 거기서 조금만 더 참고 가보자는 것. 그 불안을 느끼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딱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인생의 시계에서 딱 2분 정도만 더 참고 가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지. 그러니까 나 진짜 2분만, 다이어트 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