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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meralda Jul 05. 2020

008 26세에 시작하는 '나를 위한 삶'에 대하여

제목을 써놓고 시작하니 삼류 자기 계발서 같네요..

 저 또한 우리 약속한 마감날을 간당간당히 지키는 것이 의례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ㅋㅋㅋ

 와우 언니 길게도 썼는데, 진짜 기행문 보는 것 같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이 교환 에세이 저만을 위한 한 작가의 헌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족스러워라

 평창에서의 둘째 날이 뭔가 힘들었군요, 어쩐지 첫날은 언니가 재잘재잘 카톡 해주다 둘째 날은 툭 끊기길래 무슨 일 혹시 있는 건가 했어요. 저 또한 평창은 두 가지의 감정이 동시에 계속 드는 애매함이 있었는데, 하나는 물 좋고 산 좋은 휴양의 평안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화제의 부실함이 준 안타까운 불편함이었어요. 교통이 좋지 않으니 영화 시간을 헐레벌떡 맞춰왔는데 안내받았던 사실과는 다르게 영화 티켓 구매처는 저 건너편 건물에서였다던가, 더위와 짜증에 찌들 대로 찌든 스태프들의 불친절이라던가, 상영하고 있는 스크린으로 중간중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로 인해 때아닌 불빛으로 방해를 받은 것들이요. 이밖에도 영화의 질 측면이나 영화 관계자의 모습들에서도 씁쓸함이 꽤 있었네요. 이런 점들을 영화제의 묘미라고 일컫는다면 저는 다른 영화제를 또 가보고 싶어요. 그때는 저도 자고 올 수 있는 깡을 주시기를! 합!


 사실 평창을 갔던 게 몇 달 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저는 이번 주가 복작복작했습니다. 3주가 채 남지 않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마감날을 얼마 전에 알아버려서요, 욕심은 불끈불끈한데 빠른 시간 안에 곡들을 녹음하고 영상으로 담을 순발력은 전혀 없더랍니다.. 자작곡 4곡 음원과 실연하는 영상, 커버곡 음원이라니 매일 일어나면 두유를 뜯는 루틴에 피아노 덮개를 벗기는 것이 추가가 되었네요.

이럴 때마다 스스로 '나 참 웃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 그렇게 바빴으면 좋겠다고 바랬던 날들이 있었는데 막상 바빠지니 자기 연민이 드는 거예요.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 원래 늘 바쁜 줄 알겠어요. 근데 진짜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알아요.. 그리고 그렇게 아는 게 편해요.


  언젠가부터 누군가와 사적으로 만나는 일을 피하고 싶어 졌어요. 자꾸 사람을 만나는 일에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전화받는 것조차 어려워져요. 가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어 지는데, '내가 편하면 됐지 뭐' 하는 귀차니즘이 모든 불안감을 덮어주죠.  남의 시선 의식하는 게 익숙하고 매사에 먼저 걱정하고 먼저 불안해하며 살던 저에게 이런 측면에서는 20대 중반의 삶은 꽤나 신선합니다. '나'가 먼저가 되는 삶, 이제 어설프게나마 실천하고 있어요. 아직 겪어보지 않은 삶의 방식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30대는 얼마나 재밌을지 40대의 우지원은 또 얼마나 새로운 매력을 지니고 살지 기대가 됩니다.


