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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24. 2022

승리는 확실한 행복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23일째

10월 24일 월요일 쌀쌀


드디어 LG트윈스의 가을야구가 시작됐다. 어제 비록 예매에서는 참패를 했지만 오늘 가장 중요한 1차전은 반드시 이기기를 기도했다. 평소와 달리 TV로도 틀어놓고 야구 중계를 봤다. 가을야구는 144경기나 하는 정규시즌과 달리 1년에 며칠 안 하는 만큼 이 정도는 가족들도 특별한 이벤트로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경기 결과는 6대 3으로 비교적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플레이오프는 5전 3선승제이며 과거의 기록에서 1차전 승리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확률이 80%에 이른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LG트윈스가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키움히어로즈는 준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오면서 지친 만큼 3대0 셧아웃을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3승이든 3승 2패든 시리즈 승리를 거둔다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2002년 준우승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그 해를 끝으로 LG트윈스는 긴 암흑기가 시작됐고 나는 그동안 고등학교와 군대를 다녀온 뒤 2011년이 되어서야 다시 야구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늘 1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가능성은 꽤 높아졌고, 나는 행복회로 가동을 시작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한국시리즈 우승 직관하기'를 이룰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아직 플레이오프가 진행 중이므로 한국시리즈 얘기를 하는 건 설레발이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국시리즈는 정규시즌 1위 팀인 SSG랜더스의 홈인 인천에서 대부분 열리기 때문이다. 3, 4차전을 제외한 5경기가 인천에서 열리는데 7전 4선승제인 시리즈의 우승 순간 직관은 4~7차전에만 가능하다. 아무래도 4승이나 4승1패로 일방적인 시리즈가 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그래서 6차전이 열리는 11월 8일을 타깃으로 인천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그냥 경기만 보면 되지 무슨 호텔씩이나 예약했냐고 생각하실 테지만 일단 애 둘을 아내에게 맡기고 나 혼자 인천까지 가서 야구를 보고 오는 건 욕먹을 짓이다. 그러려면 아마 오후 4시에 갔다가 밤 12시에 집에 올 텐데 집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첫째는 아직 야구를 잘 모르고 나만큼 팬심이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은근히 야구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도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우승하는 경기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직관을 한다는 건 야구를 좋아하는 아빠에게는 로또와도 같은 일이다. 그러니까 그날의 계획은 넷이서 호캉스 겸 인천의 호텔에 갔다가 내가 첫째를 데리고 야구 경기를 보고 오는 동안 아내는 둘째와 호텔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경기가 끝나고 온 나랑 같이 야경을 보며 한 잔 하는 것이다.


한국시리즈가 6차전까지 간다면 5차전까지 3승 2패라는 뜻이니 이기면 우승하는 날이거나 지면 떨어지는 엘리미네이션 게임일 것이다. 뭐가 되었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다. 나는 가을야구 직관 성적이 꽤 좋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게 1승 3패로 졌지만 내가 갔던 날에는 이겼다. 2019년 준플레이오프는 키움에게 1승 3패로 졌지만 내가 갔던 날은 이겼다. 2020년 와일드카드는 1차전에서 키움에게 승리를 거뒀는데 그날 내가 직관했다. 연장 13회 초에 1점을 내주었지만 끝까지 집에 가지 않았더니 2점을 더 내서 4대 3으로 재역전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3전 전승 승률 100%다.


고작 1차전 이겼다고 설레발이 너무 과했다. 그래도 승리는 확실한 행복이 맞는 것 같다. 근데 경기 보느라 저녁 내내 정신이 딴 데 가 있고 지금도 혼자 너무 기분이 업되어있어서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늘부터 내일 경기 전까지 집안일은 내가 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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