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도 울고, 왜장들도 울고 갔다는 전설이 만들어진 역사적 현장을 가다
애초 계획에 없던 목포의 매력에 빠져 한나절이란 시간을 목포에서 보낸 우리.
여행 그리고 인생이 사뭇 그렇듯 계획대로 가는 게 없다. 물론 변하는 상황에서도 계획을 고수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안정은 있고 재미는 없지 않은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모험심으로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슨 일이 생길 지는 모르지만 'why not?!'의 정신으로 도전해 보는 '모험심'을 발휘해 보는 게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여행과 관련된 '무용담'들은 크게 두 부류다.
1) 계획한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상황이 전개 되어 황홀했던 경험
2) 계획한대로 가지 않아 발생했던 좌충우돌 해프닝
목포에서의 경험은 위의 2번 해당했고, 나름 또 하나의 스토리가 생길 수 있었다.
원래 이번 여행의 단순한 목적은 한반도의 '땅끝'을 찍어보는 것이었다.
목포에서 땅끝 가는 길에 우리나라 전쟁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전투인 명량대첩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 울돌목이 있어서 들러 보기로 했다.
울돌목은 한반도 최남단의 도시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로인데,
울돌목은 '운다'는 뜻의 '울'과 '돌다'는 뜻의 '돌'이 합쳐져 물길이 휘돌아 나가는 바다가 마치 우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려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울돌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진도타워'라는 곳이 있어서 이쪽을 네비에 찍었다.
진도로 가는 길목에서는 코로나 검역을 실시중이었다. 감염자의 섬 진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가려는 차들을 드라이브스루로 꼼꼼하게 체크했다.
구비구비 언덕을 올라가니 돛을 올린 함선을 형상화한 듯한 '진도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그 웅장한 자태에 압도된다.
7월의 뜨거운 땡볕이 우리를 반겨준다(?).
한 때 '녹진전망대'로 불린 다소 소박한 정자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 으리으리한 진도타워가 들어서게 된 모양이다. 지금도 그 바위 터에서 옛 모습이 얼핏 보이는 듯 하다.
타워에 오르기 전에는 명량해전과 관련된 각종 조각상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들에 맞서 싸운 장군들 그리고 난중일기의 기록들이 기념공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당시 더위에 찌들어 있어서 였을까. 왠일인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아마도 빨리 더위를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진도타워로 향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진도타워는 유료 입장이었는데 입장권이 1000원으로 매우 쌌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전망대가 있는 7층으로 향했다.
사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게 바로 조선의 13척의 배가 왜군의 133척의 배를 격파한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울돌목이다.
'바다'라고 얘기하기 전에는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한강의 폭보다도 좁아 보였다.)
7층 전망대를 보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중간중간 이순신 장군과 명량대첩에 관한 전시관이 있었다. (여기서도 사진을 몇 장 남기기 못했다..;;)
이순신 장군이 역사 위인 중에서도 세종대왕과 더불어 각각 '성웅', '성군'으로 일컬어지며 투톱으로 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종대왕은 우리의 정신과 얼 그 자체인 '한글'을 창제하셨고 (여러 외국어를 공부해 본 입장으로서의 한글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여기선 참겠다 ㅎ)
이순신 장군은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도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순신 장군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여러 차례 과거에서 낙방해 늦깍이에 임관하였고,
전쟁 중에 나라의 적극적인 지원은 못 받을 망정 오히려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세력들에 의해 발목만 잡힌 상황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 나라를 지켰다는 점이다.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 자신을 끌어내리고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걸로도 모자라 자신이 산전수전 끝에 정비한 수군 전력의 대부분을 칠천량 해전에서의 굴욕적인 대참패로 잃어버렸다.
자신의 '저주 받은' 상황에 대한 한탄, 나라와 동료에 대해 배신감 마저 들만도 한데, 그는 결코 나라를 져버리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전투에서도 23전 무패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고 성웅이 되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반추해 보게 된다.
