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를 타고 30년을 거슬러 가 '연희네 슈퍼'에 가다!
여행이 그렇듯,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해프닝들이 겹쳐서 유달산 등산에 이어 케이블카까지 타고 내려오니 어느덧 정오 가까이 되어 있었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내려왔는데 서울의 성북동 같이 양옥 스타일의 저택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 가장 아래에 바로 (아까 유달산 전망대에서 보았던) 이훈동 저택과 성옥기념관이 있었다.
'목포통' 아주머니(궁금하신 분은 전편 참고)가 그렇게 강추했었던 곳이었거늘 이곳도 어김 없이 코로나로 휴관이다. 허허... 참 날 한번 잘못 골랐네 그려...
여행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이는 분명 나중에 다시 오라는 계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깔끔하게 싹 다 훑고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백의 미'를 남겨놓고 가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허허허
게다가 이건 계획에도 없었던 거고 '안 들어간 것'이 아니라 '못 들어간 것'이니 마음이 한결 낫다.
대신에 건너편에 팥빙수와 떡이 그렇게 맛있다고 한 '한마을떡집'에 들러 보았다.
당시에는 '유랑기' 따위 남기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사진을 듬성듬성 찍었는데 이 떡집에서는 달랑 팥빙수 사진만 찍는 게 고작이었네...
팔작지붕이지만 기왓장은 일본식인 듯한 '상가주택' 1층에는 떡집과 카페가 붙어 있는 가게가 있었다.
평일 점심 시간이어서 사람이 있을법도 한데 코로나 때문인지 이 동네 자체 상권이 죽어버린 건지 조용하다.
가게에 들어서도 '어서오세요~' 같은 흔한 인삿말조차 없다. 카운터에도 아무도 없다... 허허허
일단 자리를 잡고 세월아 네월아 기다렸다. 아무리 시골사람들은 선량하다고 해도 가게를 이렇게 비워놓다니...
그러더니 주인장은 온데간데 없고, 중년 아저씨가 전화기 너머로 투자 관련 지시를 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조금 지나니 할머니가 어슬렁어슬렁 오며 주문을 받으신다. 우리 보다 늦게 들어온 아저씨한테 주문을 받는다. 대략 연장자부터 주문을 받으시는듯 하다. 그래도 염치 있는 아저씨는 "이쪽 분들이 먼저 오셨는데~" 하면서 최소한의 예를 보이신다. 얌체 같이 먼저 주문 받아버리시나 했는데 성의 있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먼저 주문하세요~"
곧 점심이라 떡은 됐고 '우유빙수'를 하나 시켰다.
올해 86세라는 할머니는 손님들의 불편 따위는 아랑곳 않고 넉살 좋게 팥빙수를 만들기 시작한다. 손님을 받는 주인이라기 보다는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댁을 찾은 손자들에게 간식 차려주는 느낌이다.
영업장 뒷쪽 문을 통해서는 생활공간도 보였다. 고급 마사지 체어가 기억에 남는다.ㅎㅎ
찬장에는 할머니의 소싯적 사진들이 액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한 70년 정도 되어보이는 사진들인데 교복을 입은 한 소녀의 옷매무새가 참 정갈했다. (따로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할머니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
가게에 들어선지 한 20분 만에 받아본 우유빙수도 할머니의 옛 사진마냥 정갈했다.
곱게 갈은 얼음을 하얗게 뒤덮은 우유 그 위에 푸짐하게 얹어진 단팥과 각종 견과류 그리고 콩고물까지...
친구는 우유가 들어가면 소화가 안 된다고 해서 나혼자 이걸 다 먹었다.
지금의 우유빙수는 몇 십년전에도 맛이 같았을까? 역사가 오래된 가게에 와서 음식을 먹으면 단순히 맛만 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소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격이 그리 착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대를 넘어 창업주인 할머니께서 직접 갈아 만들어주신 팥빙수에게 이 정도 가격으로는 제대로 된 경의를 표하기 어렵다. 그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많이 파세요~'하고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게 그저 지나가는 여행 나그네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덕담이니 한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어정쩡하게 점심 시간에 팥빙수로 배를 채워서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놓쳤던 곳들을 몇 군데 더 돌아보기로 했다.
#경동성당
1954년에 지어졌다가 1966년에 본당 정면이 지반 침하로 균열이가 전면부를 완전 해체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개축 되었다고 한다. 성당 외관 전체를 돌로 사용해서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이다. 사진에 보이는 전면부 외 나머지 부분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데 성당 측에서는 원래 처음에 지어졌던 교회의 모습이 건축 구조나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더 높다고 보고 앞으로 문화재청과 협의하여 개축된 성당 전면부 및 종탑 등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사진/설명 출처: 위키피디아)
나는 성당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625 전쟁 이후에 지어진 곳이었다. 외관도 다소 투박한 것이 '기교 없는' 고딕 양식으로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이쯤되면 공동화된 마을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로 스산했다.
