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May 06. 2023

한류가 日流를 넘어 일류가 된 이유

왜 K-컨텐츠는 J-컨텐츠를 넘어 글로벌 트렌드가 된걸까

*머릿글 배경사진 cnfcj : 매일일보 


프롤로그


대학교에 들어가 일본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어떤 분야였건 말이다.


소니, 토요타 등 제품에서부터

당시 워크맨이 전세계에 줬던 '혁신'은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닌텐도, NAMCO, KONAMI, 애니메이션 등 엔터테인먼트 컨텐츠까지

게임 좀 해본 사람이면 '일제'의 막강했던 파워를


세계화하고 있는 스시, 텐푸라는 김치 마저도 '키무치'로 만들어 일본화해버릴 정도로 일본의 기세는 엄청나 보였다.


게다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고대/근대와는 다르게 인터넷을 필두로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설사 어떤 우월한 것을 개발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정보 이동에 시차가 있어 국력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이 빠르게 따라잡기 때문에 그 격차를 좁힐 순 있어도 넘어서는 것은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BTS,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을 넘어서서 오징어게임, 기생충, 배틀그라운드 같은 K-컨텐츠. 소주, 떡볶이랑 불닭볶음면 같은 K-푸드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외국인들을 보면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느낀다.


현대 위인전기를 낸다면 이 두 그룹도 포함되어야 할 정도로 한국 문화의 최전성기를 이끈 전도사라 할 수 있을 BTS와 블랙핑크


넷플릭스 좀 보고 게임 좀 한다는 사람이면 세계 어딜 가도 Squid Game과 Battleground 모르는 사람 찾기 흔치 않을 정도

그럼 왜 K-컨텐츠는 이처럼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주로 아시아에서) 왜 한 시절을 풍미했던 J-컨텐츠는 글로벌 트렌드까지는 되지 못했을까.


아시아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유행'이 된 적은 옛날 옛적 중국의 도자기, 차 등이 유럽에 전해져서 귀족들 사이에서 소비되던 시대 이래 없었다.


아시아의 대중 문화의 중심은 (위에 언급된 고대 중국 문화를 제외하고는) 70-80년대 홍콩, 90-00년대 일본 그리고 10-20년대에는 서서히 한국으로 넘어 오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바로 한국 문화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한류 컨텐츠의 트렌드를 누가 시작했고, 그게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는지에 대해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첫째, adaptiveness이다.


한반도도 크지 않지만 한국은 더 작다. 내수 시장이 작다 보니 항상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어야 했고 수출이 잘 되려면 해외 트렌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타겟 시장들의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고 그런 것들이 체득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감각이 발달되었다.


일례가 바로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이다. 각 시장을 좀 더 친근하게(?) 공략하기 위해 여러 그룹에서 다양한 외국인 멤버들을 가지고 있다.

트와이스의 사나, 미나, 모모, 쯔위. 블핑의 리사 (로제도 국적은 호주인 걸로 앎). 뉴진스에도 호주/베트남 혼혈이 있었던 듯...

심지어는 일본에서 아예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의 아이돌 기획을 반영한 NiziU와 같은 현지인 only 그룹도 탄생시켰다.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중국어까지 현지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을 둠으로써 해당 언어권 그리고 이를 넘어폭넓게 받아들여질 여지를 열어두었다

 

게다가 아이돌들도 왠만한 외국어는 하드 트레이닝 시켜서 능숙하고 유창하게 영어/일어/중국어를 곧 잘 한다. (BTS가 글로벌 트렌드가 된 데에는 RM의 영어 실력이, 블핑은 리사/로제/제니가 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 했던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의 UN본부에서 영어로 연설중인 BTS (좌) / 미국 힙스터들의 축제, 코첼라에서 공연중인 블랙핑크 (우)


둘째는 ability 이다.


한국형 연습생들이 얼마나 혹독한 보컬/댄스/언어 트레이닝을 거쳐 아이돌로 거듭나는지는 길게 설명을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과거 블로그 글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 귀엽고 깜찍한 동네 옆집 여동생 같은 이미지의 일본 아이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친근함으로 일본 내 또는 해외에서 소수 팬들의 '취향'을 매료시킬 순 있어도, 취향을 떠나 정제되고 세련된 한국형 아이돌들의 가무는 국적을 불문하고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셋째는 openness를 통한 확산력(virality)이다.


