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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e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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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1321회 법정을 시작합니다. 이 가상 재판은 고 이혜란 님의 유서에 따라, 125년 전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한 F.T. 재판으로서 재판에서 발견된 모든 사실은 법적 효력을 가지며, 실제 재판의 반영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판사의 의례적인 시작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판사의 머리 위로 보이는 재판 참여자의 숫자가 2,500,000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판사는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 재판을 이어나갔다. 펄스 트라이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지만, 누구도 함부로 참여하진 않았다. 가상의 눈으로 참여하는 이 재판은 참여자 전부 서로를 보고, 재판의 전부가 기록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재판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조차 모르고 들어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의 법정은 사뭇 달랐다. 마치 내 가족의 일이라도 되는 냥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고, 재판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노라 눈의 불을 켜고, 무언가를 계속 받아 적는 이들도 있었다. 길고 지루한 재판이 될 예정이었지만, 눈을 뗄 이는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100년 이상 지난 사건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사망한 사건에서 누구의 영혼의 안식을 구할 것인가는 세계 모든 이들의 관심거리였다.
2322년 10월 27일. 한국 시간, 9시 25분. 피해자의 데이터를 검토하여, 펼쳐진 변호사의 데이터 백은 누가 봐도 꽤 두터워 보였다. 최소 2천 장은 넘어 보이는 데이터 중 단 열 개를 선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변호사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혜란의 친언니였던 이혜진 변호사는 침착하게 법정 중앙으로 열 개의 데이터를 불러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변호를 시작하기 앞서, 데이터 3번과 7번의 데이터가 고 이혜란 님의 기억에 기반하여 기록된 바, 시작과 끝이 모호하고, 왜곡의 가능성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혜진은 변호를 하는 내내, 자신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증거를 미리 알리고 시작했다. 상대편 변호사와 판사가 나열된 데이터를 확인하고 허가해야만 진행되는 법정이었기에 건너편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본 혜진은 마음속으로 작은 쾌거를 부르며, 걸어 나갔다.
‘3과 7의 숫자의 합은 몇이죠?’
법정이 술렁였다. 이런 식의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란 건 혜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혜진은 다시금 물었다. 상대편 변호사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펜 대를 돌리다 말고, ‘10’이라는 숫자를 크게 써 법정에 올렸다. 다들 낄낄 거리는 정도였지만, 대놓고 큰 소리로 웃으며, ‘10이지! Ten!’을 외치는 이도 있었다.
‘그렇죠,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던 2197년 7월 10일, 한국 시간 14시 23분과 30분 사이에는 참 신기한 수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빈정거리던 상대편 변호사 철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어 캡처되어 여기저기 나돌았다. 순간 그는 펜 대를 떨구고, 이 변호사의 한마디 말 사이에 본인의 데이터 백에서 빨갛게 표시되며 죽어버린 수십 개의 데이터를 멍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혜진은 통쾌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사망 당시 피해자의 기억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성폭행 사건 당시의 기억이 분 단위로 쪼개져 있을 만큼 명쾌하며, 모든 기억의 배열이 순서의 뒤섞임 없이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14시 23분과 30분 사이에 1분이 부족하더군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순간적인 기절. 그 기절과 동시에 기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순간 조용해진 법정에서 누군가 가슴을 치며, 스러지자 법정은 휴정을 하며 구급차를 불렀다. 그 법정에 몇 안 되는 진짜 자리한 사람이었다. 이 변호사의 엄마이자, 딸을 먼저 보낸 비통한 노인이었다. 연우는 가족 중에 유일하게 이 재판을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흔에 낳은 둘째 딸을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먼저 떠나보내고, 단 한순간도 더 살고 싶은 날이 없었지만,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150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지나고 죽겠 노라 다짐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혜란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영혼이 이 재판으로 인해 안식하긴 커녕 갈갈이 찢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큰 딸이 재판을 맡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그녀는 얼마 남지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