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땅 대신 우리의 '생각'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 길들이기

나는 가끔 소름 끼치는 데자뷔를 느낀다.


화려한 AI의 답변과 편리한 기술의 홍수 속에서, 오래전 역사책에서 보았던 흙먼지 날리는 풍경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지금 전 세계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적응하고, 그 부속품으로 사용되는 관점으로만 돌아가고 있다.


첫 질문은 우리가 한다. AI는 친절하게 답한다. 하지만 그 주고받음 속에서 내가 원했던 답, 내가 편안해하는 답에 갇히게 되고 결국 나는 '사유하는 고통'을 멈춘다.


재질문이 사라진 자리엔 AI가 쳐놓은 울타리만 남는다.


이것이 과연 단순한 기술의 발전일까?


물가는 치솟고, 전기세는 오르고, 내 월급만 빼고 모든 사회적 비용이 폭등한다. 공급과 수요의 원리? 그런 건 이미 교과서에나 박제된 이야기다. 마치 누군가 내 숨통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정교하게 조절하듯, 가랑비가 아닌 '작은 바늘 비'처럼 삶의 비용은 나를 찔러댄다.


나는 여기서 다소 위험하고 미친 생각을 해본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자금 유지를 위해 강남을 개발하고 부동산을 띄웠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건설사를 통해 거대한 자금이 돌고, 그 혜택은 극소수에게 집중되었다. 화려한 빌딩 숲 아래, 서민들의 삶은 터전에서 밀려났다. 우리는 그 '아파트 공화국'으로 경제를 쌓아 올렸기에,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는 강을 너무 멀리 건너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AI 열풍이 그때와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단지 '부동산'이 '데이터'로, '건설사'가 '빅테크'로 바뀌었을 뿐이다. AI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천문학적인 자금이 움직이고, 그 이익을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소비와 적응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그때는 '땅'이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킨 콘크리트를 팔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팔아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 뼈아픈 것은, AI 기술은 자고 일어나면 진화해 저만치 앞서가는데, 이를 감당해야 할 인간의 사회 구조와 의식 수준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별반 선진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칼을 쥔 어린아이처럼 위태롭다. 아니,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채, 언제 켜질지 모르는 성냥불 하나에 노심초사하는 형국인지도 모르겠다.


이용하는 것인가, 이용당하는 것인가?


답이 없다고 한탄만 하기엔, 우리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의 파도가 너무 높다.

진짜 원인은 수요와 공급 곡선 밖에 있다. 어쩌면 50년 전 강남의 흙먼지 속에 숨겨졌던 그 욕망이, 지금 차가운 서버실의 불빛 속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진화하고 있는가?


우리가 신기함과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이 시간에도, 데이터(DATA)는 우리를 겨눌 칼을 갈고 있다. 냉혹한 기술 앞에서 '순수함' 따위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오직 인간의 온기에서만 전이되는데, 각자의 온기가 너무 약해 나눠줄 생각조차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live/Liwtv5x90OY?si=CBU992y18Z4FdlM6

※영상참고: 2026년 1월 2일(금)/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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