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슬픔은 덮쳐오지만, 기쁨은 서서히 물든다

by ㄷㅣㅁ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쓰기와 서먹해졌네요.

새로 사귄 친구보다, 한때 심장 반쪽을 내어줄 만큼 친하다고 자부했던 친구와 멀어지고 난 후가 더 어색한 것처럼 글을 쓰는 지금 스스로가 너무나 낯설어서 뭐랄까... 괜히 어색하네요.


오랜 침묵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강의는 여전히 잘하고 있고, 낮에는 식당 밤에는 와인바가 되는 가게에서도 너무 좋은 대표님, 사장님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며 팝업도 하고, 메뉴도 개발하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두 번의 문자를 모두 받아내었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란 말입니다.



그토록 고대하고 소망하던 합격의 순간은 생각보다 잔잔했습니다.

작년 면접 탈락의 순간 내 삶을 단숨에 집어삼켰던 상실과 슬픔과는 달리, 약간은 멍하기도 하고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떨떨하네요.

2차 시험이 끝난 이후 결과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애써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시작했던 강의와 아르바이트. 그 일상을 합격 이후에도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만,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어딘가 마음이 편하고, 추운 겨울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운 거마냥 든든한 마음이 드는게 변화라면 변화겠네요.


세 달 전쯤인가, 문득 버스에서 눈물이 흘렀다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은 가게에 일을 하러 가는 길에 느낀 감정을 기록한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이 글을 다시 그 가게에서 쓰고 있자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오네요.


합격의 기쁨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얼굴을 내비치며 서서히 내 삶을 물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쁨이 단숨에 내 품에 와락 안겨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발표 당일 시시했던 감정에 놀라웠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슬픔은 덮쳐오지만 기쁨은 이렇게 나를 물들이는 것인가 봐요.

바쁜 일상 속에서 별것도 아닌 일에 웃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사랑했던 이들과 축하와 감사인사를 주고받는 순간들, 보고팠던 이들과의 만남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는 달력.

서서히 서서히. 그렇게 기쁨이 오고 있네요.


스스로와 그리고 그간 못난 제 글을 읽어주셨던 몇몇 분들과의 약속과는 달리 고시생활을 돌아보는 연재글은 결국 끝내지 못하였습니다.

글이란 게 솔직해야 하는데, 이미 합격의 맛을 보고 나니 수험생활을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지금 상태라면 아주 미화된 왜곡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거든요.



어쨌든,

2024 마지막 고시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네요. 그리고 이제 새로운 막이 열리겠지요.

앞으로는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좀 고민이기는 한데,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 저의 낙서장과 같았던 글이 위로가 되었던 수험생분이 계신다면, 그리고 제가 감히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부디 주저말고 연락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저와 같은 엔딩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