50-60년대에 지어진 성당이라 그런지 근대식 성당에서 보여지는 특징은 딱히 눈에 띄지 않았고 그냥 옛날 성당이라는 정도?! 밋밋한 천장도 그렇고, 제단에서도 특별한 기교가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소박한 성당이었다.
#동양척식회사 목포점
그 바로 옆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 있는데 현재는 근대역사관 2호점(옛 일본영사관이 1호점)으로 쓰이고 있었다. 뭐 이쯤되면 눈치 채셨겠지만 여기도 코로나 휴관이라고 한다...ㅠㅠㅠ
그래서 아쉬운대로 외관만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구 일본영사관, 성옥기념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다음 번에는 기필코 그 안도 보고 말테닷!!
근대역사관 2호점 옆 공영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타고
목포항에 가려던 차에 친구가 차 계기판을 보더니 오른쪽 앞바퀴 공기압이 좀 낮다고 한다...
다행히 목포항 근처에 카센터가 있어 목포항 보고 나서 차를 맡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목포항으로 고고!
#목포항
몇 시간 전에 유달산 위에서 내려다 보였던 항구에 와서 유달산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평지여서 그런지 목포 어디에 있어도 유달산이 보여 좋았다.
흐릿하지만 케이블카에 주렁주렁(?) 매달린 케이블카들도 보이고 산 중턱에 승강장 건물도 보인다.
목포항 옆에는 삼학도 공원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있었는데 어차피 닫혀 있을 거 같아서 그냥 근처만 한바퀴 드라이브하고 나왔다.
목포 하면 또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는데 무슨 영화 얘기를 하다가 '비밀의숲'을 친구가 강강강추 했던 기억이 난다. 자기는 서너번 봤다면서... 예전에도 '비밀의숲'이 재밌다고 다른 친구가 얘기했었는데 정말 재밌나 보다...라고 이 때 생각했고 나중에 코로나 때문에 할일 없을 때 집에서 보다가 완전 빠져 정주행 했다..
는 TMI도 유랑기에 남겨 본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침 배도 고프고 해서 식사 장소로 가기 전에 먼저 차를 카센터에 맡겨두고 택시로 식당까지 이동했다.
#꽃게 #맛집 #장터
우리가 선택한 점심 식사 장소는 '장터'라는 꽃게전문점이었는데, 예전에 목포로 즉흥여행을 떠났던 또 다른 친구의 인스타에서 이 사진을 보고 바로 지도앱에 저장했었던 바로 그 곳이다...
벼르고 벼른만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점심 식사는 이곳으로 정했다.
이때까지 코로나로 한산하기만 했던 목포 구시가지였지만 이곳은 달랐다.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잠깐 대기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손님들을 보아하니 반은 관광객이요 반은 이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같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꽃게살 2인분을 시켰다. (공기밥은 따로...)
어마어마한 양의 꽃게살이 고추장에 버무려 나왔다. 군침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우리 둘은 이 무지막지한 비쥬얼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이후로는 말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반은 김에 싸서 먹고, 나머지 반은 야무지게 비벼 먹었다.
딱히 맺거나 짜지도 않고 아주 담백하니 딱 좋은 맛이었다. 한 공기만 먹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공기밥 추가해서 두 그릇을 비웠다... 행복했다.
게살은 게눈 감추듯 순삭되었고 '맛있다'는 혀 끝의 감각 외에 다른 기억들도 순삭되었다.
정말 게 맛있었다!
차를 카센터에 맡겼으니 적어도 한 시간동안은 걸어다녀야 했다.
마침 배도 불렀겠다 소화 운동 겸 여유 있게 거리를 걸어 보았다.
곳곳에 옛 흔적들이 남아 있는 근대식 건물들이 '현대식'이라고 하기엔 그저 중구난방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뷰를 원하는 건 욕심이겠만서도, 유서 있는 지역은 전주한옥마을처럼 이런 식의 노력이 좀 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포기하기가 어렵다.
이런 공간을 만들려면,
해당 지정 구역에서 새로 짓는 모든 건물들은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만 건물을 지어야 한다. 지붕이라든지, 건물 색깔, 간판, 층수 등에 있어서... 그러려면 단순히 규제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이곳의 건물 소유주에게도 협조가 가능하게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관광을 통해 활성화될 지역 경제를 위해 편성한 예산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스토리가 중요하다. 다짜고짜 만들어도 '스토리'가 없으면 짓는 사람 입장에서도 명분이 없고,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컨셉들을 지역별로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는 게 제일 급선무일 것이다.
