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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GIPUB Aug 09. 2018

[조울증 이야기 #3]

3. 전교 왕따

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울증을 앓았고 지금 38세이다. 두 딸과 막내아들의 아빠이고 지금도 조울증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지 않는 이상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밝히기 어렵고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병 조울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 속에서 고생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조울증을 앓는 친구들과 그의 가족들이 위로받았음 한다.

 

 한 달간의 통원 치료 후 학교에 다시 등교한 날, 반 친구들은 날 반겨 주었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한 달간 학교를 쉬고 있는 기간 동안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전교에 소문이 났던 것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래도 내가 안쓰러웠는지 직접적으로 놀리지는 않았지만 다른 반 아이들은 나를 피하거나 왕따 취급하였다. 학교 복도를 걸어가다가 한 여자애가 나에게 악수하자고 해서 그냥 악수를 하였는데 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여자애들이 막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자기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나랑 악수하고 오는 미션을 걸었던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더 쉬었어야 했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 나았을 테지만 이미 늦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불쌍했던 때는 하굣길에 항상 혼자 집으로 돌아온 때다. 다른 친구들은 끼리끼리 가거나 단짝 친구와 하굣길을 함께 했지만 난 항상 혼자였다.

 이렇게 힘든 시간이었어도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에 조증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증을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조증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 과대망상을 갖게 되고 주위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과다한 행동 장애도 갖게 된다.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고 나 혼자 좋아하기도 하고 말실수도 잦아지고 남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 시기 때엔 이문열 씨의 ‘삼국지’를 읽었는데 학교 내에 친구들을 생각하며 삼국지의 인물들과 연관 짓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도 하였다. 점심시간마다 난 도시락을 들고 매번 다른 반으로 가서 중 1 때 친구들과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러면서 소위 반에서 잘 나가던 친구들을 보며 삼국지의 인물들을 연상하였고 나 자신을 유비 또는 제갈공명 같이 생각하기도 하였다. 조증 가운데 있으면 주위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고 나의 기분, 나의 생각, 나의 욕구에 충실하였다.  

 아버지께서 잘 아는 분이 청소년 상담소에 계셨는데 나와 상담하길 원하신다고 듣고 그곳에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으시고 공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참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그 상담사께서 우리 부모님에게 전하셨던 이야기는 내가 좋은 의미로 튀는 아이인데 여러 상황으로 그렇지 못하게 되어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신과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조울증을 처음 앓던 시기엔 조울증에 관해 많은 연구 결과가 없던 때였다. 그래서 더 심리학 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조울증을 바라보는 견해가 달랐던 것 같다. 나의 경험상 조울증은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약물 치료와 함께 심리 치료도 받는다면 좀 더 조울증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선생님과는 주로 자신의 생물학적인 변화에 대해 상담하게 되는 반면 심리학 선생님과는 여러 환경에 따른 자신의 감정적인 변화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첫날 등굣길 버스 안에서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중 2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려고 노력하셨었다. 버스 안에서 나에게 중 3이 되면 어떤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싶냐고 물으셨다. 난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가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는데 내 중2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미리 아시면서 물으신 것이구나 알게 됐다. 중 3이 되어 새로운 반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V 자를 만들어 두 손가락 사이에 코를 끼우고는 ‘사이코’라고 불렀다. 손가락 사이 코라는 의미로 ‘사이코’라고 말이다. 중 3 초기엔 다시 우울한 모드로 돌아갔다. 중 2에서 중 3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과외를 같이 받던 친구들이 있었다. 날 처음 보았을 땐 엄청 말이 많았다가 어느 시기 때부터 갑자기 말이 없어진 것을 보곤 왜 이렇게 말이 적어졌냐고 물었다. 한창 조증이다가 우울한 시즌이 닥치면 정말 힘들었다. 조증인 상태에서 우울증이 되면 느껴지는 격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첫 중간고사 성적을 담임 선생님께서 나눠 주시며 지난 시험보다 크게 등수가 오른 학생을 소개했다. 전교 등수 200등이 오른 학생이 있다고 말씀하시자 반 아이들이 ‘어떻게 200등이 오를 수 있지?’ 하며 웅성 거렸는데 200등 오른 학생이 바로 나였다. 지난 시험 때 거의 모든 문제를 찍어 성적이 전교 뒤에서 20등 안에 들었으니 200등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왕따가 된 계기가 어떠하든 왕따를 당한다는 것은 슬프고 힘든 일이다. 하소연할 상대도 없을 수 있고 누구 하나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왕따를 당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 학대인 폭행을 당할 수 있고 정서적 학대인 욕설 또는 모욕을 당할 수 있다. 직접적인 왕따 시킴이 나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도 왕따 시킴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누군가를 방치하는 것이 간접적인 학대에 포함된다고 한다. 왕따 당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그냥 웃어넘기거나 모른 척하는 것 또한 간접적으로 왕따 시킴에 관여하는 가해자임을 말하고 싶다. 30대 후반이 된 내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라 생각 드는 것은 하굣길에 항상 혼자였다는 사실이다. 병이 생기기 전에는 친한 친구들과 하굣길을 늘 함께 하였는데 병이 생기고 나서는 나와 함께 하굣길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어쩌다 나와 함께 하교하며 대화를 나눈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처음에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왕따를 당할 때 그 왕따에게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조금은 용기를 내어 왕따에게 말 한마디 거는 것이 왕따를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자살을 마음먹은 왕따가 그 말 한마디로 생각을 돌이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들 다 그렇게 행동하는데 나라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냐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힘든 시기에 공감해주며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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