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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Jul 05. 2022

differ_더 나은 바다를 위하여

Colle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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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공예가 이혜선은 바다에서 수집한 해양 쓰레기로 조명을 만든다. 매일 다른 재료와 형태 그리고 바다가 남긴 흔적을 간직한 해양 쓰레기를 그는 ‘파운드 오브제(found-object)’라 부른다. 지금은 비록 쓰레기지만, 언제든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해양 쓰레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이혜선은 자신이 만드는 조명처럼 은은한 빛으로 사람들을 물들이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Collect
교감을 위한 수집

이혜선이 해양 쓰레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6년, <제주바다로부터> 전시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비치코머(beachcomber, 해양 쓰레기를 수집하는 사람)’가 모은 해양 쓰레기를 서울의 공예가들에게 보내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처음에는 대부분의 재료가 플라스틱 소재라는 점에 끌렸다. 금속 재료만 다루던 그에게 플라스틱의 다양한 색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진 않았어요.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해양 쓰레기에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이혜선은 비치코밍을 시작했다. 때로는 동해, 때로는 제주도에서 해양 쓰레기를 주웠다. 처음에는 필요해 보이는 것만 골라 왔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면 일단 다 가지고 온다. 그 속에 어떤 쓰임의 재료가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쓰레기지만, 과거에는 다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물건들이잖아요. 그들을 새롭게 조합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구조와 기능적인 형태가 나오는 게 흥미로워요.” 가장 흔하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료는 부표다. 볼륨감을 살리는 작업이나 대칭적인 모양을 좋아하는 그에게 ‘구’의 모습을 한 부표는 그야말로 완벽한 재료인 것이다. 부표의 속은 대체로 비어 있어 활용도가 높다. 반으로 자르면 랜턴의 갓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비치코밍을 하려고 하지만 흠칫 놀랄 때도 많다.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 휩쓸려 온 쓰레기를 발견했을 때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해양 쓰레기로 이루어진 섬에 취재를 갔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쓰여 있는 어구가 발견된 거예요. 그때 해양 쓰레기가 정말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저 먼 나라의 바다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혜선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제주 바다에서 비치코밍 활동을 하는 ‘제주클린보이즈클럽’에 먼저 연락해서 수집한 쓰레기들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들도 마침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제가 그들이 수집한 쓰레기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활동비를 지원하고, 재료를 주기적으로 조달 받는 것을 제안한 거죠.” 큰 전시를 앞두고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바다로 향하지만, 지금은 제주클린보이즈클럽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이혜선에게 수집은 단순히 재료를 모으는 행위를 넘어 바다 그리고 사람과 교감하는 행위에 가깝다.






Inspired
자연이 남기고 간 이야기


이혜선이 업사이클 작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건 어쩌면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그의 부모는 쓰임이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진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사를 하면 가구 같은 걸 많이 버리고 가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어디로 막 전화를 해요. ‘이거 너희 필요하지 않았어?’ 하면서 누구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저희 집에 들이기도 했죠.” 무언가를 줍는다는 것, 헌 물건을 새로이 쓴다는 것이 그에겐 예전부터 익숙했던 것이다. 그가 작업할 때 입는 앞치마도 어머니께서 이모부가 버리려던 청바지를 가져다 만들어 준 것이다. 이렇듯 버려진 것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은 이혜선이 자연스레 체득한 삶의 태도인 셈이다.
그렇기에 작업을 할 때에도 수집한 재료의 낡은 모습 그대로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오랜 시간 파도와 돌, 해변에 몸을 부딪쳐 가며 생긴 흔적들은 일부러 만들기 어려운, 그 재료만이 품은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핑크색 부표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좀 징그럽게 느껴져서 그냥 집에 왔는데, 눈앞에 계속 아른거리는 거예요.” 그렇게 다시 돌아가 주워 온 부표는 현재 절반 정도가 남아 있다. 절반은 붙어 있는 따개비를 갈아내고 다듬어 썼지만, 남은 절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고 싶어 아껴둔 채다. “작업을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이 정말 귀한 재료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아무리 가공하고 무언가를 덧대려고 해도 자연이 남긴 흔적만큼 아름다운 건 없더라고요.”






이러한 마음가짐은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1년 전, 여름에 열었던 개인전 <형광조각(形光조각)>에는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작업할 때 사용하는 공구와 재료,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비치코밍 당시에 찍은 사진 등을 함께 구성했다. “제 작품을 보면서 플라스틱을 녹여 새로운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어떤 이야기를 담은 재료이고, 어떻게 가공했다는 걸 상세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완성된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그저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지나쳐 버릴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발견되었을 당시의 모습,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목격한다면 작품의 의미가 더욱 천천히, 깊게 스며들 것이다. 이혜선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믿는다.





기회가 될 때마다 워크숍을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간단한 조명을 만드는 것도 이러한 철학에서 비롯된 일이다. 완성된 작품만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작업이 익숙해지다 보면 저도 모르게 편한 재료나 형태를 따르게 되잖아요. 그럴 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시간을 보내면 저에게도 리프레시가 돼요.” 친구들과 비치코밍 하는 시간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기도 한다. “친구한테 이걸 왜 주워 왔냐고 물어보면, 상상도 못 했던 답변이 돌아와요. 그럼 ‘아, 저걸 그렇게 활용할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죠.”



Work
꼭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금속 공예를 전공한 이혜선은 본래 조명을 주로 작업해 왔다. 첫 작품이 ‘손 등대’라는 이름의 랜턴이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 그러나 그 작품 속에 담긴 의미는 남다르다. “바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등대예요. 지금은 쓰레기지만 다시 태어날 때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어요.” 첫 작품인 만큼 혼신을 다해 만들었고, 다른 어떤 작품보다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 현재의 작업 방식은 전보다 더 즉흥적이 됐다. 이전에는 아이디어 스케치와 모델링을 완벽하게 끝내고 제작에 들어가려 했다면, 지금은 만들면서 모양을 구상한다. “새로운 재료를 발견했을 때는 속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속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랜턴의 갓으로 쓰려고 잘랐는데 속이 꽉 차 있다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안쪽 모양이 예쁘면 그걸 살리고 싶잖아요. 그래서 그때그때 재료에 맞게 작품의 형태를 그려보는 편이에요.”





이혜선은 자신을 환경 운동가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다소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환경을 위해 모든 시간과 마음을 쓰는 사람들에 비할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작업과 모순되는 삶은 지양하려 한다. “해양 쓰레기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의 나, 그리고 이혜선이라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너무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거창하지는 않아도 일상에서도 꾸준히 환경을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이혜선의 이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다. 바다에 간 친구들이 그를 생각하며 쓰레기를 주워 오고, 딸의 작업을 마음에 품은 부모는 종이 빨대와 텀블러를 써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바다가,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혜선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상태가 나빠지지 않은 바다를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것. 그 사이 바다가 몰라보게 깨끗해져서 더 이상 비치코밍의 의미가 없어지기를, 그래서 새로운 작업의 재료를 찾아 떠나게 되기를, 이혜선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ditor Oh Jisoo

Photographer Jun Ye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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