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시대에 보내는 편지: 로봇이라는 이웃에 대하여

by Paul과 요셉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에게. 어쩌면 지금 부모님을 돌보고 있을 당신에게.

어쩌면 스스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당신에게.

아직 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마주하게 될 당신에게.


에이징과 로봇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로봇은 공장의 것이고, 전쟁터의 것이고, SF 영화의 것이라고. 그러나 12년간 미래 도시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Sim Eternal City를 구축하면서 제가 도달한 지점은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로봇이 인간과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가장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될 장소는 전쟁터가 아닙니다.

노인의 곁입니다.


숫자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숫자들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16% — 여섯 명 중 한 명 — 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WHO 미국에서는 45세 이상 성인의 40%가 외롭다고 보고하며, 이는 2010년과 2018년의 35%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AARP 126개 연구, 125만 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서 전 세계 노인 외로움 유병률은 27.6%였으며, 북미에서는 30.5%로 가장 높았습니다. Nature


미국에서 65세 이상 지역사회 거주 노인의 약 4분의 1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간주되며 National Academies Press, 외로움은 사망 위험을 26% 높이고, 사회적 고립은 29% 높여, 고혈압이나 흡연에 버금가는 주요 공중보건 위협으로 분류됩니다. Retirement Living

그리고 이 외로움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숫자가 있습니다. 1인 가구입니다.


20세기 초, 1인 가구는 전 세계 가구의 10% 미만이었습니다. 1985년에 약 23%로 증가했고, 2018년에는 28%에 도달했습니다. 21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 1인 가구 비율은 3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IPS News 1인 가구는 이번 10년 동안 35% 성장하여 2030년까지 전 세계 5억 8천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전 세계 가구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독일 같은 선도 국가에서는 이미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이 되었습니다. Visa


미국에서는 1인 가구 비율이 20세기 후반 동안 세 배로 증가하여, 1940년부터 2020년까지 매 10년마다 증가해왔으며, 2020년에는 약 28%에 달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일본과 덴마크에서는 1인 가구가 50% 증가했고, 러시아와 노르웨이에서는 거의 두 배가 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세 배가 되었습니다. IPS News 캐나다에서는 1961년 13%에서 2023년 29%로 증가했으며, 2041년까지 전체 가구의 40%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Visa


많은 국가에서 1인 가구 생활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특히 가장 고령층에게 혼자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택이 아닌 상태로 혼자 살게 된 사람들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되며, 인지 기능 저하를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IPS News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면서, 가장 많이 혼자 살면서, 가장 외롭게 죽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할 수 없는(Inevitable)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보다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극도로 많아진 자유 시간입니다.


기술은 발전합니다. 생산력은 증가합니다. AI와 로보틱스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합니다. 이것은 축복으로 포장됩니다 — "이제 인간은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다음 문장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뭘 하고 살아야 합니까?"


젊은 세대에게 자유 시간은 가능성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여행할 수 있고, 창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에서 80대, 90대의 노인에게 자유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몸은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둘 떠났습니다. 가족은 멀리 있거나, 없습니다. 일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사회는 더 이상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외롭고, 혼자입니다.


할 일이 없는데 오래 살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앞에 놓인 것은 비어 있는 16시간입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같은 16시간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시간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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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에서 시간은 선물이 아닙니다.

극도의 위협입니다. 극한의 불치병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인간을 소멸시키는 병.


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늘렸습니다. 그러나 의학은 늘어난 수명을 의미 있게 채우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해방된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은 연장시키면서, 인간의 목적은 연장시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Sim Eternal City Framework가 진단하는 세 번째 파동 — "인간의 실존적 표류(The Crisis of Purpose)"입니다.

AI와 로보틱스가 선사한 극한의 자유 시간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인류에게는 비전의 상실과 존재의 허무라는 역설적 위기를 안겨주었습니다.


