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운동에 관하여

그 코르셋, 내가 입힌 게 아니다

by Dilettante

탈코르셋 운동에 관련해서 글을 써보려 한다.


서론: 일단 뭔가 페미니스트들이 외모와 관련해서 하는 운동이라는데 정확한 목적이나 정의가 모호하다.


탈(脫) 코르셋 운동이라 하여 페미니즘 한다는 여자들이 언제부턴가 머리를 중학생 남자아이처럼 자르고 다니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지 좀 되었다. 이 현상을 중심으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얘기도 오가고 “꾸밈 노동”같은 이상한 신조어들도 생겨나며 한동안 인터넷에서 떠들썩했는데, 이 운동이 시작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이들이 뭘 하고 싶은지, 목적이 뭣인지에 대해선 애매한 상태이다.


일단 표면적으로 이해해보자면
i) 사회가 본인(여자)들에게 “인위적인 미(美)의 기준을 강제로 씌워놨고”,
이를 바탕으로
ii) 이 인위적인 미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제약하는 사회구성주의적 제도로 작용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가 여성에게 코르셋 (Corset)을 씌웠다”라고 전제를 깔고,
iii) 이런 사회적인 억압에서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의미에서 “탈(脫) 코르셋 운동”을 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도 어쨌든 근간은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의 운동이다 보니,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사회”는 당연히 “가부장제도 사회”이며, 이들이 말하는 코르셋은 가부장제 하의 남성들이 여성을 억누르고 억압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으로 통용된다.


쉽게 말해서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코르셋을 씌워놨으니, 여자들이 이 코르셋을 스스로의 의지로 벗겠다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이 코르셋을 씌우는 과정에서 드는 물질적/시간적 자원 소모를 모두 여성에게 떠넘겼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부가비용과 노동이 “꾸밈 노동”이라는 개념이라고들 한다. 즉, 여자들은 코르셋을 유지하기 위해 “꾸밈 노동”을 해왔고, 이런 노동은 부당하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단 저 뒷부분, 즉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것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라는 개인 행위에 대해선 나는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능 보는 게 싫다 해서 “대학 입시 거부 운동” 하는 고3들도 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싫다 해서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듯이 본인이 평가하길 자신이 사회의 규범에 맞추는 데 있어서 들이는 노력과 자원 소모가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평가하면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이니까 말이다.


여담으로, 실제로 “탈코르셋” 하겠다는 사람들을 봤을 때 정확하게 뭐가 탈코르셋 행위에 범주적으로 들어가는지도 애매하다. 일단 머리를 군대 끌려가기 직전인 남자 수준으로 짧게 자르는 게 보편적이라고 생각했으나 또 보면 단순히 단발로 머리를 자르는 사람들도 탈코르셋 했다고 하고, 화장을 안 하는 게 보편적이라 생각했는데 또 어떤 화장은 되고 어떤 화장은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씻지 않는걸 탈코르셋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예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이건 본론 내용과 좀 거리가 멀어지니 이 부분에 대해선 일단 이쯤까지만 얘기하겠다.


그런데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게 내놓은 명분과 실제 하는 행동에 큰 부조화가 있다. 이론상으로는 사회가 강요하는 미적 기준으로부터 탈피하고 개인의 미적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게 목적인 거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탈코르셋 한다는 사람들로부터 부치 레즈비언 (Butch Lesbian, 레즈비언 중에서도 고의로 남성적으로 보이게끔 외모를 꾸미는 이들)같이 보이게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으면 “흉자” (“흉내 자지”의 준말로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끼리 “가짜”,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는 이를 지칭하는 페미니즘 용어)로 불러가며 여자들끼리 싸우는 듯 한 양상을 많이 봤다.


