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쓰든지 덜 쓰든지 했어야 했는데 실패함
우선 답이 늦어서 미안해. 정말이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렸네, 언제나처럼.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평창에서의 이박삼일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꿈처럼 느껴져. 좋았던 시간이라서 그런 거지. 거기서 본 작품들의 리뷰를 곧장 다 업로드하고 싶었는데, 와 쉽지 않더라. 나 요새 스스로가 되게 웃겨. 아무도 나에게 청탁을 하지 않았는데, '써야 하는' 어떤 글도 없고 '읽어야 하는' 어떤 책도 없는데 희한하게 읽고 쓰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어. 그래서 요새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해. 뭐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차피 하루에 몇 시간씩 글 쓰고 사는데 이대로 굶어죽지 않으려면 그렇게 쓴 글로 돈을 벌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거지. 글을 쓰는 건 전혀 지루한 일이 아니라서 '글 쓰는 데 걸리는 시간' 같은 걸 딱히 생각해본 적도 나는 없는데, 막상 해보면 물리적인 시간이 꽤나 소모되는 일이더라고. 요새 부쩍 느끼네. 근데 또 내가 느낀 걸 글로 옮기는 데 필요한 타이밍이라는 게 있어서 써야겠다 싶은 때로부터 너무 멀어지면 안 되는데 이걸 쓰다 보니 저게 멀어져가고, 저걸 쓰기 시작하면 그게 멀어져가고 막 그래. 내가 그만큼 요즘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며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뭐, 난 행복해.
평창에서의 얘기를 우선 안 할 수가 없겠지. 머무는 동안 틈틈이 조금씩 적어뒀던 메모들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면서, 또 어느 정도 다른 이야기들도 곁들여볼게. 큰일이네. 오늘 글도 길어지겠다.
#첫날
곧 하차. 낮게 깔린 구름이 산과 맞닿아 있다. 커다랗고 두꺼운 구름이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온통 덮고 있다. 구름이 비어있는 몇몇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연한 하늘색이다.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느샌가부터 강원도였다. 많이 와보진 않았지만 끝없는 산맥을 옆에 두고 도로를 달려갈 때의 그 느낌, 수도에서 멀어졌지만 위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동쪽 나라의 느낌이 있다. 아빠가 ‘진짜 소나무’라고 했던 붉은 줄기의 소나무들이 떼를 이루고 서있는 게 보인다. 비가 오거나 오지 않을 날씨, 먹구름인 듯도 아닌 듯도 한 애매하게 어둑한 구름의 군집이 이곳에 도착한 나를 처음으로 맞고 있다. 돌아가는 기차표와 이틀 밤을 묵을 숙소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 오늘 밤과 내일과 그 다음 날, 이 구름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켜봐야겠다.
첫 영화를 보러 알펜시아 리조트로 셔틀을 타고 이동 중. 금요일 오후인 지금 아직은 사람이 많이 없다. 한적한 대관령의 한가한 손님인 나와,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곳곳에서 대기 중인 많은 사람들.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도 부담 없고 반갑다. 산과 안개와 구름은 끝이 없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비가 내린다기보다는 구름 속을 지나가며 물기를 맞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여행을, 특히 혼자 여행을 할 때면 꼭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들을 계속 메모하는 거야. 책은 가급적이면 그 여행지와 관련 있는 작가의 책을 가져가는데, 그렇게 해서 여행 중간중간 그 책을 읽으면 나중에 꼭 그 여행지를 떠올릴 때 그 작가가 함께 떠오르면서 독특한 추억이 되거든. 뭔가 좀 촌스러운 방법인 것 같기도 하지만 가령 후쿠오카에 갔을 땐 나쓰메 소세키 책을 들고 가서 틈틈이 읽으면서 소세키 생가에도 가보고, 내가 가져간 책의 실제 배경인 산에도 가보고 그랬었어. 암튼 이번에 평창에는 평창이랑 관련된 책까지 가져가진 않았고, 정해진 기한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 하나 있어서 그냥 그걸 가져갔어. 위에 첫 단락은 아마 적자마자 통째로 너한테 보냈었지? 그 뒤로도 하루 동안 주저리주저리 계속 적어나갔었단다. 첫날에는 부지런히 메모를 해서 꽤 긴 글이 남았는데, 바로 둘째 날부터는 별로 적은 게 없다. 이따 얘기하겠지만, 둘째 날엔 사실 기분이 좀 별로였어.
