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미스터 선샤인에 나왔던 변요한의 대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도 시나 꽃이나 꿈처럼 무용한 것들이기에.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나왔다. 꿈을 깨고도 오래도록 그리웠다. 꿈이 늘 그러하듯, 오늘 꿈도 그립고, 오래도록 원하던 것을 보여주었다.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엄마가 초등학교 때 정말 행복했어’라고 얘기했다. 어리석은 어른처럼 들렸을까. 그러나 그리운 마음을 어쩔 도리는 없다. 종종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친구들에 대한 생각에 다다른다. 자주 외롭고, 자주 재주대신 열정을 뽐내는 나는 친구가 삶에서 꼭 필요했다. 늘 조언이 필요했고, 함께 있기에 행복했다. 코로나로 또 육아로 멀어진 나의 운명 공동체를 꿈은 부르고 있었다.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친구야’라고.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돌아왔다. 반년 만이다. 우리는 서로 많이 다르고, 전부 각자의 일들로 바쁘지만, 만날 때마다 더없이 좋다. 차마 무용하다고 할 수없을 정도로 의미가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아이들과 사랑이 아닌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우정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이유나 말 못 할 사정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거나 받지 않고, 서로를 오롯이 친구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갖고 싶고, 그래서 때론 외롭고 슬퍼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우정 할 때, 우리는 그의 존재를 알고 싶지만, 갖고 싶진 않고, 그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곁에 없어도 힘을 얻는다. 그 작은 차이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는다. 이렇게 더없이 덧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아려 온다. 못 해준 것, 잘못한 것, 해주지 못한 것… 전부 하거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혹은 짠함과 관련된 것 들이라서.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을 치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감정들. 그리고 가질 수 없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면, 가질 수 없기에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그러나 친구는, 우정이라 불리는 것들은 사랑임에 틀림없으면서도 왜 애써 가지려 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것인지. 친구는 단연 내가 나의 일부라 생각하지 않는 것들 중 가장 아름답다.
치료가 끝난 지 한 주 이상 흘렀다. 여행을 다녀왔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화를 냈고, 왜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인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대로의미가 있었다. 때론 상처도 의미가 된다. 불필요한 것, 무용한 것들은 정해진 용도 없이 의미가 된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지나가는 다정한 할머니의 한마디, 서점 사장님의 격려, 아이들의 미소, 남편의 장난, 함께 있는 것, 차를 마시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사랑이라 일컫기 충분한 것. 이 모든 것들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무언가 되지 않아도 살아있음에 응원받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이제 아름다운 것들 틈바귀에서 의미를 건져 올릴 차례다. 이미 존재하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함으로 빛을 발하던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