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제주도에 사는 것도 여행의 연장선이에요.” 섬 여행자로 알려진 여행 작가 김민수의 일상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새롭게 발견하고, 사라지는 걸 관찰하면서, 여행하듯 사는 법을 깨쳤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마지막 꿈의 여행지는 아주아주 거칠게 나이 든 섬에서 끊임없이 걷는 것.
직업
섬 여행자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없다. 늘 여행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여행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남기고 그래서 그것을 누군가 좋아하게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진실과 성실. 여행지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틀린 정보를 쓰지 않기 위해 애를 많이 쓴다. 마감 시간은 꼭 지켜야 하고, 독자가 읽었을 때 성의가 없다는 얘기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에 전통 방식의 집을 짓고 살고 계시죠. 그 많은 섬을 거쳐 제주도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가 제가 태어난 집이에요. 이 집이 복원이 시급한 상황에 놓인 거죠. 전통 돌담집은 사람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거든요. 흙과 돌로 벽을 지으니까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이 집을 복구하러 제주로 잠시 왔어요. 처음에는 수원 집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집을 손보고 잔디도 심고 그러다 보니 잡초도 뽑아주고, 체류하는 시간이 늘면서 아예 살게 된 거죠.
여행을 좋아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한 20년 됐어요. 워낙 여행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여행 일지도 올리고, 여행지에서 캠핑을 하며 사진도 많이 찍었죠. 그러다가 책 출판 제의를 받게 됐어요. 여기저기 여행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졌고요. 지금은 여행을 다니며 기사도 연재하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일상을 여행하듯 살고 있어요.
국내의 수많은 여행지, 그중에서도 섬을 주로 다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랜 여행자로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는 이유였죠.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국내 육지 여행에는 크게 차별성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우리나라에 섬이 많잖아요. 3천3백 개 이상의 섬이 있는데, 그 섬들을 가보자 싶었죠. 섬은 이쪽 섬 저쪽 섬 다르더라고요.
섬 여행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면요?
안도감이에요. 섬을 단절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좋아요. 지금은 사라진 옛 마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 섬이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사시다 보니 여유가 있어요. 저도 원주민분들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죠. 바다를 건너야 하니 여행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점도 좋아요. 어떤 여행지를 가면 무엇을 더 봐야 하나, 내가 또 무엇을 놓치고 있나 조바심이 나는데 섬은 쭉 한 번 돌아보고 푹 쉬는 게 전부거든요.
여행지에 가면 꼭 하룻밤은 보내는 게 여행의 원칙이라 알고 있어요. 섬에서 현지인들과 교류도 많이 하는 편인가요?
가자마자 만나는 모든 분께 인사를 해요. 심지어 무덤에서도 인사를 해요. 이 섬에 오래 사신 고인이잖아요. 그러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면 제게 안부를 묻기 시작해요. 혹시라도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못하게 되면 미리 알려주시기도 하고요. <섬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책을 낸 이후에 제가 섬에서 만난 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어요. 추자도에 가면 누가 있고, 우이도에 가면 누가 있고, 그 사람들이 눈에 선하죠.
섬이 가진 역사나 독특한 자연 경관에 대해서 쓰기도 하시죠. 기억에 오래 남은 섬이 있나요?
전남 신안에 우이도라는 섬이 있어요. 외국 섬처럼 해변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방문객이 별로 없어요. 작은 섬도 아니고, 해변이 굉장히 많고 예쁘거든요. 그런데 목포에서 배를 타고 3시간 반 정도 가야 하다 보니 가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우이도에는 과거 동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된 사구가 있어요. 옛날에는 100m 정도 높이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서 보니 50m 될까 말까 해요. 해양 생태계가 모래를 깎아 내리는 과정이 진행된 거죠. 또 그곳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어요.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넘어가려면 산을 넘어야 하죠. 그 사이에는 대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사라진 지 30년 정도 됐어요. 섬이 바뀌어가는 과정이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죠.
마을이 사라져가는 섬의 풍경은 어떤가요?
뭐랄까, 부서진 벽을 보는 느낌이에요.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은 집 담벼락이 무너지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결국 폐가가 되죠. 쓸쓸해요. 여행이 원래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채워가는 면도 있지만 여행을 통해 비워지는 것들도 있죠. 삶이나 자연, 문화의 변화를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요.
섬에 남은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나요?
우이도를 여행한 후 배를 타고 나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저랑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섬에 사신 지 19년 됐는데, 자기는 19년 동안 여행하는 중이래요. 우이도를 왔다가 너무 좋아서 섬에 살고 싶다고 얘기했대요.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 우이도로 정착하셨대요. 아주머니 말씀하시는 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여기에서 미역을 팔면 250만 원이 생기는데 그 돈으로 할 게 너무너무 많대요. 아침에 산책하고, 텃밭에 갔다가 가끔은 큰 섬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오고요. 정말 여행하듯 살고 계시더라고요.
사는 것도 여행의 연장선
작가님의 삶에서 여행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나요?
반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 제주도에 사는 것도 여행의 연장선이에요. 매일매일 새롭고 이곳에 여전히 호기심과 설렘이 남아 있거든요.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깨우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제주에서의 삶이 각박했을 수 있겠죠.
보통은 일상에서 도피하듯 여행하다 보면 여행에 의존하게 되기 쉽죠. 일회성이고, 금방 휘발되고, 돌아오면 현실에서 후유증을 남기고요. 작가님은 여행을 생활화하신 거네요.
밥 먹고 자고 하는 의미의 생활화랑은 좀 다른데,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에서 가끔 친구들을 보고 어느 날은 책도 읽고 운동도 하는 그런 여러 범주 안에 여행도 들어가는 거죠. 여행이 그 정도 생활화되면 갔다가 돌아와서 금방 또 떠날 생각을 하죠. 한 번에 ‘다 보고 가야지’ 하는 욕심도 버리고, 여행의 방법이나 방식도 많이 바뀌죠.
작가님의 여행도 굉장히 간소하고, 특히나 생태 캠핑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아까 촬영할 때도 “텐트 한 번만 세워도 환경이 파괴된다”라고 말씀하셨죠.
땅에 미생물이나 벌레들이 엄청 많잖아요. 텐트를 치고 사람이 눕는 순간 땅의 온도가 변하기 때문에 생태가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바닥이 없는 쉘터 텐트를 애용해요. 가장 중요한 건 장비를 줄이는 일이에요. 배낭이 크면 욕심이 나서 이것저것 챙기게 되지만, 짐을 줄이면 먹는 것보다 자연을 보고 경험하는 데 시간을 더 쓸 수가 있죠. 또 휴지를 덜 쓰려고 한다거나, 취사하는 대신 도시락을 싸 가거나, 남은 음식물은 전용 봉투에 담아 오죠. 저에게 캠핑은 여행의 수단이기 때문에, 최대한 여행지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아주 늙어서 가보고 싶은 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덴마크령에 속한 페로 제도요. 너무 춥고, 땅은 질척거려요. 아름답지만 거칠고, 야성적인 섬이죠. 거기에서 걷고 텐트 치고 또 하염없이 걷고 싶어요. 혹시 몰라 죽을 때는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어요. 어디든 흘러흘러 돌아다닐 수 있게요.
Editor Kim Yerin
Photographer Lee Woo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