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쉽게 설명하고 싶어요
“어떤 일 하세요?”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어요”
“…음 그게 어떤 일 하는 거예요?”
”브랜드가 잘 되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해요. 브랜드 정체성도 잡아주고요, 브랜드 미션도 정의하고, 브랜드가 가야 할 방향을…“
7년 차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인 저는 한 번도 저의 직업에 대해 상대방이 속 시원히 이해하도록 설명해 본 적이 없어요. 특히 브랜딩 업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어렵죠. 그래서 요새는 이렇게 넘기곤 해요.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해요. “
”그게 어떤 업종이에요? “
”설명하기 어려워요 (웃음)“
차라리 우리 회사의 다른 직군은 자기 직업을 더 설명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버벌리스트예요 “
”그게 무슨 일 하는 거예요? “
”브랜드 이름과 슬로건을 만들어요 “
“디자이너예요”
“그렇군요”
디자이너는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지도 않을거에요. 물론 이 업계 사람이라면 UX 디자이너인지,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인지 등 어떤 분야의 디자이너인지 물어보겠지만요.
설명이 어려운 내 직업,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
그렇지만 저는 저의 직업을 좋아해요.
브랜드 컨설턴트의 하루
그렇게 설명하기 어려운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의 어느 월요일을 살펴볼까요. (여기서라도 잘 설명해 보자!)
AM10:00
우리 회사 출근은 10시. 출근하자마자 아웃룩을 켜고, TO DO앱에 ’ 240812(월) 과업‘을 클릭합니다.
오늘의 과업은 이렇게 써 놓았네요. (원래 2개보다 많지만 편의 상 2개라고 칠게요)
1. A브랜드 프로젝트 전략적 제언 파란 박스 만들기
2. B브랜드 CVP ideation 최소 10개 하기
먼저 하루 동안 어느 순서로 과업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봅니다.
AM10:00~12:00 전략적 제언 장표 준비
오전에는 A브랜드 전략적 제언 장표를 만들기 위해 파란 박스 작업을 해요.
전략적 제언 프로젝트는 어찌 보면 경영 전략 컨설턴트의 일과 비슷합니다. 경영 전략 컨설턴트가 기업의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사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처럼, 브랜드 전략 컨설턴트도 비슷한 일을 브랜드 측면에서 수행하죠.
클라이언트 브랜드가 더 강력해지기 위해서 어떤 솔루션이 필요한지 전략을 수립해줘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에는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고유의 Framework를 갖고 있고, 이에 근거하여 성장 제언을 제공해요. 예를들어 ‘Alignment’라는 브랜드 강도를 높이기 위해 브랜드 내재화 교육 프로그램을 제언하는 식이죠.
다시 과업으로 돌아가서, 전략적 제언의 파란박스 작업은 곧 보고서의 스토리라인을 잡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PPT에서 기본 박스가 파란색이어서, 저는 보통 이 작업을 ‘파란박스 작업’으로 불러요. 크고 작은 파란박스를 통해 전략적 제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구체화해가죠. 즉 내용을 구조화하여 팀원들과 장표 분배를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에요. 파란박스 작업은 보통 그 프로젝트의 PM(Project Manager)인 실무 담당자가 해요.
물론 파란박스 작업은 독단적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작업 하기전에 윗 사람인 PD(Project Director) 및 프로젝트 팀원과 대략적인 의견 교환을 한 후에 이루어져요. 이 파란박스 작업의 수준이 보고서의 퀄리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파란박스 작업의 수준이 PM의 역량을 보여줘요.
PM12:00~1:00 점심시간
점심시간이네요!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구내식당이 있을만한 회사 규모는 아니에요. 글로벌 회사의 서울 오피스입니다. 월요일에는 매주 월요 간식이 나와요. 매주 서울에서 ’핫한‘ 음식점에서 간식을 공수 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오늘은 당근라페 핫도그라는 것을 먹어봤어요.