이게 만약 탈코르셋 하는 사람들의 취지가 “가부장제가 정한 것이 아닌 여성 스스로가 자체적으로 정의 내린 미의 기준을 만들겠다”라는 취지라면, 취지야 어찌 되었든 최초의 명분인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미의 기준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한다”라는 취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억압 대상이 가부장제에서 탈코르셋 하겠단 페미니스트들로 바뀐 것뿐이 되는데, 이는 마치 리비아에서 반군들이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숙청시킨 뒤 반군들이 새 독재자가 되어서 리비아 시민들을 엿 먹인 양상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반면 탈코르셋 운동 자체가 “사회가 보편적으로 삼는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자”라는 해석에 좀 더 힘을 주자면, 이는 역으로 “아름답지 않은”, 즉 “못생겨” 지자라는 취지인데 그럼 탈코르셋 운동은 못생기지 못한 여자들에게 “못생김”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어느 쪽이든 최초의 명분을 기점으로 봤을 때 방향을 잃은 운동처럼 보이지만, 뭐 본인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니까 “공부가 부족해서” 이걸 이해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1) 여기에서 계속 남자를 끼워 넣는가. 남자들은 여자들의 “꾸밈" 그 자체엔 관심도 없고 시킨 적도 없다


이쯤에서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계속해서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애당초 코르셋을 씌웠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이 전제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소리인지 논리적으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꾸미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이 계속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꾸밈 노동을 시켰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노동시킨 적도 없고 엄밀히 말하자면 딱히 하길 원하지도 않는다.


꾸밈 노동에 있어서 남자들의 지분은 실질적으로 없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이며 립글로스이며 100가지 이상의 쉐이딩 톤에 대한 관심도 없고 솔직히 이해도도 없다. 남자 입장에선 그냥 다 “빨간색” 입술 칠일뿐이다. 코랄이니 로즈니 버건디니 루비 레드니 무슨 차이인지도 알기 어려운 색 놀이에 집착하는 건 여자들이지 남자들이 아니다. 그 외의 변수에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그저 피부가 부드러우면 이쁜가보다 하고, 머릿결이 좋으면 이쁜가보다 하고 지나갈 뿐이다. 얼굴에 무슨 로션과 파우더와 클렌져와 폼을 바르는지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머리에 무슨 트리트먼트를 하고 무슨 샴푸를 쓰는지에도 남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남자들은 사실 굉장히 단순한데, 미의 기준으론 두 가지 변수만 본다.


a) “이쁜 여자”가 좋다.

b) “이쁜 여자” 중에선 “이쁠수록” 좋다.


이게 다일뿐이다. 그리고 이 “이쁘다”의 기준도 남자들끼리 무슨 국제 가부장 협회 회의를 통해서 매년 만나 어떤 인위적인 기준을 통해서 어떤 변수를 포함시켜 어떻게 미의 기준을 상정할까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과학적으로 미의 기준이라는 건 상당 부분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이며 이는 객관적 과학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될 수 있다. 갓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인간 아기들도 이쁘고 못생긴 얼굴을 가리며 [1], 보편적인 대칭 균형성 외에도 일반적인 성인들의 미적 기준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으로 갓난아기들은 잘생기고 이쁜 얼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2]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게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자면, 생후 하루 된 아기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라는 것은 이는 선천적인 요소이지 사회적으로 내면화/교육화된 개념이 아니란 뜻이다.)


또, 인간은 (남녀 양측 모두) fMRI 촬영 연구 결과 잘생기고 이쁜 사람을 보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며 [3] 그렇기에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 신뢰도, 친숙함 등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객관적 연구도 다수 존재한다.


다시, 단순하게 말해서 남자들은 그저 이쁜 여자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쁜 여자 중에선 이쁠수록 좋아하는 것뿐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자들은 불특정 한 “아무” 이쁜 여자가 좋은 거지, 반드시 어떤 특정 여성이 이뻐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성별 간 호감 시장(市場)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이쁜 여성”에 대한 수요를 시장의 공급에 맞춰서 충족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남자들은 특정한 한 여성이 꾸미던 말던은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남성은 꾸며도 이쁘지 않은 여자보단 꾸미지 않아도 이쁜 여자가 더 좋고, 둘 다 꾸미지 않았으면 그중에서 더 이쁜 여자가 좋고, 둘 다 꾸몄으면 그중에서 더 이쁜 여자가 더 좋은 것뿐이다. 요점은 이쁜 여자가 좋은 거지 얼마나 꾸밈에 시간과 자원을 소비했는지가 아니다.


