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ㄷㅣㅁ Aug 16. 2023

고시 그 이후.

나 홀로 일본 여행_prologue

GAP MONTHS


    오랫동안 하던 공부를 마치고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갭 먼스(gap months)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강제적 gap months에 대해서는 언젠간 다시 얘기할 텐데, 정말 기다림도 이렇게 하염없고 기약 없을 수 없는 거다....

    어쨌든, 쉬는 동안 그냥 놀면 뭐 하나 싶어 일본어 학원을 끊었다. 사실 근 3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나긴 레이스를 해왔던터라 공부라면 이골이 날 법도 하지만 뭐랄까, 나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란 공부보다는 공부를 마치고 나서 번지점프하기랑 같이 todo list에 있던거라.

    시험을 보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 배움이 즐겁다는데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길. 당신이 미치도록 싫어한 건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기쁨이 아니라 시험과 숙제가 주는 압박감이었을거다.


    어차피 백수인데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4개월치를 한 달 만에 끝낸다는 집중반 코스에 등록했다. 주 5회 3시간씩. 책 한 권을 일주일만에 해치우는(?) 미친 빡센 코스. 등록을 마치니 책 4권을 받았다 하하. 그리고 매 교재가 끝날 때마다 (원래대로라면 책 한 권 당 한달치이고 한 레벨이다. 그러니까 교재가 끝난다는 건 레벨이 바뀐다는 거!) 레벨 테스트를 보고, 70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없으며 재수강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는 접수직원분의 경고 아닌 경고와 함께 ‘이거 내가 취미로 할게 아닌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라던 일본어를 드디어 정식으로 배운다는 생각에 잔뜩 들떴다.

    



오타쿠는 아니지만, 일본어를 좋아합니다만.


    나는 일본 노래와 드라마를 종종 즐겨 듣고 본다. 그래서 일본어에 대한 일종의 로망이 있다. 특히 일본 락밴드를 정말 좋아한다. 음향 환경이 뒷받쳐주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방송에서 손싱크를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방송국마다 라이브 연주가 가능하도록 시설과 기술이 완비되어있어 일본의 락밴드 문화는 잘 발달되어있다. 최근 들어 SNS를 통해 알려지게 된 Official hige dandism, sekai no owari 등 대중적인 밴드부터 sumika, mrs. Greenapple, alexandros, dreams come true 등 정말 많은 가수들이 특색 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

Official Hige Dandism ©VGMdb
Sekai no Owari ©sekainoowari.jp

https://www.youtube.com/watch?v=UgJo8wTQ73k

Fiction-Sumika (출근길, 아침운동, 등교길에 굳굳)

  

  Vaundy, Yonezu Kenshi 등 숏츠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가수들도 좋아한다. 라이브가 미쳤다!!! j-pop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본인 특유의 비음이 듣기 싫다고 말하는데 그거 정말 큰 편견이다. 아마 프로듀스 101 등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일본인 참가자들이 노래실력이 부족했던 게 이런 편견에 기여한 것 같은데... 진짜 그게 다가 아니란 말이다!!!! yuuri라고 최근에 빠진 가수인데, 진짜 ㅠㅠ 감성 미쳤다!

yuuri



    일본 드라마도 일본 특유의 권선징악적인 메시지, 우스꽝스럽고 오버스러운 효과음 처리, 매화 비슷한 구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옴니버스식 구성 등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적고 보니 상당히 크리티컬 할 수도 있겠다 싶다 ㅎ) 특히 ‘이런 이야기로도 드라마를?’ 싶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소재가 있다는 게 매력이다. 수사물도 짜임새가 좋다. 가장 최근에 봤던 드라마 중 마음에 들었던 건 ‘unnatural’. 극이 끝날 때 나오는 ost가 아마 더 유명할 수도 있는데, yonez kenshi의 lemon이다. 이 노래 가사를 알고 드라마를 보고 난 후면 진짜 눈물버튼이 된다. 드라마 너무 좋으니 꼭 보길! (일드 모르는 사람도 얼굴 보면 아는 일본의 슈스 이시하라 사토미도 나온다. 근데 이 언닌 대체 왜 안 늙어 ㅠㅠ?)

<Unnatural>


    사실 일본 드라마나 일본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오타쿠...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르는데. 나도 안다ㅎ 근데 난 오타쿠는 아니다. 오타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니다 ㅎㅎ 그냥 미드 영드를 좋아하듯 일드를 좋아하고,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j-pop도 좋아할 뿐!




간바레 와따시


    어쨌든 난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다짐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외롭게 혼자 공부를 했던 터라 선생님이 눈앞에 있고, 한 교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교실에 모여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설렜던 것 같기도 하다.

    첫 시간이라고 선생님이 돌아가며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주로 일본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엄청 가벼운 마음까지는 아니었지만(나름 진지했다. 한 달 안에 일본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그런 각오랄까 ㅎ), 어쨌든 이 더운 여름날 취미로 한 달 내내 학원을 다니고자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나이 먹고 직장도 안 다니는 한량으로 보였을 수도.


    놀랐던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일 다양한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단거였다. 건축, 미술, 공학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고등학생들이 꽤나 있었다는거! tv에서 요즘 고등학생들이 자퇴를 하고 자기 공부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라니. 놀라웠다. Latte는…(와 이렇게 말하니 정말 꼰대같다. 그러나 대체가능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ㅎ)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학생이라면 자고로 교복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고 끝나면 야자를 하거나 학원을 가고 대입을 위해 수시와 정시를 치러야 한다는 어떤 그러한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빠른 진도만큼이나 빡센 일정을 소개해주던 선생님은 우리가 좀 겁먹은 듯 보였는지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레벨 테스트는 응시만 하면 자기가 점수를 충분히 만들어줄 수 있다고 (ㅋㅋㅋㅋ) 얘기했다. 가타카나랑 한자는 일단 제쳐두고 히라가나만 외우면 이번 코스는 수강할 수 있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미 히라가나는 물론 가타카나도 외우고 있더라 ㅎ) 여하튼 생각보다 3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나름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엉덩이 붙이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외로이 버텨와서 3시간쯤이야 껌이었다 ㅎ 게다가 중간중간 돌아가면서 문제도 풀고 소리 내서 읽기도 하니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간바레 오또상' 말고 '간바레 와따시' ㅎㅎ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진짜 제대로 해서 일본어 마스터가 되어보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