첫 번째 영화인 <토니 드라이버>를 보고 나와, 셔틀을 타기 전까지 빈 시간 동안 앞 건물에서 진행 중이던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마스터클래스를 잠시 들었다. 난 늦게 들어와서 몰랐는데, 기술적인 문제로 영화가 도중에 상영이 중단된 모양이었다. 클래스가 모두 끝난 뒤 출구에서 표를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주행사장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조금씩 흩뿌리던 빗방울은 다 사라지고 하늘이 맑게 갰다. 습기가 높은 푸르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차에 타고 있자니 국내선교 때 생각도 난다. 농사일을 돕기 위해 몸빼바지에 썬캡, 팔토시며 목장갑까지 완전무장하고 트럭 짐칸에 올라 농지로 이동하던 그때. 도시의 여름과 농촌의 여름은 같은 해 같은 달에도 완전히 달랐다. 시골에서는 아무리 더운 날이어도 항상 어디선가 불어오는 초록의 바람이 있다. 밤이면 추울 정도로 서늘해지고, 그 서늘함에는 적막함도 꼭 한 몫을 한다. 서울은 사람이 많아서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서울을 떠나보면 어쩜 이렇게까지 땅이 넓고 사람들이 드문지 신기하게 여겨진다. 다들 그렇게나 따닥따닥 모여 살 일인지 말이다.
구름이 많아서 구름 너머로 보이는 해가 마치 보름달 같다. 똑바로 쳐다봐도 새하얗기만 할 뿐, 눈이 아프지 않다. 평창 영화제, 이곳 대관령은 아무래도 서늘함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쓴 글에 내가 또 코멘트를 달자니 뭔가 자의식 과잉을 한번 더 과잉시키는 것 같고 되게 뻘쭘한데, 아무튼 보다시피 저 날은 참 추웠다 이거야. 진지하게 여기서 옷을 한 벌 사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 왔다. 서울이었다면 아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을 근사한 카페. 낮고 길게 누운 형태의 외관(외관이라고 해야 할지 인테리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사방이 뚫려있는 독특한 구조다)이 멋져서 들렀는데, 커피향마저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매혹적이었다. 금방이라도 커피를 달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달싹이는 입을 겨우 달래 밀크티를 주문했는데, 처음 한 입을 먹자마자 깜짝 놀라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카운터를 쳐다보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쳐 머쓱해졌을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었다. 카페인에 워낙 취약한지라 커피를 피하기 위해 카페에 가면 자주 주문하는 메뉴 중 하나가 밀크티인데, 얼그레이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등의 티백을 사용하는 보통 카페들과 달리 아쌈 밀크티라고 적혀있어 살짝 우려를 했건만, 앞으로는 아쌈 밀크티만 찾아다니며 마시게 생겼다.
약 30분 뒤 이 카페가 문을 닫으면, 영화를 한 편 볼지 일찍 숙소로 돌아가 쉴지 고민 중이다. 친구가 보내온 링크를 통해 이슬아 작가의 글을 한 편 읽고, 읽은 김에 그의 다른 인터뷰도 좀 읽고, 그러고 나니 어쩐지 눈물이 그렁해진다. 좋아하는 것을 순수한 열정과 끈기로 따라간 그의 모습에, 머잖아 아스팔트 바닥까지 내려올 것만 같은 저 창밖 산 너머 짙은 연무의 몽롱함에, 조용한 카페에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소리에, 마음이 그냥 좀, 그렇게 돼서.
참 현장성이라는 게 좋지. 글을 잘 쓰고와는 상관없이, 참 사소한 내용인데도 당시에 적은 글이라 나도 지금 다시 읽으니 무척 생생한 게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 행복해지네. 원래 행복은 현재에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중에 돌아보며 그때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거라던데, 난 저때도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어.
하늘을 덮다 못해 땅으로 잔뜩 내려앉은 구름이 진짜 장관이더라. 저렇게 하늘을 온통 덮고 있으니 더울래야 더울 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 보여? 정말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두꺼운 구름이지. 아무튼 난 저 글을 쓴 뒤에 어느덧 깜깜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어. 잔디밭에 캠핑용 의자에, 분위기 참 좋았는데, 빗방울도 떨어지고 너무 추워서 금방 숙소로 들어갔어. 그리고 밖에서 상영하던 영화를 침대에서 아이폰으로 마저 봤단다. 왓챠플레이에 있었거든. 웃기지.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숙소 발코니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더라. 시원하지만 구름이 잔뜩 껴있던 어제와 달리 맑게 갠 날씨에 오늘은 더 좋은 하루가 될 거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제의 그 카페에서 기분 좋게 콜드브루를 한 잔 마시면서 큐티책을 펴고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큐티책을 숙소에 두고 온 걸 깨달은 바로 그 순간부터 이 날은 뭔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
핵심 행사들이 주말 주요 시간대에 전부 몰려있다 보니 행사를 다양하게 누릴 수가 없다. 다 보고 싶어서 스케줄표를 보며 머리를 굴리는 데만 몇 시간을 쓴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기대가 컸던 야외상영은 알고 보니 상영 장소가 굉장히 먼데 교통편이 아예 없어서 갈 수가 없다. 당황스럽다.