남자는 그렇기에 여자들에게 꾸미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꾸밈 노동은 이러한 시장의 수요공급 작용에서 여성들이 “이쁜 여성”의 공급에 스스로를 편입하기 위해서 하는, 자기 자신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지 남자들이 하기 싫은데 강요한 억압이 아니라는 것이다.


2) “꾸밈 노동”의 군비경쟁 (Arms Race)는 여자들이 야기하는 것이지 남자가 일으키는 게 아니다


여기서 근데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저 위의 b 변수다. 남자는 “이쁜 여자” 중에선 “이쁠수록” 좋다는 것이다. 미(美)라는 건 절대적 상한선이 있어서 이를 통과하면 모두 “이쁘고”, 그렇지 못하면 “안 이쁜”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평가적인 요소이다. 불특정 여성 A가 “이쁘다” 하더라도 옆에 “더 이쁜” 불특정 여성 B가 있으면 A는 상대적으로 “덜 이쁜”게 되는 것이다. 미(美)라는 것도 결국 줄을 세워놓으면 “제일” 이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으로 이쁜”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취향에 따라 상위권에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고 어느 정도 상위권의 규모가 바뀔 순 있지만, 그렇다고 상위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쁜 여자가 좋지만, 이쁜 여자라면 더 이쁜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장 이쁜 여자들의 관심과 환심을 사기 위해서 투쟁한다. 모든 남자가 원하는 가장 이쁜 상위권의 여자들은 한정되어있지만 모든 남자는 이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들은 시간과 자원을 소비하고 이런저런 구애를 하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쁜 여성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하는데, 이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쪽 입장에선 죽을 맛이지만 이런 에너지 소모의 혜택을 받는 수혜자 입장에선 이 모든 게 나쁠 게 없다. 어차피 유성 생식하는 포유류 입장에서, 상대 성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장점이면 장점이지 단점은 아니다. 거기다 선호도가 높은 개체일수록 받는 혜택은 그만큼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공급은 한정적이고 적은데 수요는 무한 데에 가깝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전략적으로, 여성에게 있어선 이왕이면 “안 이쁜”것보단 “이쁜”것이 유리하고, 일단 “이쁜” 범주에 들어와도 “더 이쁜” 영역으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것이다.


이게 “꾸밈 노동”의 군비경쟁의 배경이다. 남자들의 음모론에 의해서 뭔가 기묘하고도 신비한 제도적 장치를 문화와 사회규범에 녹여놔서 여자들을 억압하고 괴롭히고 골탕 먹인 결과물이 아니라, 순전히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개개인의 여성들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취하는 합리적 선택이 집단행위 규모로 이뤄지자 생겨나는 현상일 뿐이다. 즉, 나에게 유리한 전략은 남에게도 유리한 전략이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똑같은 전략을 취하다 보니 그 형태가 극단적으로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자들은 단순하게 그저 이쁜 여자들을 좋아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 국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군비경쟁 현상처럼, 끝이 없다.


