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고서 밭이며 논을 갈고 보리를 뿌린다.
보리는 늦가을 지나며 한겨울에야 싹이 터야 여문다,
봄날에 싹이 트면 헛것일 뿐 여물지 않는다.
12월이나 1월 보리밭은, 함박눈에 잠겨 겨울잠을 잔다.
겨우내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한 눈속에서 겨울을 난다.
2월의 보리밭은, 놀이터 아이들처럼 방방 뜬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녹으며 뿌리가 뜨기 때문이다.
3월의 보리밭은,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봄볕에 녹은 물이 보릿대를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4월의 보리밭은, 지랄맞지만 부럽다.
청춘이라는 이유 하나뿐이다.
5월의 보리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심하게 흔들린다.
바람이 잠들지 않은 이유다.
6월의 보리밭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보릿가을 끝내고, 가을을 위해 모를 내야 할 이유다.
운좋게도,
태워지지 않는 보릿대는 마당 구석으로 옮기어져
여름내 모깃불로 태워졌다.
그래도, 모기는 모였고,
밥을 먹고, 수박을 먹던
마당의 모깃불도 연해질 즈음,
쫏기던 모기도 바쁜 날개를 접었다.
그렇게, 여름밤은 깊어만 갔다.
ps.
우리네 인생도 보리처럼,
나고서 자라고
또 그렇게 깊은 밤을 지나는가보다.
ps.
사진은 보릿가을이 한창인 고향 들녁 풍경이다.
하얀 연기는 보릿대를 태우는 중이다. 그래야,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
오른쪽은 고정희 시인의 고향 송정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