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난독증

인공지능 길들이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매일 덮쳐옵니다.


그들은 '시간 절약'과 '효율성'이라는 아주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립니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집단 지성을 증강하기 위함이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서비스의 혈관에는 결국 <자본>이라는 차가운 논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돈을 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드는 사람도, 쓰는 우리도 결국은 각자의 이익을 좇습니다. 그러니 "돈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말로 서로를 기만하며 우아한 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이 편리한 인공지능이 던져주는 요약된 정보, 그 달콤하고 매끄러운 '정답'들에 습관적으로 매몰될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정신적 비만' 상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정보가 마치 제삼자가 검증한 객관적 사실인 양 믿어버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독히 독립적이고 비밀스러운 알고리즘이 뱉어낸 결과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확인된 사항'이라는 착각 속에 갇혀, 인지 편향이라는 좁은 방에 스스로를 더 강하게 가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확신이 아니라 맹신에 가깝습니다.


잠시 자연을 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섭취하면 배설해야 합니다. 먹으면 화장실을 가야 하고, 피곤하면 잠을 자야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디톡스(Detox)> 시스템입니다. 들어온 만큼 비워내지 않으면 병이 듭니다.


그렇다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와 AI의 데이터 폭격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어떻게 배설하고 해독해야 할까요? 뇌가 정보의 독소에 절여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 해답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행위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일기를 쓰는 것.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씹어 먹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자기화의 처절한 실천.

특히, <독서>입니다. 차가운 액정이 아니라, 손끝에 침을 묻혀 넘겨야 하는 물성(物性)을 가진 ‘종이책’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종이책을 넘기며 문장을 씹어 삼키는 그 순간, 뇌에서는 '배 측 경로(Dorsal Stream)'라는 신경 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글자를 보는 게 아닙니다.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하며, 나의 기존 기억과 연결하는 인간만이 가능한 고도의 지적 활동입니다.



배측경로는 독서 시 안구 운동을 제어하고 문자의 공간적 순서를 결정하는 '뇌의 항법 장치'이며, 이 기능의 저하는 읽기 유창성 저하의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음운 처리 능력의 결함이 아니라 시공간적 주의력의 결함 (https://www.cell.com/trends/cognitive-sciences/abstract/S1364-6613(09)00283-6?large_figure=true) 결국, AI 요약본만 읽는 습관은 배측 경로의 공간 제어 기능을 약화시켜 안구 운동의 정밀도를 떨어뜨리며, 이는 결국 긴 글을 읽지 못하는 <후천적 독해 장애>를 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AI가 1초 만에 내놓는 요약본을 볼 때 우리 뇌는 멈춰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페이지의 난해한 문장을 이해하려 끙끙댈 때, 우리 뇌는 비로소 <생각>이라는 운동을 합니다. 땀을 흘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보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나만의 사유를 구축하는 유일한 생물학적 방어 기제입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 바쁜 시간에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라고.

하지만 나는 뼈아픈 대답을 드려야겠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되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얼마나 바쁜지, 하루 24시간을 정량적으로 측정해 보셨습니까? 스마트폰을 무의미하게 스크롤하는 시간, 멍하니 영상에 뇌를 맡긴 시간들을 제외하고도 정말 시간이 없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바쁨'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생각하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나태함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쁨이 아니라, 본인의 게으른 한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합니다.


인공지능이 답을 주입하려 할 때, 잠시 멈춰 "왜?"라고 묻는 힘.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려고 하는 탐구 정신. 인공지능을 통해 쉽게 쓰인 글들을 날카롭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힘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구매하고, 선택하는 데이터의 하청업체로 반드시 전락할 것입니다.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AI의 미친듯한 속도에 저항하며 종이책을 폅니다. 한 시간 정보를 넣었으면, 한 시간 비워내며 사유합니다. 이 느리고 답답하며 불편한 행위가, 나를 가장 <나답게> 지켜주는 유일한 무기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뇌는 지금, 무엇을 소화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화되지 않은 정보들에 체해 있지는 않습니까?

IMG_3101.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요즘엔 독해력도 마르고, 내 침도 마른다..ㅠㅠ"

©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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