단순히 짓는 것에서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성된 건물과 주변 환경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입주민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지역 주민들도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지역을 가꾸고 이것이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상가주택'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리고 변해가는 트렌드의 압박을 온몸으로 저항하며 지켜낸 공간들... 그렇게 생존했지만 딱히 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다음번엔 이런 가게들을 그저 지나치기 보다는 직접 들어가서 사장님 얘기도 들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유량기를 쓰는 지금에서야 든다. 그래도 사진을 중심으로 피상적인 해외여행기들을 남겼던 과거에 비해서 이번 유랑기만큼은 국내 여행/관광 산업에 대한 애정을 담아 좀 더 이해하고 고민해 보게 된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만들었던 '계획 도시'여서 그런지 길들은 바둑판처럼 닦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였던 것일까. 그 길이 그 길 갖고 어디로 가야할 지 오히려 헷갈렸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킥보드 샵을 하나 발견했다. 액티비티를 좋아했는데 마침 구미가 당기는 것을 찾아서 한 번 타보지 않겠냐고 했다.
수도권에도 요즘 따릉이 외에 간단하게 모바일로 빌려 탈 수 있는 킥보드 서비스들이 꽤 나왔는데 한번도 타보지 않았다. 날 따뜻할 때는 자전거로 출퇴근해서 그런 것도 있고 추울 때는 어차피 차를 타고 다녀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의 제안이 더 땡겼다.
나야 뭐 새로운 거 시도하는 걸 좋아하니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간단히 운전면허 정보 등록 및 안전교육을 받았다.
어차피 목포 구시가지 일대는 그리 크지도 않아 킥보드 타고 여행하기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목포 #적산가옥 #카페 #가비1935
아까 잠시 간식을 했었던 '한마을떡집' 근처에는 레트로 풍의 카페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비1935'라는 독특한 이름의 카페에서 차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이름에 1935가 들어 가 있어서 1935년에 지어진 것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1925년에 지어지고 건물대장 등록을 10년 후인 1935년에 해서 그런 이름이 들어갔다고 한다.
한옥이라기보다는 일본식 가옥을 카페 형태로 개조해 쓰고 있는 곳이었다.
일본식 가옥을 흔히들 '적산가옥'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알고 보니 '적이 만든 가옥'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일종의 건물계의 '친일파' 딱지가 가옥에도 붙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반일감정은 보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달산이 한눈에 들어와서 너무 좋았다. 만약 내가 근처에 와서 산다면 꼭 여기 이 자리에 와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친구는 아메리카노.. 나는 늘 그렇듯,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이 가게만의 특별한 메뉴를 찾다가 이름도 그럴싸한 '쑥 쉐이크'를 찾아서 시켜보았다.
걸죽한 쑥 쉐이크 위에 콩고물을 얹고 역시나 센스 있는 카페 답게 잎사귀를 한장 얹어주었다.
자고로 디테일의 묘는 바로 이럴 때 사는 거다! 화룡점정...
그냥 쑥 쉐이크만 줬으면 맛 좋지만 심심한 음료였을 텐데 콩고물 위에 (그것도 굳이 또 저런 모양의) 잎사귀 한장을 얹어주니 음료의 품격(?)이 달라진다.
한국의 여러 도시(아니면 그 안의 가게)들이 관광지로서 디테일을 챙기고 한 단계 스텝업해야 한다는 것도 결국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처음엔 한 가게로서의 품격이지만, 그것들이 여기저기서 쌓이고 쌓이면, 국내 방문객에게는 그 마을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더 나아가 외국 방문객들에게는 한국 문화 전체의 품격과 위상을 높이게 되지 않을까.
어행 중 망중한을 즐기고 우린 다시 hit the road!
우리가 향한 곳은 유달산 전망대에서 봤던 '달동네' 서산동 시화골목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은 야트막한 언덕길이었는데 킥보드를 타고 올라가니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재밌었다. 길도 좁아서 차를 타고 오는 것보다는 킥보드가 제격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중간중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네비용으로 킥보드 핸들에 고정시켜 놨던 스마트폰 거치대 나사를 풀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구시가지에서는 흔치 않게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보였는데 주변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다보니 아파트라기보단 냉동창고 같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항구 뷰가 있어서 좋으려나?!
#연희네슈퍼 #영화 #1987
좁은 골목을 지나 영화 <1987>에 나왔다는 '연희네슈퍼'를 가보기로...
좀 전의 언덕을 내려가는 길은 엄청 가팔라서 무게 중심이 높은 킥보드를 타고 내려가니 여간 후덜덜한 게 아녔다... (브레이크를 앞바퀴로 잡았다가는 잘못하면 고꾸라질수도 있어서 조심조심...)
영화 <1987>에서는 김태리가 살던 슈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CG를 써서 남산타워를 붙여놔 서울 어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가게는 목포에 있었다.
이날따라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참 인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줄 서는 일은 피할 수 있었지만 가게 문도 닫혀 있고 이제는 그저 1987 촬영지 기념사진 스팟의 배경 정도로 바뀌어 버린 건 아쉬웠다.