카페에 앉아서 오늘은 어디서 무슨 영화를 볼까 좀 계획을 세워보려는데, 도무지 생각대로 되질 않더라고. 내가 너무 보고 싶은 영화나 GV는 전부 같은 시간대에 몰려 있고 말이야. 게다가 밤에 바위공원이라는 데서 라라랜드를 야외상영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근사하잖아. 그래서 가야겠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상당히 먼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 어쩔 수 없이 실망감에 젖었지만, 그래도 이날 본 연이은 두 편의 영화(<축복의 집>과 <정말 먼 곳>)와 두 번의 GV는 무척 좋았어. 다만 두 영화를 연달아 상영한 알펜시아 콘서트홀의 환경이 정말 좋지 못해서, 두 번째 영화까지 보고 나니 눈이며 머리가 너무 아프고 피곤하기 짝이 없더라고. <축복의 집>은 전반적으로 화면이 어두운 영화고, <정말 먼 곳>은 탁 트인 산의 경치가 멋진 영환데, 스크린이 선명하지 않으니까 둘 다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지 뭐야. 그래서 영화도 좋게 보고 감독님, 배우님들과 대화도 즐겁게 했는데도 컨디션이 확 나빠지고 말았어. 우선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곧장 숙소에 가서 누웠고, 셔틀버스가 배정돼있던 <비긴 어게인> 야외상영 장소에 갈까 말까 한 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어영부영 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 괜히 더 약 오르는 거 있지. 우습게도 그렇게 또 침대에 누워서 혼자 아이폰으로 비긴 어게인을 봤어. 근데 그게 나름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나갔다 온 사이에 수건이며 세면도구, 냉장고의 생수까지 다시 새 것으로 채워진 숙소에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불은 끄고 발코니 새시를 활짝 열어서 밤바람 맞으며 깨끗한 침대 속에 누워서 보는 비긴 어게인은, 뭐 나름대로 야외상영 부럽지 않더라고. 영화를 보기 전에 썼던 글은 대충 이렇네.
영화 보고 책 읽고 그것들에 관해 글을 쓰고 하는 건 항상 나에겐 취미고 휴식이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휴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빈도수의 문제다. 영화도 계속 보면 지치고, 책도 계속 읽으면 지친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져서 영화나 책으로 도피하지만, 영화제에서 홀로 영화들을 연이어 보고 있는 지금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렇게 쉬고 싶다.
비긴 어게인 야외상영에 가지 않았다. 예고 없이 내린 비에 상영이 취소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시간을 뒤로 미뤄서 진행한다는 소식에 다시 고민이 됐었다. 상영 환경이 좋지 못한 콘서트홀에서 연달아 두 편의 영화와 두 번의 지브이를 보고 나니 너무 피로해져서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고 숙소로 들어와 쉬고 있던 참이었다. 두 영화 모두 좋았고, 감독 및 배우 분들과 나눈 대화도 좋았다. 야외상영 역시 꽤 기대를 하고 있었던 만큼 분명 좋았겠지만, 혼자 있고 싶은 다소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바이러스에 유의해야 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되는 게 사실이므로 쉬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는 건 분명하겠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에 심술이 많아진다.
#셋째 날
마지막 날이었던 셋째 날은 어쩐지 아침부터 사소한 타이밍들이 착착 맞아떨어지더라. 그중에도 최고의 순간은 <요요현상>을 본 거였어. 미리 예매해 둔 <우리집>을 보기 전에 먼저 한 편을 보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시간이 촉박해서 어느 순간 선택의 여지가 완전히 없어져버렸어. 사실 <요요현상>은 보고 싶은 영화가 전혀 아니었어.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보게 됐는데... 지원아, 내가 아직 이 영화 리뷰를 못 썼는데 말이야, 꼭 쓸 거거든? 소 뒷걸음질 치다 인생영화 만나버렸지 뭐야. 왜 우리 어렸을 때 요요 엄청 유행했었잖아. 나도 초등학생 때 한창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고, 난 좀 그러다 말았지만, 그때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거의 요요로 전국을 제패하다시피 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그 사람들을 8년 동안 찍었어. 오로지 요요가 좋아서, 미친 듯이 요요를 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의 벽과, 또 각자의 방법으로 그 벽을 넘어가는 모습들이 이 영화에 담겨있어. 나도 내가 한때 열정을 불태웠던 무언가, 그렇게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라. 그 요요 멤버로 영화에 출연한 한 분과 감독님이 함께한 GV가 있었는데, 내가 평창에서 참석한 모든 GV들 중에 제일 재밌었어. 어때, 나 완전 반한 거 티 나지?