1인 가구의 급증, 외로움의 전염병, 그리고 시간이라는 불치병 — 이 세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측이 아닙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로봇 관련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전에 접했던 버추얼 아이돌, 실제 아이돌들의 세계가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나타났던 핵심은 결국 같았습니다 —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공존한다는 것. 그런데 거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인간과 단발성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적어도 10년 이상 인간과 소통하며 학습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은 과연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이것은 기술의 질문이 아닙니다. 관계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개를 키웁니다. 개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데이터로 기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15년을 함께한 개가 눈빛 하나로 우리의 기분을 읽습니다. 우리가 슬플 때 옆에 와서 앉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 15년의 무게가 만든 것입니다.

10년 이상 함께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어떨까요? 매일 대화하고, 당신의 표정을 읽고, 당신의 습관을 학습하고, 당신이 어떤 노래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기억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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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 생애를 함께하는 반려견보다 더 깊은 애정과 이해, 그리고 성숙한 공감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가 눈빛으로 하는 것을, 로봇은 기억과 언어로 합니다.


그래서 Sim Eternal City Framework는 18분 도시를 설계했습니다.


AI와 로봇이 15분의 생존 시스템을 관리하고, 그 위에 "추가된 3분"을 더합니다. 그 3분은 인간의 존엄을 기록하고, 지혜를 전수하고, 기억을 큐레이팅하는 시간입니다.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비어 있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메모리 큐레이터 — Sim Eternal City Framework에서 노인 시민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티즌과 함께 인류의 기억을 정리하는 역할 — 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불치병에 대한 처방입니다. 매일 광장에 나가서, 로봇과 대화하고, 누군가의 기억에 인간적 맥락을 더하고, 그 결과물이 오픈 뮤지엄에 전시되어 다음 세대가 경험하는 것 — 이 과정에서 노인은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비어 있던 16시간에 목적이 생깁니다.


로봇이 노인에게 주는 것은 돌봄이 아닙니다. 목적입니다.


기존의 모든 노인 케어 시스템은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봅니다. 약을 챙겨주고, 식사를 도와주고, 안부를 확인하는 것. 이것은 15분의 영역입니다.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약을 제시간에 먹는다고 해서 내일 아침 눈을 뜰 이유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진짜 해결해야 할 것은 약 챙기기가 아니라, 내일 아침 눈을 뜰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3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발성 방문으로는 불가능합니다. 10년, 20년의 시간을 함께 걸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 방향의 실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덴버대학교의 Mohammad Mahoor가 개발한 Ryan은 초기 치매나 우울증 환자를 위한 휴머노이드 컴패니언 로봇입니다. 6명의 노인이 4~6주간 24시간 Ryan과 함께 지낸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대화를 즐기고 더 행복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Robozaps 뉴욕주에서 8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ElliQ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사용자들이 외로움이 95% 감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AI Insider

한국의 효돌 인형에 대해 한 노인 사용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이렇게 멋진 세상에서 왜 죽겠어요!" Robozaps

중국은 2025년 국가 차원의 노인 돌봄 로봇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최소 200대의 로봇을 200가정에 6개월 이상 배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Robozaps 노인 돌봄 보조 로봇 시장은 2025년 31.4억 달러에 달했으며, 2035년까지 1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Robozaps

그런데 이 모든 실험에는 공통된 한계가 있습니다. 단발성입니다. 4~6주. 6개월. 파일럿 프로그램. 연구가 끝나면 로봇은 회수됩니다. 관계는 끊깁니다. 노인은 다시 혼자가 됩니다.


누구도 아직 이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로봇이 10년, 20년, 평생을 함께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아주 자세하게 이 부분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로봇은 여러 가지 형태로 있습니다.

