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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Nov 07. 2020

도망가고 싶을 만큼 일을 못한다고 느껴질 때

이직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올해 1월, 2020년을 맞이하는 첫 워킹데이에 나는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생인 내게 참 많은 기회와 추억을 준 기업이었고, IT산업에 종사하는 꿈을 꾸게 해 주었으며,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어른들이 많았던 기업이었다. 신입 공채부터 수시채용까지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적이 여러 번이었기에 나의 이직은 참으로 즐겁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주니어라는 단어 뒤에 숨을 수 없는 연차가 되었기에 이직, 그리고 적응에 대한 부담감은 심히 대단했다. 늘 해오던 업무도 더 잘하려는 욕심을 부리다 보니 오히려 핵심을 놓치기 일쑤였고, 잘 모르는 도메인을 깊숙이 다뤄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이슈가 발생했을 때 업무 처리 시간이 참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도망가고 싶을 만큼 일을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숱하게 많다.


이직을 결심하기 전에도 이러한 고충이 있을 거라 분명 알고 있었다. 잘 알면서도 이직을 결정하게 된 건 새로운 회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도 있었지만 '고인 물'에 대한 공포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5년 넘게 다니면서 특정 서비스, 특정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과 지식이 쌓였고, 자신감이 생겼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뽕에 취해 오만한 태도를 보여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이 능력이 온전한 나의 능력이라기 보단, 내 시간과 지난 과거가 쌓은 훈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큰 용기를 내서 이직을 했지만 내가 이 조직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는 고민이 들 때면 자존감은 바닥이 된다. 특히 예전 회사에서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하고, 함께 으쌰 으쌰 하면서 서비스를 만들던 따뜻한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직도 다른 팀과의 미팅만 있으면 어깨까지 긴장이 되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동문서답하거나 지나치게 뉴비의 입장에서 질문을 할 때면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아. 오늘도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회사에 나가서 전쟁터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용기는 바로 이런 힘들었던 경험이 과거에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난 커리어에서, 내 이력서를 빛내주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힘들게 만들어졌다.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분명 그 시간은 반짝이는 보석이 되어 돌아온다. '힘들다'의 다른 의미가 '성장'이라는 점을 알기에, 지금의 시간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참 잘한 선택, 참 많이 성장한 시간으로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오늘도 버틸 수 있다.


입사 후 지난 10개월 동안 나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핵심인 광고 산업이 동작되는 흐름과 관련된 국내외 서비스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최고의 동료들과 미래의 광고산업을 바꿀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에 한 스푼 정도 보탬이 되었다. 특히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하기 위한 A to Z를 경험해보았던 것은 지금 내 연차에 얻기 힘든 경험이자, 큰 배움이었다. 그리고 이직의 가장 큰 장점은 이제 다른 곳에 가서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고인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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