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기숙사로 전화가 왔다.
편지를 주고받던 어느 날, 그는 축구시합을 하는데, 꼭 구경을 오라고 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나름 쾌활하고 남자아이들하고도 잘 어울렸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아주 극심한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남자아이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버스를 타면 뒤쪽으로 남자아이들이 많았는데, 일부로 그쪽으로 가지도 않고, 바라보지도 않았다.
마치 목에 깁스라도 한 사람처럼.
고등학교 시절,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타면 같이 초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가방을 받아준다고 달라고 해도 모른 척하고 다른 쪽으로 피하곤 했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엄청 쌀쌀맞은 아이처럼 비쳤겠지만, 사실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극심한 사춘기가 오면서 남자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더욱이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는 책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사실 우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고, 내가 주인이었던 책은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날, 둘째 언니가 사 준 <어린 왕자>뿐이었다.
당시 학교엔 도서관이 없었는데,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집에서 책 한 권씩 가져오라고 하셨고, 학급 문고를 만들어 주셨다.
당시 우리 반에는 한글을 모르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책상을 우리와 분리를 하시고는
따로 그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
그 친구는 1학년 때, 아파서 학교에 자주 나오지 못했고
그래서 한글을 배우지 못했는데
그 아이를 따로 한글을 가르쳐 주신 분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뿐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6년 내내 이상하게 늘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 아이는 몇 달 만에 한글을 떼었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하루에 책 100쪽씩 읽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했고,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꼭 하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었다.
학급 문고를 다 읽을 무렵,
반장이 엄마가 책을 사주셨다고 놀러 오라고 했다.
그때 그 친구네 집에 가서 접한 책이 세계명작이었다.
그 시절, 하루에 책 한 권씩 읽는 날이 늘어났고,
한 학기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으며,
담임 선생님이 리코더 대신 하모니카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울적한 음색 탓인지
나도 모르게 깊은 사춘기에 빠져들었다.
결국, 6학년 이후로 성격이 바뀌어버린
내성적인 나로서는 축구경기를 보러 갈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망설이다가
시간을 놓쳤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날 저녁 기숙사로 전화가 왔다.
그였다.
축구경기를 하다가 상대편이 공이 아닌 자신의 무릎을 찼고,
결국 심해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와 줄 수 있냐고 했고, 나는 엄청난 고민 끝에 병문안을 갔다.
그때 무언가를 사가지고 갔는데,
너무 떨린 나머지 그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그는 퇴원을 해서 학교로 돌아왔지만,
자전거를 타지는 못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 이후, 그는 한동안 4층 도서관까지 목발로 오르내리다가
심해져서 결국 휴학을 하고 말았다.
당시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연락을 할 수 있는 것은
편지와 유선 전화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기숙사로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엄청난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편지는 얼마든지 쓸 수 있어도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