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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Apr 04. 2023

나는 플라스틱 제빵사

I am

* 더 많은 아티클은<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오브제 제작자 박형호는 플라스틱으로 빵을 만든다. 사람들이 버린 병뚜껑을 곱게 빻아 반죽한 후 베이킹 오븐에서 구워낸다. 색색의 와플과 카눌레는 명함꽂이, 화분, 받침대 등 집 안 곳곳을 밝히는 리빙 소품이 된다. 박형호의 아이디어는 플라스틱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했다. 소재를 파고 또 파는 과정이 그는 즐겁다고 한다.




직업
폐소재 오브제 제작자. 플라스틱 베이커리 대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물건의 사용 주기는 왜 이렇게 짧을까?
애니미즘 전시를 인상 깊게 본 적 있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물건을 의인화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물건을 보면 연민을 느꼈다. 쓰레기가 되기 전까지 역할이 있었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 제품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물건마다 사용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용 주기가 생명이라면, 물건의 삶은 왜 이토록 짧은지 고민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물질과 소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효율적으로 하자.’ 처음에는 작은 오븐으로 시작했다. 예산이 확보되면 더 좋은 스펙의 오븐으로 계속 교체하며 효율적인 시스템과 공정을 만들어갔다. 오븐이 내게 가장 좋은 도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제빵사니까.





플라스틱 디깅 생활



오래전부터 버려진 물건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애니미즘 전시를 인상 깊게 본 후 물건과 쓰레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곳에서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다가 한순간에 버림 받잖아요. ‘고생했어’ 라는 말 한마디도 못 듣고요. 어쩐지 배은망덕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무렵 셰어오피스를 쓰고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버리려는 물건들을 일주일 정도 모아 상을 차렸어요. 음식을 올리긴 애매한 것 같아 국화꽃 한송이를 올리고 잘 가라는 인사를 했죠.

물건 장례식을 치른 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물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진 않았어요. 그동안 하고 있던 생각을 표현한 의식이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일들이 플라스틱 베이커리로 이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과 재활용에 대한 아카이빙을 계속 해왔는데, 그걸 언젠가 작업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물건 장례식은 중간점이었어요.


플라스틱을 빵처럼 구워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베이킹 오븐의 스펙이 플라스틱과 녹는점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실험 삼아 병뚜껑을 오븐에 넣고 구워봤어요. 두 번 정도 테스트했는데 미니 피자 같은 모양이 나왔죠. 와플 기계도 사서 병뚜껑을 올려놓고 찍어 눌렀죠. 진짜 빵처럼 잘 구워지더라고요. 플라스틱을 굽는 과정이 베이킹과 거의 똑같아요. 밀가루처럼 가루로 분쇄해 저울에 계량한 후 틀에 담아 구워 내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버려지는 병뚜껑을 모으고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깊이 탐구하게 되잖아요. 
플라스틱이 생각보다 예민해요. 도자 등 공예 소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은근히 까다로워요. 온도에 민감하고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은 녀석이죠. 업사이클링 관점에서는 갈 길이 굉장히 멀다고 봐요. 플라스틱 베이커리에서는 재생 플레이크로 병뚜껑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병뚜껑을 분쇄해 판매하는 곳이 있어요. 달리 얘기하면, 병뚜껑을 재활용하는 곳은 많았지만 재활용한 병뚜껑을 예쁘게 포장하는 법을 몰랐다는 거죠.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그 역할을 하고 있고요.

와플과 카눌레를 만들었는데 앞으로의 베이킹 계획은 어떤가요?
병뚜껑 이외의 다른 소재를 재료로 사용해 보려 해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를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병뚜껑 말고도 문제가 되는 쓰레기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쌀 껍질, 폐식용유, 음식물 쓰레기 같은 바이오매스도 환경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요즘 굴 껍데기를 테스트하고 있는데 바다에 그대로 폐기되는 굴 껍데기가 바다 사막화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더 다양한 소재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더 해보고 싶다는 시그널



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취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관심사를 일로 연결시킨 비결은 무엇인가요?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 레벨의 지식과 기술, 태도를 갖춰야 하죠.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익으로 환전받는 거예요. 취미는 ‘나’만 좋으면 되지만 생업이 되려면 재화로 바뀔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하니 ‘나의 시도가 쓸모 있나’ ‘이 방향이 맞나’를 끊임없이 질문해요.

디깅을 통해 나만의 영감을 찾고 싶지만, 관심사가 흩어져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게 어렵다는 이들이 많아요.
디깅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거라 생각해요. 업무나 작업을 하다 보면 어딘가 잘 안 풀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오거든요. 응어리라고 할까요? 바로 디깅이 필요한 순간이죠. 디깅은 ‘더 해보고 싶다’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해요. 그 순간을 그냥 넘기거나 피는 대신 해결하려고 애쓰다보면 몰입의 순간이 찾아오죠. ‘해보고 싶다’는 내 안의 시그널을 알아채고 파고 드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디깅이에요. 귀찮음과 게으름은 이겨내야 하죠.

대표님에게 디깅은 일에 집중하는 순간의 또 다른 표현이네요!
깊게 파다 보면 굉장한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저는 탐구할 때보다는 제작할 때 오히려 디깅의 순간이 자연스럽게 와요. 공정을 최적화 하기 위해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데, 디깅을 통해 문제가 풀릴 때의 그 기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죠.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




디깅이 주는 희열이 또 있나요?
내적 동기가 명확해야 일어나는 현상이잖아요.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죠. 스스로를 확인하며 자존감이 올라가요. 무엇인가에 끌리고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과 접점이 있기 때문에 드는 마음일 거라 생각해요. 결국 자신의 일부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고요.

앞으로 무엇을 더 깊이 파고 싶은가요?
해조류 같은 바다 물질을 시멘트처럼 만들 수 있는 배합이 있는데 상용화를 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물건을 버리는 행위의 결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고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어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물질과 소재를 연구하고 일상에 가치를 더하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가려 해요.








Editor Kim Heeseong

Photographer Lee Ju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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