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Dec 27. 2020

[딘닷의 남한유랑기 #4] 전라남도 완도 (1)

'완도'하면 떠오르는 게 '김'밖에 없단 그 생각을 '전복'시켜 주겠소!

사실상 나의 국내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자 이번 여행의 메인 목표였던 땅끝을 찍고야 말았다. 

막상 땅끝에 가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줄 알았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마일스톤이 그렇듯, 

달성 전에는 어떠한 판타지를 가지고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거기에 다다르면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는 건, 나 자신의 마음가짐 정도. 무언가를 이뤄 냈다는 그 '성취감'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그 과정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느냐 아니냐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남도의 해안선을 따라 완도로 흘러들어갔다.


미션: 완도의 특산물 밥상을 찾아라!


땅끝마을에서 특산물을 찾는 데 실패 했음은 <해남>편 말미에 적은 바와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완도에서는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나의 굶주린 배때기가 상사마냥 실적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ㅠ


일단 이곳에 숙소를 잡아뒀기 때문에 짐부터 풀고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이 동네에는 대부분이 모텔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괜찮아 보이는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었다. 몇 안 되는 게하인 데다가 항구 근처의 나름 번화가(?)에 있어서 인기였던 것일까, 방이 몇 없었는데 운 좋게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게하 뒷편에 있던 방앗간. 요즘 사람들은 방앗간이 뭔진 알까? 어렸을 적 먹었던 '참새 방앗간'이란 과자가 생각나는 걸 보니 난 아재가 맞구나...ㅠ

게하의 이름은 '완도네시아'

1층은 카페, 2층부터가 숙소인데 사실상 모텔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ㅎㅎㅎ 

다만 뭐랄까 그런 좀 퇴폐적인(?) 느낌은 덜 하고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원 느낌에 더 가깝다고 하면 좋으려나? 

아마도 '완도'에 '인도네시아'를 섞어 만든 미묘한 조합의 이름이다. 묘하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이름이다.

짐을 내려 놓고 숨을 좀 돌린 후에 바로 남도 진미를 사냥하러 나서 보았다. 


완도 진미 맛집을 찾아 가는 길에 있었던 에피소드 몇 가지


밥상 퀘스트 에피소드 #1: 완도에는 러시아인이 많다?!

식당가들이 위치한 곳으로 걸어가며 아직도 인상에 남았던 것은 러시아인들로 보이는 백인들이 꽤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블라디보스톡 같은 곳에서 배를 타고 오던 선원들이 이곳에 정박해 머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봤는데 잠시 이곳에 있는다는 느낌보다는 이곳에 상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같았다. 

실제로 알아보니, 다시마 채취 및 건조, 가두리 전복 선별, 미역, 다시마 포자 작업, 김, 파래 채취 등 육·해상 작업이 모두 가능한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해 러시아, 중국, 동남아에서 외노자들을 데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를 걷는데 뭔가 한국이 아닌 연해주 어딘가를 걷는다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덩치 큰 러시아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다니니 약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괜히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한국, 일본, 대만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생긴 게 다 비슷해서(즉 인종이 다양하지 않아서) 그런 점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처음 보거나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타인종에 대한 불안감이 인종 차별/배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더 중요해진다.


밥상 퀘스트 에피소드 #2: 엉뚱한 갱상도 아재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대뜸 한 아저씨가 "요 길 좀 물어봅시다~ 여기 당구장이 어딨습니까?"

OO당구장도 아니고 그냥 다짜고짜 당구장을 물어본다...

내가 여기 동네 청년 같이 보여서 인가?!

근데 딱 봐도 경상도 사투리에 특정 당구장도 아니고 그냥 당구장을 찾는 걸 보니 '이 아저씨도 여기 놀러왔다가 할 게 없어서 당구장을 찾나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완도에 온 지 1시간도 채 안 된 터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마침(!)'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 건물 2층에 당구장이 보이길래, '저기 있네요'라고 하니 아저씨 일행도 어이 없었는지 '그걸 몬 반네이~'하시며 껄껄 웃는다.

