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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찬 Dec 02. 2024

상승 제의의 도구, 롤스로이스

<브랜드는 종교다> 시리즈 4


신학을 전공하고, 그 사이 시간의 경계선들을 지나, 브랜드 컨설팅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안에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있나봅니다. 특히 루마니아의 세계적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야데의 어깨에 앉아 이 시대의 브랜드 다이나믹스를 바라보려 합니다. 그래서 느낀표 컨설턴트와 브랜드 컨설턴트의 생각​을 매주 월요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276대 vs. 700000대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1906년에 설립 된 영국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은 찰스 롤스(Charles Rolls)와 헨리 로이스(Henry Royce)의 이름에서 각각 따왔다고 하죠. 이 둘은 롤스로이스의 공동창립자였습니다. 유명 럭셔리브랜드 중 하나인 벤틀리도 오랜 기간 동안 롤스로이스의 하위 브랜드로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현재 롤스로이스는 BMW그룹의 산하 브랜드입니다.


한국에서 롤스로이스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1년 225대, 2022년에는 234대가 판매되었죠. 그리고 2023년에는 276대로 최고 실적을 갱신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한 해 국내 약 70만대를 판매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롤스로이스를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 높이에,

그 곳에 존재하는 이동수단


1900년대 롤스로이스는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가 없었던 자동차입니다. 구매 희망자는 자신의 자산 규모를 증명할 수 있어야 했으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주로 각국의 왕실이나 정상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동차였습니다.


물론 현재는 구매자의 자격 조건이 없어졌습니다. 누구나 돈이 있다면 살 수 있죠. 그러나 누구나 그런 돈을 가지고 있지 않죠. 즉 재력이 자격 조건인 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무엇보다도 신분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롤스로이스는 여전히 ‘자격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죠. 롤스로이스 대표 토르스텐 뮐러-외트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롤스로이스 고객들은 최고 중의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자동차를 여러 대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벤틀리를 살 것이냐, 롤스로이스를 살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갖고 싶은 자동차가 있으면 그냥 다 삽니다. 이 때문에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 경쟁한다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롤스로이스의 경쟁자는 비싸고 더 희귀한 상품들입니다. 고가의 보석이나 제트기, 헬리콥터,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오두막(샬레) 같은 것입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온혜선 기자, 2015)


‘가장 높은 것‘은

저절로 신성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롤스로이스의 ‘특권 브랜딩’은 왜 이 시대의 상류층에서 호응을 얻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롤스로이스를 통해 어떠한 종교적 브랜딩 함의를 발견 할 수 있을까요?


‘가장 높은 것’은 저절로 신성의 속성이 된다. 인간이 도달 할 수 없는 고지대, 별들의 영역은 초월적인 것, 절대적 실재, 영원의 무게를 획득한다. 거기에는 신들이 거주한다.
(멀치아 엘리야데, <성과 속: 종교의 본질>, p.105)


루마니아의 종교학자 엘리야데는 가장 높은 것은 저절로 신적인 속성을 가진다고 이야기 해요. 즉, 높은 것은 권위 있는 것으로 지각 되며 그 자체로서의 아우라를 가진다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조작에 의해 도달된 것은 아니다.
(멀치아 엘리야데, <성과 속: 종교의 본질>, p.105)


우리 인간은 누군가를 설득할 때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만 높은 것으로 인정 되는 것들은 그 자체가 권위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에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높다고 인식 되는 순간, 그 사실 자체가 하나의 권력과 권위가 됩니다. 왕의 명령은 그 자체로 주장이자 근거가 되는 것과 같아요. ‘가장 높은 것’은 초인간적인 위력과 존재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데는 가장 높은 곳에 신들이 거주한다고 말했죠.


상승 제의의 도구,

롤스로이스


마오리족의 최고신은 이호이다. 이호는 상승, 올라감을 뜻한다. 아크포소 니그로의 최고신인 우올루우는 높은 곳, 상위지대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멀치아 엘리야데, <성과 속: 종교의 본질>, p.105)


결국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여 위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종교 의식을 만들어 내었고, 이는 수 많은 종교에서 ‘제의‘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나는 땅에 사는 인간이지만, 저 높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한 종교적 행동을 하는 것이죠.


그러한 종교적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롤스로이스는 인간이 가장 높은 곳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시키는 제의 도구입니다. 땅의 신분에서 가장 높은 곳의 신분에 도달하는 사다리이죠. 롤스로이스를 통해 결국 인간은 신분 상승의 제의를 취하는 것입니다. 5억이라는 돈을 통해 롤스로이스라는 제의 도구를 구매한 것입니다. 그것은 고대인이 종교 의식을 위해 어떤 동물을 제의의 도구로 준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에서 다르죠. 롤스로이스의 경우는 지극히 세속적인 제의이며 고대인의 경우는 보다 성스러운 제의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인의 종교는 ’자아‘라는 신을 향하기 때문이죠. 제물을 바치는 자도 ’나‘고, 제물을 취하는 자도 ’자아‘입니다. 자기가 바치고 자기가 먹습니다.


특히, 특권 브랜딩은

강력한 상징물을 수반한다



상징물은 그 세계관이 갖는 가치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그 세계관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브랜드 로고가 워드타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소 재미 없는 일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싶어하는 브랜드들은 더더욱 강력한 상징물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롤스로이스에게는 환희의 여신상이 그것이죠. 환희의 여신상 날개를 타고 인간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환희의 여신상은 롤스로이스가 유명 조각가인 찰스 로빈슨 사익스에게 요청하여 만들어진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여신 니케의 신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고 하죠.


환희의 여신상은 근대 이전 시대의 계급장, 휘장, 배지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훨씬 덜 직접적인 형태로 그 역할을 합니다. 현대 사회는 직접적 계급 표현에 대부분 반감을 갖기 때문에, 환희의 여신상은 영리한 형태의 계급장입니다.


또한 권력 브랜드는

유일함을 중시한다


Whatever you imagine your ideal motor car to be, bring your unique vision to life with Rolls-Royce Bespoke
(롤스로이스의 ’Bespoke’ 서비스 소개 페이지 중)


아이린 니케인 롤스로이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은 인터뷰에서 “롤스로이스가 비스포크고 비스포크가 롤스로이스”라고 말했어요. 롤스로이스는 세상에 단 한 대 밖에 없는 차를 목표로 고객 별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해요. 색상 조합만 해도 4만 4000여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고객의 디자인 취향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고객의 바람, 꿈 이야기를 롤스로이스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화 시킨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권력 브랜드는 또한 ’유일함‘을 내세웁니다. 인간은 다양한 신적 속성을 닮고자 하는데, 이러한 유일한 것에 대한 욕구는 신적 속성 중 ‘유일신’에 관한 것입니다. (유일신은 스티스 톰슨이 분류한 19가지 신적 속성 중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유일 무이 하며, 그래서 마치 신적 존재와 같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 즉, 이 시대의 권력의 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희소한 것을 찾아나섭니다. 희소한 것은 나의 유일함을 비춰줄 거울이 되어줍니다. 그렇게 신을 닮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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