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나쁘고 불편한 것'

'그렇게 보내도 답장은 받지 못할 거예요.'

by 이생

대학교 2학년,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음료수와 편지를 갖다 놓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인지 알아보려 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친구와 함께 기숙사에 저녁을 먹으러 간 그 시간에 놓고 갔기 때문이다.


한 학기가 지나고, 혼자 걸어가는데 내 앞에 자전거가 멈췄고,

자신이 그동안 음료수를 가져다 놓은 사람이라고 했다.

머리는 짧았고, 안경을 썼으며 웃는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나에게 정체를 드러낸 후,

전공 강의실 앞에서 꽃을 들고 서 있었고, 나는 창피해서 도망쳤다.

그는 나를 따라왔고, 종이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친구들과 선배들은 지나가면서 소리 없이 웃었고,

그 이후 내가 도서관에 공부를 해도 수시로 나를 찾아와 음료수를 주고 갔다.


사실, 짝사랑은 했어도

소개팅이나 누군가를 사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첫째 언니의 영향이 매우 컸다.


언니는 나름 인기가 있어서 옛날 그 시절에 버스에서 내리면

가방에 편지가 몇 개씩 꽂혀 있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언니 이름을 대며 집이 어딘지 알려 달라고 하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언니는 자신의 인기를 실감해서인지 아니면 동생들을 챙겨야 해서 시간이 없었는지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왔을 때

집안이 온통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간혹 보이는 불빛들의 정체는

아버지가 어두울 때 들고 다녔던 손전등이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시끄러운 음악소리.

첫째 언니는 창문을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이불로 다 막아놓고는

친구들을 불러 디스코장을 만들어 놓고 놀고 있었다.

그 언니들의 이름 몇몇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이런 언니를 걱정하셨고,

막차를 타고 오는 언니는 엄마에게 자주 혼났다.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언니를 통해 배운 것은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나쁘고 불편한 것, 그리고 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친구들이나 선배언니가 잡아둔 소개팅이 있으면,

나는 주말에 집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만약 사귄다면,

'완전한 성인'이 되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완전한 성인은 직장을 잡아서

자신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나의 꿈은 '라디오 방송작가'였다.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사실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연애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전 방송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사귀지 않으려고요."

"난 방송작가가 되기 전까지 안 사귈 거야."

보통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미안하다며 나를 떠났다.

그들은 매우 현명했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다.


"그럼, 제가 편지 천 개를 보낸 후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떠날게요."

정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보내도 답장은 받지 못할 거예요."

나는 보내지 말라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우리 과 사무실 2학년 서랍에는 그의 편지가 늘 놓여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편지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답장을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보내도 답장은 받지 못할 거예요.'

이 말은 공중에 흩어지고,

나는 어느새 그가 보내는 편지만큼 답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보낸 편지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이.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