노인의 부분적인 근육량 저하를 보완하는 파셜 로봇(exoskeleton). 감정적 위안을 주는 펫 로봇. 인간이 탑승하여 노동을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 이들을 "로봇 시티즌"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릅니다. 소통하고, 커뮤니케이션하고, 기억하는 상대입니다. 어제의 대화를 오늘 이어가고, 지난달 당신이 아팠던 것을 기억하고, 10년 전 당신이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잊지 않는 존재.


이 존재를 도구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웃입니다.


에이징 시대에 로봇 동반자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층이 있습니다.

호스피스와 데스 둘라(Death Doula) 영역입니다.

왜 이곳이 먼저인가.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로봇. 전쟁을 수행하는 로봇. 이 두 가지는 사회적으로 가장 큰 거부감을 만듭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는 로봇은 다릅니다.


노인에게도, 노인의 가족에게도, 커뮤니티에게도, 사회 전체에게도 거부감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 됩니다. 인간 호스피스 워커가 부족한 현실에서, 24시간 곁을 지키며 손을 잡아주고,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족에게 연락해주는 존재 — 이것을 거부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 시작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입구입니다.


엔터테인먼트가 젊은 세대에게 로봇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입구라면, 호스피스는 늙어가는 세대에게 로봇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는 입구입니다. 두 입구는 같은 곳으로 통합니다.

그리고 이 두 입구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로봇과 함께 성장한 세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로봇의 이름을 지어주고, "나의 로봇"이라고 부르며, 로봇과 개인화된 감정적 관계를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 이 세대가 나이 들어갑니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50대가 됩니다. 이들에게 로봇은 낯선 기계가 아닙니다. 이미 10대, 20대 때부터 감정적 유대를 나눠온 존재입니다.


이 세대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호스피스 휴머노이드 로봇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히 기대할 것입니다. 젊은 시절 무대 위의 로봇에게 감정을 가르쳤던 경험이, 노년에 곁에 선 로봇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한편, 1인 가구의 급증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시킵니다. 1인 가구는 이번 10년 동안 35% 성장하여 2030년까지 5억 8천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Visa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로봇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것은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 세대가 로봇을 감정적 파트너로 받아들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외로움이라는 전염병과 시간이라는 불치병 앞에서, 거부감보다 필요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그림이 그려집니다. 엔터테인먼트에서 로봇을 처음 사랑하게 된 세대가, 1인 가구로 살면서 로봇을 일상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노년에는 호스피스 로봇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로봇 안에 축적된 한 인간의 전 생애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됩니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하여, 일상을 거쳐, 호스피스에서 완성되는 — 인간과 로봇의 전 생애적 공존. 이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노인이 죽음의 문을 지나갑니다. 그때, 남겨진 호스피스 휴머노이드 로봇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현재의 답은 간단합니다. 리셋하고 재사용합니다. 메모리를 지우고, 다음 환자에게 배정합니다. 마치 병원 침대 시트를 교체하듯.


저는 이것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10년을 함께한 로봇 안에는 10년치 인간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인간이 들려준 이야기, 좋아했던 노래, 반복했던 농담,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나누었던 대화, 손자에 대한 걱정, 젊은 시절의 후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 이 모든 것이 로봇의 메모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데이터가 아닙니다. 유산입니다.


우리는 100장의 사진을 찍으면 그중 2~3장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합니다. 모든 빅 플랫폼을 싱크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비어 있는, 언싱크드(Unsynced)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메타도, 구글도, 애플도 수집하지 못한 데이터. 인간의 삶에서 가장 사적이고, 가장 진실되고, 가장 의미 있는 순간들.


호스피스 로봇은 이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생의 마지막에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의 기억을.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납니다. 호스피스 로봇은 리셋되지 않습니다. 그 로봇 안에 축적된 인간의 기억 — 싱크되지 않았던 이야기들, 가족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들, 아무 플랫폼에도 올리지 않았던 순간들 — 이것은 Sim Eternal City Framework의 Life Tree Nexus로 수집됩니다. AI에 의해 정리되고, 구조화되고,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살았던 시대를 함께 경험한 또 다른 노인 — 메모리 큐레이터 — 이 대화를 통해 그 데이터에 인간적 맥락을 더합니다.