그만큼 좌절을 겪었는가.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해본 적 있는가.
그렇지 않음에도 그보다 더 현재의 내 생황에 대해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야말로 초인적인 극기를 보여준 이순신 장군 앞에 한없이 겸허해진다.
직접 진도대교 밑까지 내려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조수 간만이 바뀌는 시간에는 소용돌이가 친다고 한다.
이 좁은 곳에 총 146척의 배가 운집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이 되는가?
명량해전은 다윗과 골리앗, 영화 <300>에서 그린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의 동양 해전 버전이라 하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대군을 맞이한다는 건 개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 없었겠으나 이렇게 전설로 회자될 정도의 전투를 보면 '다윗'에겐 다 계획이 있었었고 전장을 아군에게는 유리하게, 적군에게 불리하게 썼다.
수많은 역사 드라마/영화에 등장했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장이었는데 여길 이제서야 와봤다는 게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딱히 와봐야겠다는, 와보고 싶은 생각조차도 안 했었던 것 같다.
이건 아마도 지자체의 홍보 부족도 있겠지만 (그래도 요즘 지하철역 환승구간을 지나다 보면 지자체들이 관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애초에 홍보할만한 지역 관광 문화 컨텐츠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도타워도 이러한 역사적 컨텐츠를 보다 다채롭게 즐길 수 있기 위해 진도에서 야심차게 만든 관광 시설임에는 틀림 없다. 그치만 아쉬움이 남았던 건 (딱히 이곳을 와보라고 강추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건) 아마 진도타워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009년 이래 매년 9월말~10월초에 '명령대첩 축제'라는 것이 열린다는 것도 이 블로그를 쓰면서 조사해보다가 처음 알았다. 만약 미리 알았더라면 이 시기에 맞춰서 와봤을텐데... 쩝...
명량대첩이 실제로 벌어진 것은 10월 26일 즈음이었는데 왜 이것보다 다소 일찍 개최되는 건지 좀 의아하긴 하다.
어떻게 하면 이 역사적인 공간을 더 뜻깊게 만들 수 있을까..
적어도 뭔가 '명량대첩'이 있었던 이 역사적 공간에 왔음을 증명하고 내가 이순신 장군의 전설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는 명량 한정판 이순신 장군 티셔츠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티셔츠에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또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같은 명언을 깔끔한 형태로 넣거나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깔끔하게 넣어 '명량' 에디션으로 이곳에서만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특정 디자이너나 브랜드와의 콜라보도 좋다.
원래 어디 가서 기념품을 사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독도에 갔을 때 이런 식으로 티셔츠를 하나 산 적이 있다. 내가 그곳에 가봤음을 티셔츠로나마 표현해 보고 싶었다.
다만 너무 촌스럽거나 상업적인 면이 부각되기 보단,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곳인만큼 차분하면서도 꼭 이곳에 와야 입어 볼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두번째는 '판옥선'이다.
이순신 장군하면 무릇 '거북선'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사실 명량대첩에서 거북선은 없었다고 한다. (원균이 대패할 때 몽땅 태워 먹었기 때문이다 ㅠ)
결국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적선을 대파한 것인데, 이 '13'이란 숫자와 판옥선을 잘 엮은 기념품이야말로 명량, 울돌목을 대표하는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항상 중요한 것은 어떤 스토리가 있느냐이다. 여기서 판옥선이 중요한 이유는 13척으로 대승한 명량대첩이라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만 된다면 진도도 한 바퀴 돌아 나오고 싶었지다.
진도하면 진도개가 유명해서 진도개테마파크를 가볼까 하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지만 아무래도 남자 둘이서 개 보러 가는 것도 좀 거시기 하고, 진도섬 깊숙이 들어가면 이날은 오로지 진도에 바쳐야 할 것 같아서 아쉽지만 다시 진도대교를 건너 해남으로 향했다.
원래 여행의 목표였던 한반도의 땅끝, 해남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