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처럼 살아야지

그다음 11월을 기약하며.

by 김소영

다시 11월이다. 감회가 새롭다. 처음 써보는 말이다.


좌절의 순간에 기적이라 할 만한 일을 겪으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무너지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차마 보이지 못한 나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다는 것은 그 순간 곁을 내어 준 이들을 기억하고,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인간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환기 작가는 나 자신만이 내게 남은 자산이라는 것을 깨닫았을 때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갖고 싶은 것이 많고, 꿈꾸던 것이 많았던 때에 나는 내가 해낼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만을 세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셀 때마다 나는 더욱 가난해졌고, 그 가난한 마음으로 병을 맞았을 때에 내게 남은 것은 나 하나 살리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기적이라 일컬을 일이 생겨 내가 가진 것을 것을 세어 보게 되었을 때, 내가 가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벌써 훌쩍 자란 아이 둘이 있고, 나를 위해 기꺼이 일 년이라는 시간을 내어 준 남편이 있으며, 온몸과 마음으로 나를 향해 달려와 주신 엄마가 있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불평불만으로 절뚝거리던 내 곁에 아직도 꾸역꾸역 남아준 친구들이 있고, 글 쓰는 동료가 있으며, 아이를 함께 길러주는 언니들과 동네가 있다. 가난한 적 없던 내가 늘 가난했던 것은 나의 어리석은 착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아직도 부정적인 태생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이렇게 가난으로 회기 하는 나의 마음도 지금은 감사로 부족함이 없다. 고민이 있을지 언정, 좌절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굴곡에서 파도를 타지는 못할지라도, 물 먹고 다시 웃으며 헤엄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번 몰아치는 파도에 잠기면 바닥을 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 위로 잠겨버린 나의 몸이 떠올랐다. 그러면 이내 다시 어떻게든 살아갔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삶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 그러나 그것은 죽은 자의 삶이다. 숨이 붙어있을 뿐, 숨 쉬지 않는 삶.


살아가야 한다. 다시 써야 한다. 언젠가 아들에게 ‘왜 열심히 살아야 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리 산 지 오래 었고, 그렇게 살아라 말할 수 없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삶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얻은 삶이자, 나 대신 피땀 흘린 분과 모든 이들의 삶이다. 결코 나만의 삶이라 일컬을 수 없는 값진 삶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고민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오늘 무얼 먹고 무얼 마시고, 어떤 삶을 살아야 열심히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내가 하루종일 누워있는다 할지라도 어떻게 하면 1분이라도 값지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열심히 산 나의 지금이 모여 미래가 되었을 때, 그 끝에서 웃을 수 있지 않겠냐고. 뻔한 말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가면, 하늘나라 문턱에서 두 팔 벌려 뛰어갈 수 있지 않겠냐고.


인생의 나락에서 바닥을 드러낸 적이 몇 번 있다. 모진 말로 상처 주고,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가 고통에 울부짖던 때에 나는 그때 내가 남편에게 혹은 아이에게 주었을 상처로 다시 아프다. 후회라는 말에 진정한 정의가 이것인 것처럼 아프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 삶을 열심히 살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의 건강을 가꾸고, 삶을 가꾸어, 파릇파릇 다시 잎이 돋아날 때까지 나는 지긋이 바닥을 밟고, 다질 것이다.

다시 11월이다. 감회가 새롭다. 처음 써보는 말이다. 꼬박 일 년이 되었고, 이제 꽉 찬 한 살이니 만큼 새순처럼 살아야지. 그다음 11월이 될 때까지 조금 더 땀 흘려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