꾸밈이 없는 디폴트 상황에선 유전적으로 더 아름다운 여성이 혜택을 얻을 것이고, 이런 유전적 디폴트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시각적 분장술이 발전하면 태생적 외모 이상으로 자신을 향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외모 향상술은 점점 발전하고, 더 기발 해지며 더 대범해지고, 어느 지점에 와서 가장 남성들에게 반응이 좋은 “이쁨”의 기준이 발견되면 그 기준에 맞춰서 여성들이 그에 맞춰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으로 “꾸밈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이쁜 사람은 태생적으로 못생긴 사람보단 절대적인 선에선 “노동”을 덜 해도 되겠지만, 이쁜 사람들은 경쟁상대가 다른 이쁜 사람이기 때문에 단순히 손을 놓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군비경쟁으로 군함을 사들이는 와중에 러시아와 미국은 핵무장을 확장하듯,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꾸밈 노동의 군비경쟁은 확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럼 왜 도대체 이런 외모에 기반된 “꾸밈 노동”은 절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부각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건 실제로도 맞는 말인데 그 증거로 화장 업계 자체의 규모로만 보더라도 여성 미용용품 시장이 남성 미용용품 시장의 몇백 배 규모라는 것만 보더라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사실 이 글이 너무 길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다 쓰지 않겠지만, 아주 극히 단순하게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인간을 포함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성생식 포유류과 동물은 암컷들은 남성의 외모적 건강지표와 자원수급 능력 두 가지 변수를 좋은 짝의 기준으로 삼는 반면, 수컷들은 오로지 수태력(受胎力, 후세를 건강하게 많이 낳을 수 있는 능력, Fertility)에 기반된 외모적 건강지표 한 변수만을 고려해서 짝을 고르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요소로 상호관계 지표상 수태력과 관련된 외모가 차지하는 비율이 0.94인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 지표 (Socio-Economic Standing, SES)과는 0.0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은 반대로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요소로 상호관계 지표상 SES가 0.5 수준이었다. [4]

단순히 말해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미의 기준) 변수가 두 요소로 나뉘어 희석되는 반면 남자는 이 변수가 외모 하나로 쏠리기 때문에 역으로 전략이 특화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은 얘기를 원하는 분은 따로 이 글 밑 댓글창에 요청하면 가능한 선 내에서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꾸밈 노동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건 남자들이 시킨 것도 아니고 꾸밈 노동이 극대화된 배경 또한 남자들이랑은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하건대, 남자들은 여자들의 꾸밈에 관심이 없다. 남자는 그저 이쁜 여자에게 관심 있을 뿐이다. 꾸밈 노동은 이에 대응해 여성들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한 전략일 뿐이다.


3) 그럼 결국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게 뭐인가


지금까지 이 글을 통해서, 탈코르셋 운동이 내세운 명분적 정의와 실제 행동 양상에 부조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서 이 현상에 남자들이 실제론 아무런 인과관계상 영향이 없다는 것도 설명했다. 그런데 이걸 탈코르셋 하겠다는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이 모를 리는 없다. 실제로 탈코르셋 하면서 남자들에게 뭘 요구하는 게 다른 페미니즘 행위들에 비해서 눈에 띄게 적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독특하게도, 일단 탈코르셋 운동도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가부장제도는 기본적으로 걸고넘어지긴 했지만 실제 행동 양상으로 봤을 땐 남자들에게 뭔가를 하라 마라 하는 얘기가 상당히 적다. 통상적으로 항상 나오는 레퍼토리는 그대로 끼워 팔은 경향도 없진 않다: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받는 그 자체를 뭔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행하는 인위적이며 고의적인 폭력행위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주장도 간간히 떠돌아다니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 대 남성이 아닌 여성 간의 관계 설정에 더 강하게 작용하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들이 말하는 “코르셋”을 입힌 게 사실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끼리 서로 입힌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위의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타인의 규범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스스로를 그 규범으로부터 해방하면 그만인데, 이상하게 이걸 타 여성에게도 강요하는 형태가 탈코르셋 운동에선 비정상적으로 많이 보인다. 너도 나도 모두 뭔가 사회규범상 정해놓은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의식 표현을 하면 좋으련만 죄다 머리를 짧게 자르다 못해 무슨 학도병처럼 잘라버리곤 남들도 그러도록 강요하는 모습이 상당히 많다. 양상으로만 보면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제 3자의 강요로부터 해방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일률적으로 최대한 못생겨지길 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흉자”가 되고 남자한테 관심 한번 받아보려고 기 쓰는 불쌍한 여자로 매도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솔직히 꼴이 흉하고 보기 좋지 않다.

beauty-blogs-girls-in-the-beauty-department-2012-11-12-1113-anne_hathaway_pixie_haircut_bd.jpg.jpg 픽시 컷 (Pixie-cut)을 한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픽시 컷이 아니다.

