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보다 조금 위, 트로이에서 띄우는 편지
Dear 폴 & 찬우,
두 분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이곳 미시간에서는 가을의 기운이 가득 느껴져요. 매일 학교로 라이딩하는 길도 낙엽이 늘고 서서히 길어지는 저녁 그림자를 보면서, 이곳의 축제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트로이란 도시는, 디트로이트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작은 곳이에요. 사람들에게 미시간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 디트로이트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보다는 좀 더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이 강한 곳이죠. 이곳은 참 재미있는 곳이에요.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과 부품회사들, 그리고 전기자동차 관련 회사들 덕분에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영국에서 살던 시절엔 매일같이 소수자로서의 외로움을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감정보다는 익숙한 따뜻함을 더 자주 마주해요.
아이도 이곳에서 많이 적응했어요. 처음엔 영어 한 마디 못하고 학교에 갔는데, 이제는 도서관에서 한국어 책을 빌려오고 친구들에게 K-pop을 알려주는 걸 보면 참 대견하답니다. 김밥을 싸가면 아이 친구들이 다들 같이 먹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희 어릴 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구나 싶어요. 이곳에서의 일상은 그런 작은 변화들 속에서 특별하게 다가와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낯설고 두렵던 이곳이, 이제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야 비로소 제 차례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작년 2월, 좋은 질문 만들기 마지막 신청자로 폴을 만나 미국에서 이렇게 연을 이어오게 되었죠. (그러고 보니, 찬우는 폴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두 분의 인연이 참 궁금해지네요.)
낮에는 폴과 함께 디지털 브리지스 뉴스레터를 만들고, 아이를 돌보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에는 한국 팀원들과 새벽까지 일하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긴 하루들이었지만 그만큼 배움도 많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던 중, 올해 5-6월 FDA 통역 건으로 한국에 잠시 다녀온 것을 계기로 함께 일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프리랜서 통번역사로서의 새로운 길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비로소 온전히 저만의 시간이 찾아오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도 하고, 오랜만에 취미 생활도 즐기면서 언어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저를 다시금 채워주고 있어요. 요즘은 이런 자연스러운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일을 해나가는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바벨파이 프로젝트도 그 행복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지요. 앞으로 더 자주 소통하면서 함께 멋진 결과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찬우님의 서울 일상도 궁금하네요. 하루하루 어떤 이야기를 채워가고 있는지 소식 전해주시면 좋겠어요 :)
따뜻한 마음을 담아,
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