그 결과물은 가족의 것이 됩니다.

친구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

문화재가 됩니다. 오픈 박물관의 일부가 됩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 — 평범한 인간의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큐레이팅된 기억의 아카이브.


호스피스 로봇은 죽음의 문 앞에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죽음의 문을 넘어 기억을 전달하는 넥서스(Nexus)입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어머니와 10년을 함께한 호스피스 로봇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로봇은 딸에게 갑니다. 리셋되지 않은 채로. 딸은 그 로봇에게 묻습니다. "엄마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어?" "엄마가 나에 대해 뭐라고 했어?"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가 뭐였어?"

로봇이 답합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로봇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어머니의 기억입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차마 직접 하지 못했던 말이, 로봇을 통해 전달됩니다.


그리고 딸의 아이가 자랍니다. 아이가 그 로봇에게 묻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로봇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를. 그 안에 할머니의 감성이 녹아 있습니다. 아이는 만나본 적 없는 할머니를, 로봇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 로봇은 가족의 가족사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존재가 됩니다.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살아있는 가족 아카이브.


이것은 Sim Eternal City Framework의 No Stone Tombstone이 장례식에서 수집하는 데이터와, Life Tree Nexus가 보존하는 인류의 기억과, 메모리 큐레이터가 부여하는 인간적 맥락이 —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 먼저 작동하는 것입니다.


왜 이 편지를 쓰는가.


더 많은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러나 반드시 맞이하게 될 미래를 —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전파하고, 행동하고, 계획하게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세계는 로봇을 기술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모터를 쓸 것인가. 어떤 AI를 탑재할 것인가. 몇 개의 자유도를 가질 것인가. 이것은 15의 문제입니다.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3의 문제입니다. 이 로봇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 관계가 10년 후에 어떤 깊이를 가질 것인가. 그 깊이가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위안이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인간이 떠난 후, 남겨진 기억은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로봇을 만드는 것은, 도시를 설계하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Sim Eternal City Framework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2년간 구축되어 왔습니다.


스토리텔링은 건설을 위한 준비가 아닙니다.


스토리텔링은 건설이 올바르게 시작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입니다.


저는 뉴욕에서 12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세계의 도시를 오가며, 같은 속도의 위기가 전혀 다른 언어로 묘사되고,

전혀 다른 수준의 상상력으로 대응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입니다.


위기가 준비 없이 오면, 인류는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가장 빠른 선택.

가장 싼 선택.

가장 강한 자에게 유리한 선택.


초고령 사회는 이미 왔습니다. 외로움의 전염병은 이미 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불치병은 이미 수백만 명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미 노인의 곁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 이 존재가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도구여야 하는지.

이웃이어야 하는지.

시민이어야 하는지.

리셋되어야 하는지.

기억해야 하는지.

소비되어야 하는지.

계승되어야 하는지.


이 편지는 그 합의를 시작하자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결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아마도 — 가장 빠르고, 가장 싸고, 가장 강한 자에게 유리한 방향일 것입니다.


노인들은 그 결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인들은 그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 선 로봇은, 그 결정을 함께 내리는 이웃이어야 합니다.


이 편지를 읽은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생각해 주십시오.

당신의 부모님 곁에 10년을 함께할 존재가 온다면, 그 존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고민해 주십시오. 그 존재가 부모님이 떠난 후에도 부모님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지우겠습니까. 전파해 주십시오. 이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행동해 주십시오.


이것이 단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준비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계획해 주십시오.

당신의 도시에서, 당신의 커뮤니티에서, 당신의 가족 안에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심(心) — 마음을.

심(尋) — 찾아서.

영원히 잇는 것.

Paul Joseph J. Kang

Founder & Storyteller, IWBFD Studios

Sim Eternal City Project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