더 재미있는 현상은, 어떤 면에선 당연한 소리겠지만 탈코르셋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여러 의미에서 객관적 지표로 “꾸밈 노동”을 해도 꾸밈 노동의 군비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간간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탈코르셋을 했다며 인증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요한 건 본인이 미(美)의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은 이 탈코르셋 운동에 상당 부분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구사항들과 분쟁과 논란은 그래서 이례적으로 페미니즘 관련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커뮤니티 내에서 여파가 대체로 제한되었으며, 대부분의 경우처럼 비용 없이 구호만 외쳐도 되는 다른 페미니즘 운동들과는 달리 부대비용이 상당히 큰 관계로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 내에서도 크게 동조를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탈코르셋 운동은 못생긴 여자들이 꾸밈 노동하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자,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내러티브와 명분을 제공하는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꾸밈 노동에서 인풋 대비 아웃풋 효율이 상당히 좋은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까지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운동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싸움판에서 한쪽은 칼을 들고 나오고 다른 쪽은 총을 들고 나왔는데 공평하게 싸우자고 칼 든 쪽이 상대방에게 둘 다 쥐고 있는 무기를 버리자고 제안하는 꼴이다.


당연히 총 든 쪽이 이런 조건을 들을 이유는 없다.


4) 뭘 해도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건 주 지지층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근데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가령 정말 모든 여자들이 다 “탈코르셋” 해서 머리를 밀고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1장에서 말했지만 남자들은 이쁜 여자가 관심 사지 화장한 여자가 관심사가 아니고, 모두가 동등한 디폴트 상태에 부분적 핸디캡들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선천적 요인으로 더 이쁘고 덜 이쁘고 그냥 어떻게 보더라도 못생긴 사람은 있을 테니까 말이다. 머리를 짧게 자르다 못해 삭발을 해놔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나오는 샤를리즈 테론은 여전히 이쁘며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 역시 여전히 매력적이고 "G.I 제인"에 나오는 데미무어도 머리털 한가닥 없이도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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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률적으로 머리를 밀어버리면, 외모적으로 평등해지는게 아니라 그저 "긴머리"라는 변수를 외모에서 빼버리는 것 뿐이다. 그 외의 변수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한 성별의 미와 매력은 상대 성별이 정하는 법이다. 잘생긴 남자는 결국 여자가 정하는 거고, 이쁜 여자는 결국 남자가 정하는 건데, 인위적 조건이 다 동등하다면 선천적 조건들에 의해서 그대로 이쁜 여자 좋아하고 이쁜 여자라면 이왕이면 더 이쁜 여자 좋아하는 남자들은 전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럼 이때 탈코르셋까지 다 하고도 도태되고 선택받지 못해서 불행한 페미니즘 하는 여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애당초 한남한테 관심 따위 받기 싫었기 때문에 괜찮다 하면 뭐 상관없지만,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까지 탈코르셋을 그렇기 시키려 했던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남았는데, 이런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나오는 반칙행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다 탈코르셋을 한 상황에선, 한두 명만 “반칙”으로 다시 꾸밈 노동을 하면 다른 이에 비해 월등하게 미의 기준이 올라가고 그에 따른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런 일탈 행위는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한두 명이 해서 기하급수적인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결국 일탈자들은 그만큼 늘어나서 결국 자연 상태, 즉 꾸밈 노동의 군비 경쟁 상태로 다시 돌아올 텐데 이것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강제력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코르셋”을 더 많이 입혀서 더 세게 묶는 방법이겠지만, 탈코르셋 하겠다는 사람들이 역으로 가장 코르셋에 집착한다니 그런 위선과 모순을 일으킬 리가. 내가 이것까지 이해를 위해선 젠더 감수성이 더 필요로 하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1]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dn6355-babies-prefer-to-gaze-upon-beautiful-faces/

[2] https://www.ncbi.nlm.nih.gov/pubmed/7845772

[3] https://www.ncbi.nlm.nih.gov/pubmed/11709163

[4] https://www.youtube.com/watch?v=Zt4GEMQKr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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