'내 기분이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


밥상 퀘스트 에피소드 #3: 한정식집보다는 횟집

숙소를 나서기 전에 몇 군데 후보로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특히 한정식 위주로 알아봤었는데 친구가 이곳이 평점이 좋다며 찍었던 곳이 있었다. 막상 갔더니 분위기도 칙칙하고 메인 메뉴도 우리가 기대했던 해산물이 아닌 토종닭, 오리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신발까지 벗고 상 앞에 앉았다가 도로 나왔고 결국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횟집 중 블로그에 비교적 많이 소개된 '대성회식당'이란 곳으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공원로 (내지는 '완도음식 문화거리')까지 나오기 전에는 특별히 특징이라고는 딱히 보이지 않는 시골 뒷길이었는데, 그.나.마. 관광도시 같은 느낌이 조금 났다. 사실 이 마을이 '관광 도시'여야 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뭔가 그래도 대단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기대하고 온 나만의 망상과 욕심이 만들어낸 거품일 뿐. 그렇게 마음만 앞서간 나의 기대 속에 하루하루 이 도시를 살아가는 주민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을런지 모른다. 


해변공원로가 그래도 좀 더 돋보인 이유는 완도해변공원이랑 그 끝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무슨 관광호텔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해조류 센터'라고 한다. '해조류'라는 투박한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화려해 보였다. 

대성횟집 앞 도로(좌) / 건너편은 완도해변공원(우). 이 식당가 뒷편으로는 모텔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길을 걸으며 알게 된 건, 완도는 '전복'이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어딜가도 전복코스, 전복물회 모두 전복 투성이였다. 


아~따~ 그럼 전복을 함 먹어봐야재~


밥상 퀘스트 에피소드 #4: 완도의 소주, 이주백

그렇게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푸근한 얼굴의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맞았다. 맛집을 찾아 이곳저곳 까탈스럽게 따지는 서울 사람들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한듯이, 다른 데 가도 여기만큼 안 나온다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어딘가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분이었는데 원래 이곳에 살던 분은 아니라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먼저 소주를 시키면서 이 완도만의 특이한 소주가 있으려나 해서 물어봤는데 잎새주 말고 '이주백'이란 게 있다고 해서 오~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소주네~ 그럼 그걸로 주세요~ 했다. 


근데 이게 왠 걸,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은 '이주백'이라는 소주가 아니라 레트로 버전의 참이슬 '진로이즈백' 이었다...ㅎㅎㅎㅎㅎ 아저씨의 구수한 발음에 뭔가 이 고장만의 소주 브랜드인가 했는데 그냥 나의 착각이었고 아저씨도 그걸 알고 자기 발음이 너무 토종이었냐며 껄껄 웃으셨다 ㅎㅎ



All you can 전복


서빙을 담당한 여직원이 있었는데 오늘이 첫 날이라며 다소 서툰 모습을 보였던 게 기억이 난다.

우리는 괜찮다며 다독여 드렸는데 주인 아저씨께서는 그래도 못내 불안하셨는지 종종 우리 테이블로 와서 여직원이 반찬 매무새(?)를 다잡아주셨다. (내가 보기엔 뭐 먹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지만) 반찬 배열에도 다 나름의 규칙이 있다며 아주 절도 있게 빈틈 없이 상을 차려주셨다. (이것이 프로 정신인가!! ㅎㅎㅎ)


밑반찬*과 함께 등장한 첫 전복 요리는 바로 '전복 회'였다. 한 사람당 하나가 나왔다. 소금기름장에 살짝 찍어서 입 안에 넣으니 부드러운 듯하다가도 살짝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쓰키다시(突き出し)는 일본어로 메인 요리 전에 나오는 전채 요리인데 이걸 도쿄가 있는 간토 지방에선 '오토시(お通し)라고, 오사카가 있는 간사이 지방에선 '쓰키다시'라고 불렸다고 한다. ('오토시'와 '쓰키다시' 사이에 이런 구분이 있는지는 나도 찾아보고 처음 알았다. (출처) 여튼 우리 모두 가급적 순우리말이 있는 표현을 애용합시다 ㅎㅎ 
각을 중시하시는 주인 아저씨의 손길이 닿아 그런지 사진으로 보니 정말로 그릇 종류별로 딱 구분이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ㄷㄷ