 26세로 사는 것이 유독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운동이 재밌어졌다는 것인데요, 요즘 다이어트를 하면서 스스로 정한 룰이 있어요. 그게 뭐 나면 1200칼로리 이상 음식물을 섭취했다면. 초과한 칼로리만큼 꼭 운동을 해서 하루 섭취 칼로리를 지키는 거예요. 오늘 같은 날이 그런데요. 오늘 좋아하는 쌈밥집에 갔는데 이 집의 가장 핫한 메뉴인 제육쌈밥을 뒤로하고 간을 안 했을 삼겹살 쌈밥을 주문했는데, 세상에 양념된 삼겹 볶음이 나온 거예요. 그것도 한 달 전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당면 사리와 함께... 치팅데이는 예고치 않고 불현듯 오는 것인가요? 맛있게 먹고 초과한 만큼 스쿼트 조졌습니다. 유산소를 해야 맞지만 밤에 집 안에서 하기는 어려웠거든요. 필라테스를 한 지 6개월이 넘어가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운동한 직후에는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통증이 심해서 그걸 풀어주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뫼비우스 같은 운동의 사이클이에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해장술 같은 걸까요...? 아무튼 이렇게 운동하면서 점점 나 자신이 좋아져요. 운동 자체가 재밌다기보다는 이전까지 죽어도 하기 싫은 운동을 '나'를 위해 기꺼이 시작하는 내 모습이 좋아요. 오래전부터 다이어터였던 언니라면 공감하리라 예상합니다.


 운동이 좋아지다 보니 또 따라오는 좋은 점은 나쁜 일에 대해서 자주 금방 잊곤 합니다. 이게 무슨 연관성이 있겠냐 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너무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더라고요. 운동을 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그 부위에 대해 계속 집중하다 보니 운동이 끝나면 힘들었던 감정들이 조금 가셔요. 그리고 며칠 뒤에 생기는 작은 근육에 기뻐하고. 그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두 번째는 싫은 것을 바로 싫다고 이야기하는 기쁨이에요. 점점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렷해지는 것이, 자기 의사를 제대로 밝힐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에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울면서 '사실은~' 하는 사람만큼 곤란한 사람도 없더라고요. 음악 하면서 누군가의 부탁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락발라드 밴드의 객원보컬을 부탁받았을 때, 전혀 락발라드를 즐기지 않는데도 그저 나라는 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해준 사람의 마음이 고마워서 해치지 않고 싶은 마음에 덜컥해버리겠다고 해놓고, 아무리 연습해봐도 나랑은 안 어울리는 음악 성향임을 뒤늦게 안 거죠. 앨범 녹음 일주일 전에 '사실은~'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요. 생각만 해도 무례합니다.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자작곡에 터무늬 없이 '할퀴어도 괜찮아' 같은 구시대적인 제목을 밀어붙이려는 대표님에게 "진짜 별로예요"라고 말하는 내 모습, 진짜 낯선데 진짜 좋습니다. 이 좋은 것 왜 모르고 살았는지. 뭐든 조금이라도 주저되면 말해야겠다 생각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갈되지 않은 감정 찌꺼기들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아주 고운 입자들의 감정 찌꺼기들은 결코 쉽게 걸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쌓여서 결국 존재감을 드러내곤 합니다. 과거에 누군가에게 남겼던 자잘한 상처들, 판단받았던 말들, 모두가 알았지만 묵인했던 내 거짓말 따위의 것들이요. 26세의 풋풋함은 이 쓰레기의 문제 해결까지는 통달하지 못하기에 잘 가다가도 울고, 괴로워합니다. 28세에도 그럴 것 같은데 별다른 방법이 있나요? 있다면 답해주시기를. 근데 언니가 요전에 말했던 자기가 했던 말 자꾸 잊어버리는 거, 본인은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있겠지만 그것도 정신건강에는 어느 정도 좋지 않을까 했어요 ㅋㅋㅋㅋ 언니는 자기가 한 말을 왜 잊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저는 바로 어제 나온 신곡, 자우림의 [HOLA!]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마칩니다. 뮤직비디오를 꼭 보시기를, 중학교 때 미친 듯이 불러젖혔던 매직카펫 라이드의 그 김윤아가 재현되었어요. 내 학창 시절을 빛낸 저 디바가 여전히 26세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네요. HOLA는 오늘을 살아가는 주문이래요. 주문을 외우고 잡니다. 눈 뜨면 만날 오늘도 적당히 기쁘게 해 주세요 HOLA!!

잊지 않고 찾아와 준 내 학창시절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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