건너편에는 연희네 의상실, 문구사 등 죄다 '연희네' 거였다... (실제 장사는 여기서 하시는 모양)
해안로를 따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근대산업유산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내화 옛 목포공장'이 있었는데 그만 이걸 놓치고 말았다 ㅠ (다음 번에 가면 여기도 꼭 들러줘야겠다.)
시화골목으로 가는 길에 아까 내려왔던 가파른 비탈길이 있었는데 오르막 때에는 확실히 추진력이 달렸는지 몸무게가 나보다 좀 나가는 친구의 킥보드는 결국 그 오르막을 오르지 못해서 내려서 올라왔다고...ㅠ
#서산동 #시화골목 #아리랑고개
대신 '아리랑고개'라고도 불리는 달동네 골목언덕길 안쪽을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왜 이름이 시화인가 했더니 '시'와 '그림'이 있는 골목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었던 것이다.
골목길 양 옆 벽에는 이곳에서 사셨던 주민 할머니 할어버지가 남긴 글들이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시집 와서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사셨던 할머님들의 애환이 시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요즘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그 땐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도 아마 그분들은 이게 다 인생이려니...그러려니...하며 묵묵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사셨겠지...
딱히 크게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나의 마음가집을 점잖게 꾸짖기라도 하듯 시가 구구절절 마음에 꽂혔다.
부산 감천마을도 그렇고 언덕에 만들어진 동네는 이렇게 벽화를 만들어서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좀 더 밝게 바꿔보려고 하는 것 같다. 주민분들의 의사에 의한 것이라면 이런 아이디어는 참 좋은 것 같다. 내가 직접 주민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글과 그림에서 간접적으로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달산 가이드 아주머니 말처럼 이 동네도 공동화되었는지 인적이 없었다. 할머니의 시 내용이 생각나서 그런지 괜시리 마음 한켠이 편치 않다.
킥보드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는 '행복꽃집'이라 적힌 60-70년대 지어졌을 법한 건물이 있었는데 여기도 가게 문을 닫은지 꽤 돼 보였다.
외벽을 노랗게 칠한 걸 보니 어떻게든 다시 재생시켜 보려고 했던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았다. 이 건물 뒷편으로 목포 구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인데 왜 이렇게 이 동네가 침체되었는지 참 침통한 심정이다. 잘만 살리면 감천마을 못지 않은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목포는 예로부터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교통과 군사 요충지였던만큼, 조선 수군의 진영(부대)이 있었다.
세종 21년(1439)에 목포진지를 설치했고 개항 후 고종 21년(1895)에 없어질 때까지 약 450년을 해군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목포 앞바다가 다 내려다 보여 정황을 한 눈에 파악하기에 제격이었을 법한 위치이다.
'만호진'이라고도 불린 이곳에는 원래 성벽과 기타 시설들이 있었지만 해외 열강들의 영사관 기지로 사용되다가 민가로 전용되고 지금은 그 유적들이 몇 안 남아 있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은 목포진 역사공원이 되었는데 당시 목포진의 일부였던 '객사'만 2015년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목포진에서 내려와서 킥보드를 반납하려고 하는데 길이 어디가 어디인지 역시나 헷갈려서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반납 마감 시간 아슬아슬하게 반납할 수 있었다.
목포에 오시는 분들 중에 구시가지를 구석구석 탐방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강추한다. (대신 운전 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
차를 맡겨둔 카센터까지 갈 택시를 겨우 잡아 타고 카센터로 향했다.
정비사 아저씨께서 차량 검사를 해보시더니 바퀴에 못(!)이 박혀 있어서 아주 조금씩 공기가 빠지고 있었다... 그 가늘고 긴 못이 어떻게 박혔을까 싶으면서도 도로를 달리면서살짝 박혔던 게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나 보다.
난생 처음 바퀴 땜질하는 것도 보게 되었는데 신기했다. 그래도 더 큰 사고 나기 전에 잘 수리해서 다행이다.
말만 숱하게 들었지만 정작 한 번도 제대로 와 본 적이 없었던 목포.
그마저도 정말 말 그대로 잠만 자고 떠나려던 목포였는데, 유달산에서 만난 가이드 아주머니 덕분에 도시 전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스토리가 있으니 여행에 생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스토리(서사)'가 중요하다.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까 말이다.
조선시대와 근대의 역사적 자산이 풍부함에도 그 매력이 다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이런 훌륭한 자원들을 좀 더 잘 발전시켜서 전남 요충지였던 옛 명성을 문화적으로도 잘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 번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근대역사관1호점(구 일본 영사관), 2호점(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조선내화 구 목포공장, 성옥기념관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좋은 경험을 선사한 목포를 뒤로 한 채, 진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