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친구 덕분에 알게 된 곳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너무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었다고, 떨려하고 기대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샤로수길 근처에 살고 있는 본인은 당연히 샤로수길에 있는 감성카페일 거라 생각했는데, 봉천동 주택가에 숨어있는 곳이었다. 빌라 1층에 위치한 고로 커피로스터스. 골목을 따라 쭉 올라오다 보면 나무 입간판이 보인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첫 방문은 핸드드립으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로스터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커피맛만으로도 충분히 자신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핸드드립을 주문했다면 바 테이블에 앉기를 추천한다. 내 앞에서 직접 내려주시는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핸드드립 원두는 매일 달라진다. 보통 3가지 정도가 준비되어있고, 나는 모든 종류를 다 맛보고 싶으니까 34590번 정도 더 와야겠다.
아이스로 주문했다. 차갑게 내린 뒤에 얼음컵을 따로 제공한다. 원하는 만큼 직접 따라 마실 수 있다. 커피를 마시는 과정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커피맛에 감동해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된다면 아이스 라떼를 추천한다. 진한 농도와 높은 산미의 에스프레소 샷이 우유와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자랑하는 딱 내 스타일 라떼.
(말자씨와 나의 최애픽이다.)
하루는 친구랑 얼른 밥 먹고 고로 커피에 가기로 했는데, 밥을 너무 오래 먹어버렸다. 동네 골목에 있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때가 이미 오후 8시 30분이었다. 지도 어플로 찾아보니 영업시간은 9시까지.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한 잔을 마셔도 맛있어야 한다고 고로 커피를 찾아갔고, 그때의 매장 분위기는 새까만 밤 골목만큼이나 고요-했다.
“마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정리하셔야 하는데 죄송해요..!”라며 주문을 했더니, “아 저희 10시까지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공간이 주는 기쁨도 커피맛만큼이나 감동적인 곳.
사실 여긴 크림 맛집이다. 아인슈페너와 크림 모카를 마셨는데, 많이 달지 않고 부드러웠다. 음료의 맛을 해치지 않을 만큼 적당한 자기주장을 하는 신선한 크림이다. 아인슈페너 커피에는 기본적으로 시럽을 넣어주신다. 단 음료가 싫다면 주문할 때 시럽 빼 달라고 미리 말씀드리기!
매장에 앉아 주문하는 걸 들어보면 손님의 절반은 밤부라떼를 주문한다. 그린티라떼+샷추가 음료다. 단 거 땡기는 날 스벅에서 커스텀으로 주문하는 음료인데, 여기는 아예 메뉴로 올라가 있다. 섞지 않은 그린티가 흘러내리는 모양이 꼭 대나무를 닮았긴 하다. 커피가 워낙 맛있다 보니 달달한 그린티라떼와 섞인 이 음료는 당연히... 맛있다. N번째 방문 때 꼭 드셔 보시길.
카페라떼 4.0(사진 오른쪽)
수제 바닐라빈라떼 5.0(사진 왼쪽)
아인슈페너 5.0
밤부라떼 5.5
핸드드립 7.0-8.0 사이
가격대는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낭낭한 갬성과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를 방문하면 6천원을 웃도는 음료 가격에 마음이 얼어붙곤 하는데... 고로 커피의 메뉴판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가 모두 4천원이다. 아메리카노 가격으로 라떼를 즐길 수 있는 신기한(?) 가격 책정이다.
간단한 디저트류도 있다. 휘낭시에와 쿠키, 애플크럼블, 마들렌, 가끔 있는 조각 케이크까지. 이것도 랜덤이다. 소량씩 자주 구우시는 것 같다. 덕분에 실내에는 버터 냄새와 커피 냄새가 온종일 가득하다. 오늘은 빈속에 2,700원짜리 못난이 초코 먹고 힘내서 올리뷰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