완도 앞바다에서 잡은 전복이라 그런지 매우 싱싱한 게 느껴졌다. 다음 메뉴가 나올 때까지 상다리 부러지게 나온 밑반찬들을 비우느라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


그 다음 나온 게 바로 '전복 물회' 

여름에 입맛 없을 때 먹으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새콤한 맛이 인상적이었던 전복 물회. 전복회에 비해선 작은 전복이 두 덩이 얹어져 있었다. 

친구는 이게 그렇게 맛있다며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주인 아저씨 말로는 세모가사리라는 해초가 '바다의 약초'로 몸에 굉장히 좋다고 하셨는데 완도에서도 그리 쉽게 구하기 어려운 거라고 하셨다. 그걸 알고 나니 딱히 맛있어 보이지 않던 해초도 아주 감사하며 먹게 됐다. 


스토리가 이렇게 중요하다 ㅎㅎㅎ 그래서 유명한 레스토랑 가면 셰프가 직접 나와 음식에 대해 찬찬히 설명하나 보다...

그 다음 타자는 바로 '전복구이'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좋았다. 전복을 가장 처음 접할 때 전복구이 형태로 먹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구우면 식감도 더 부드러워지기 때문. 그 쫄깃쫄깃한 식감이 마치 바다의 스테이크와도 같기 때문이다. 전복을 비우고 남은 껍질을 보니 나전 칠기에서 쓰는 크리스탈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울 때는 나전칠기를 이런 껍질로 만든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다음부터는 이미 배가 어느 정도 찼던 지라 기억이 희미하다. 

전복 볶음(좌) / 전복 찜(우)

그리고 마무리는 전복죽...

전복 내장까지 빠짐 없이 써서 그런지 색깔이 녹황색을 띈다.

여행 시작이래 가장 거하게 쓴 한상이었다. 

고장에서 나는 싱싱한 식재료(특산물)를 써서 나오는 식사만큼 값진 것이 없지만, 여기에 스토리까지 입혀지면 더 특별한 경험으로 남겠다는 생각이 '세모가사리' 얘기를 들으면서 더 들었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결국 스토리텔러의 일이다. 일상적인 것들을 각본화 하는 게 바로 작가들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거기서 생각지도 못했던 스토리들이 태어나고 그게 곧 콘텐츠 자산이 된다.


완도의 밥상에는 '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없어서 '김'이 샐 뻔 했지만(!) 전복의 등판으로 만족할만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밖을 나오니 이미 컴컴해져 있었고, '해조류 센터'는 마치 카지노라도 되는듯 외벽이 현란한 조명으로 디스코를 추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완도해변공원을 따라 걸었다.  

식당 갈 때는 바다가 안 보이는 길로 걸어서 그런지 완도에 왔다는 게 딱히 실감이 가지 않았었는데 바다가 보이니 내가 온 곳이 완도가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1부두 근처로 가니 저 멀리 '주도'가 보였다. 섬에 불이 켜져서 그런지 운치가 있으면서도 칠흑같은 밤하늘 때문인지 좀 섬뜩하고 무섭게도 느껴졌다.

제1부두에 정박되어 있는 고깃배들

부른 배를 쥐고 숙소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으니 으메 좋은 것~

친구는 이 와중에 밤에 업무 관련 미팅이 있다며 일을 한다... 참 부지런한 친구다. (꼭 성공해라!)

나는 수면제용으로 책을 펼쳐 놓고 역시나 몇 장 못 읽고 잠에 빠져들었다....

숙소의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제1부두가 다 내려다 보인다는 점?!


낮에 봤던 완도네시아 네온 사인이 밤이 되니 불이 들어와 더 멋지다


내일은 해변에 가서 수상 스포츠를 좀 즐겨보기로 했다. 

여름인데 바닷가는 한번 가줘야지 않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딘닷의 남한유량기 #3] 전라남도 해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