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존재감의 진짜 주소

심리지능

핵심 요약

(1) 평가의 모순: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치 평가는 타인의 시선에 구걸하는 모순 속에 산다.

(2) 쉬운 선택의 덫: 스스로 묻고 답하는 치열함 대신, 남을 흉보고 권력에 기생하는 '쉬운 선택'을 하며 영혼을 방치한다.

(3) 개화(開花)의 조건: 전쟁과 권력 과시가 아닌, 누군가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선순환의 씨앗'이 될 때 비로소 진짜 존재감이 꽃핀다.

인간은 참으로 기이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산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느끼면서도, 정작 그 '나'의 가치를 매길 때는 철저히 '남'의 눈치를 살핀다.


나는 이것을 '자아의 외주화(Outsourcing)'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남을 중심으로 나를 평가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친다. 그 상처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지만, 냉정하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남 때문이 아니다. 그저 타인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위약한 마음과, 스스로 존재를 증명할 힘이 없는 영혼의 허덕임일 뿐이다.


우리는 그 허덕임을 감추기 위해 항상 '쉬운 선택'을 한다. 마음 한구석에 수치심과 도덕심, 그리고 사랑 같은 고귀한 가치들을 쓰레기처럼 쓸어 넣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남을 흉보고, 정죄하고, 제멋대로 재단한다. 나보다 사회적, 정치적 힘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착한 사람'인 척 연기를 구걸한다.


그러고는 다시 골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이번에는 그 잣대로 자신을 난도질한다. 술, 담배, 커피, 자극적인 음식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애쓴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 남을 죽였고, 돈을 좇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언론이 쳐놓은 호도의 덫을 덥석 물고는, 자신이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못 견뎌하면서도 방관자로서 그 씹는 맛을 즐긴다. 즐기는 건 남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존재감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나에게 묻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독한 문답이 두려워 자꾸만 외부로 눈을 돌린다.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고, 선의를 가장해 능력을 자랑하는 그 모든 행위들. 그것은 존재감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는 '불구적 심리'의 발버둥이다.


그렇다면 진짜 존재감은 언제 확인되는가? 답은 명확하다. '살림(save or mend)'에 있다.


내가 나의 이익이 아닌 누군가를 살려내고, 그 살아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회복의 반복. 내가 그 선순환의 작은 씨앗이 되었음을 확인할 때, 우리의 존재감은 비로소 화려하게 개화(開花)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살렸는가, 아니면 죽였는가. 오직 그 데이터만이 남는다. 인간은 참 청개구리 같다. 이토록 명확한 생명의 길을 두고, 항상 반대인 파괴의 길로만 쉽게 가려한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린다. 이제 그 징징거림을 멈추고, 이젠 내 씨앗을 심을 때다.


IMG_3883.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선택은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할 때 결국 내가 위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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