어떡하냐. 사진이 많긴 하지만 오늘 진짜 역대급으로 긴 거 같은데. 근데 진짜 큰 문제는, 나 니 글에 대해서 쓸 얘기들이 진짜 많은데 그건 하나도 못했다는 거야. 특히 다이어트에 관해서. 놀랍게도 메밀국수로 니 속을 태운 나 역시 지금 다이어트 중이란다. 평창에 머문 2박 3일 동안 나 매일 숙소에서 운동복 입고 운동했어. 이 얘기와 또 다른 얘기들은 다음 글로 미뤄보도록 하고,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 쓴 글을 옮기면서 마무리할게.
p.s. 나 너한테 <새의 선물> 추천했던 거 잊고 있었는데. 근데 오늘도 은희경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 참 너가 좋아하겠다고 혼자 생각했었어. 재밌네. 새의 선물은 대표작이니 꼭 읽어야 하고, 다른 작품들도 나중에 읽어보길.
지극히 알찼던 마지막 날. 어쩐지 모든 게 잘 안 풀리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모든 게 기분 좋게 다 맞아떨어지는 하루였다. 촌스럽게도 좋은 기억 가지고 떠나라는, 이곳 평창의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한다.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임은 분명하고, 살다 보면 아마 이 영화제에 다시 참석하거나 이곳 횡계리를 다시 찾는 일이 없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가 않아 막막하기 그지없이 나이만 먹은 스물여덟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때의 젊음을 스스로 시기하겠지. 그러니 청량리행 KTX를 타러 가는 지금 이 버스 안에서도 나는 걱정 따윈 하지 않고 온전히 누릴 거다. 서울에도 있는 횡계리의 투썸플레이스, 그 옆의 한촌설렁탕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구도 감히 다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추억들을 산더미처럼 만들고 간다. 세월이 흐르면 아마, ‘2020년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갔었지’라는 단 하나의 문장만 남게 되겠지만. 감사한 것들을 세자면 수도 없지만, 그중 오늘 문득 알게 된 한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온전한 쉼으로써 영화를 허락하셨다는 것. 나는 그것을 복으로 받았다는 것. 인간에겐 언제나 쉼이 필요하고, 쉼은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어제 얻은 것이었다. 나는 아직 사회적인 정체성이 없는 상태다. 직업이 없을뿐더러, 희망하는 직업 역시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학생 신분을 7년 정도 유지하다, 그곳을 벗어난 뒤엔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했지만 이러저러하여 지금은 그것도 내려놓은 상태다. 고로, 현재의 나는 무다. 지금과 같은 황당한 자유를 살면서 언제 또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제법 신이 나기도 하고, 문득 현실을 보게 될 때면 무력감에 한없이 가라앉기도 한다.
사실,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없는 거다. 욕심을 도무지 내려놓을 줄을 몰라서, 온갖 취미들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틈을 계속 엿본다. 그것들이 내게서 취미를 넘어선 무엇이 되기를. 영화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는 항상 내게 피할 곳이 되어주었다. 논문으로 꽤나 스트레스를 겪던 대학원 때, 나는 미친 듯이 영화를 봤었다. 1년간 200편이 넘게 봤는데, 그 숫자가 그 뒤로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게 내가 어릴 때부터 소설책을 읽었던 이유이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온갖 상상의 세계 속에 나는 언제나 짜릿하게 빠져들었다. 국문과를 거쳐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했고,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국어나 논술을 가르치며 돈을 벌어왔다. 한편 보통 사람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좀 몰라도 되는, ‘그냥 관객’인 나에게 있어 영화는 편한 소파다. 그걸 본 다음에 쓰는 글은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몰라도.
지금까지 나에게 그렇게 존재해왔던 영화가,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있어주리라는 걸 이번 영화제를 통해 깨닫게 됐다. ‘봐야 해’라는 생각은 나를 금세 피로로 내몰았고, 우연히 보게 된 영화는 마치 우연히 마주한 노을처럼,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줬다. 앞으로 나는 계속 하루가 지칠 때면 영화를 보고, 삶이 지칠 때면 영화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여행은 일상보다 피곤하지만, 나의 여행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얻어가는 대가 없는 쉼에 감사하는 한편, 돌아가기 두려운 일상의 분주함이 부재하는 나의 삶 역시 감사하다. 여행 같은 일상, 영화 같은 삶. 나는 그렇게 근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