PM2:00~4:00 CVP 발상
B브랜드의 CVP 발상을 하는 시간입니다. CVP는 ’Customer Value Proposition‘의 약자로, 브랜드의 핵심 고객 가치 제안이라고 할 수 있죠. 나이키로 따지면 ’Achivement’라고 할 수 있고, 코카콜라로는 ‘Happiness’입니다. 브랜드가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남는 한 가지 키워드죠. 본질만 남기고 버리고 또 버려요. 그 브랜드가 고객에게 선사하고 싶은 단 한가지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런 측면에서 마케터와 브랜더는 차이가 있어요. 마케터는 그 브랜드를 더욱 풍성하게 보이게하고, 브랜더는 그 브랜드를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해요.
브랜드 컨설팅사에서의 CVP 발상은 허투루 이뤄지지 않아요. 탄탄한 브랜드 분석 위에 CVP의 방향성이 세워진 후, CVP 발상이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 은행 브랜드의 리브랜딩을 위한 CVP 작업을 한다고 하면, 은행의 실무직원부터 은행장까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죠. 물론 대규모 조직의 경우 모두를 참여하게 하진 않지만, 각 직급 별, 직무 별 대표성을 띠는 사람들을 관여 시키려고 노력해요. 실무 직원과는 주로 워크샵을 통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C-LEVEL의 경우 1대1 인터뷰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해요. 이렇게 내부 직원 의견 수렴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정량 조사, 고객 인터뷰, 업계 내 분석, 업계 외 분석 등을 실시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전략 컨설팅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큰 차이점은 이 모든 활동 과정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 차이일 것입니다.
쉬운 예로, 은행 브랜드 업계 내 조사를 해보니 ‘개인화 서비스 강화’ 같은 트렌드가 눈에 띈다면 브랜드 컨설턴트는 이것을 ‘fit’이나 ’unique’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로 치환할 줄 알아야하죠. 이에 따라 가끔 저는 C-LEVEL 인터뷰 시에 굉장히 딱딱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분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상상해보기도 해요. 그러면 딱딱한 것도 말랑말랑한 가치가 될 때가 있어요.
브랜드 분석 단의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더 다루기로 하고, CVP 발상을 하는 두 시간 동안에는 무엇을 하는지 살펴볼까요. 보통은 고뇌의 시간입니다. 먼저 브랜드 분석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 보며, 브랜드 방향성을 상기해요. 그 위에 이제 다양한 재료들을 투입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 브랜드라면 선진 브랜드의 브랜드 전략 시스템을 보며 벤치마킹 아이디어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은행업의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클라이언트와 유사한 가치를 소구하려는 브랜드를 살피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개인화‘를 강조하는 은행 브랜드라고 한다면, ’개인화‘를 강조하는 헬스케어브랜드까지 살피는 식이죠.
또한 개념의 뿌리를 파고 들 때도 있어요. ’개인화‘를 강조 해야한다면, 그 뿌리가 무엇인지 더 살펴요. 그러면 ’주체성‘이라는 키워드가 돋보이게 되고, 주체성이 현대 사회의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문헌을 살피기도 하게 되는 것이죠.
CVP 발상에 대한 접근법은 컨설턴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철저한 브랜드 분석의 기반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할 거에요. 특히나 이러한 분석이 선행되는 것은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본이기도 하며 컨설팅사로서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PM4:00~4:30 티타임
(누군가와 티타임을 자주 갖지 않지만, 이렇게 일과를 써보는 김에 티타임을 넣어 봤어요.)
오늘은 옆 사업부 동료에게 티타임을 잠깐 갖자고 했어요. 근황이 궁금해서 몇 번 생각 났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야기를 잘 못했거든요. 그 동료는 유명한 광고회사에 있다가 우리 컨설팅사로 이직한 케이스입니다. 보다 브랜드의 앞단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으로 얼마 전 이직했지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어요. 다행히도 브랜드 전략 컨설팅에 흥미를 느끼고 잘 적응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뭘 하는거야?
하루를 써보니 파편적인 것 같아서, 정리해서 써볼게요.
1. 브랜드 전략 시스템 정의
2. 브랜드 아키텍처 수립
3. 브랜드 가치 평가
4. 브랜드 성장 전략적 제언
5. 브랜드 페르소나 및 Tone of Voice 설정
6. 브랜드 중장기 로드맵 수립
7. 기타 브랜드가 잘 되기 위한 전략적 활동들
여전히 어려운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