K-컨텐츠는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 음악이 유행하는 것과는 이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세계인들이 소비하는 K-컨텐츠에서 나오는 패션, 코스메틱,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에 대해 생긴 관심을 기반으로 많은 2차 컨텐츠들이 생기고 최근에는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재확산된다. 먹방이라든지 국제 커플 컨텐츠들이 좋은 예이다.


K-컨텐츠와 J-컨텐츠 간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일본 관련 컨텐츠들(예를 들어, 뮤비)은 유튜브 같은 데서 찾아보려 해도 쉽게 찾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 한국은 음원 발매를 하면 공식처럼 올리는 곳이 유튜브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자주 들어야 빠져 들게 되고, 이를 친구들한테도 공유하게 되고 소비하게 된다. 애당초 컨텐츠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면 확산되기도 어렵다.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지재권 등에 대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다 보니 이런 개방성에 조심스러운 것 같다.

굳이 IT 용어로 비유해 보자면, J-컨텐츠는 애플과 같은 폐쇄형인 반면 K-컨텐츠는 구글(안드로이드)과 같은 오픈 소스를 지향하는 셈이다.


일본의 이런 문화는 어찌 보면 개방성보다 퀄리티에 집착하는 애플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한 없이 세련된 일본의 접대 문화처럼?! 그래서 일본인들이 애플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ㅎㅎ)

그렇지만 덜 개방적인 자세는 creator가 대중의 입맛을 잘 읽어내고 주도하지 못하면 지속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 어려운 걸 애플은 그나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K-컨텐츠가 지향하는 개방성이 해당 컨텐츠의 확산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맞는 테이스트로 진화하고 재확산되면서 (많은 국내외 사람들에 의해 보컬/댄스 커버 컨텐츠가 생긴 것도 좋은 예. 이는 결과적으로는 virality이지만 '따라하고 싶게 만든' 건 그 창작자들의 컨텐츠 퀄리티 즉 ability가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예술 영역이 아닌 음식/패션/미용/관광 문화 사업까지도 확장된 것이다.



넷째는 story telling이다.


J-컨텐츠 원작의 소재는 정말 너무도 다양하다.

와인의 맛을 묘사하는 데 온갖 수사를 다 붙였던 '신의 물방울'부터 원피스, 귀멸의칼날, 포켓몬스터까지...

정말 상상력을 극한으로 발휘한 원작들이 많다.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지만 컨셉이 구체적인만큼 컬트/매니아 층에게 좀 더 어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컨텐츠들도 대단하다. 다만 주제가 독특한만큼 '대중적으로' 히트하기도 그만큼 어렵다. 주제가 niche하기 때문이다.

K-컨텐츠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플롯'의 트위스트인 부분이 많지 작품들의 스토리 저변에 흐르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이다. 빈부격차에서 오는 감정과 역학관계를 보여준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이 좋은 예이다.

대장금이 한 때 이란의 국민 드라마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랑, 시기/질투, 슬픔/고난/역경을 딛는 스토리에 자신을 몰입하거나 대입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반면 J-컨텐츠는 20년전의 공식을 아직도 적용해서 대부분 주인공이 다소 어색하게 메세지를 주입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한 에피소드의 후반부에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그게 아니야(소레쟈 넨~다요)!"라며 억지로 눈물을 쥐어 짜내며 호소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처음에는 좀 신선할 수 있는데 몇 번 보다 보면 진짜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일본 드라마 제작사에게야말로 “그게 아니야~!”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ㅎ)


글로벌 흥행을 하기 위해선 컨텐츠에 이런 몰입할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야 하는데 그 공식을 성공한 K-컨텐츠들은 비교적 잘 따르고 있다.


아마도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일본에 비해) 자기 감정에 더 솔직하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정서가 이런 컨텐츠 생산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마치며


K-컨텐츠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실감했던 것 중의 하나가, 비동양인들의 동양인 또는 한국인(특히 남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에서 느낀다. (thanks to BTS?)

한 때 유색 인종들이 백인들의 모습을 하나의 모델로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예를 들어 지금의 눈이 크고 콧대가 높고 머리가 작고 키가 크고 등등 하는 존잘남녀의 기준도 할리우드 같은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양의 팝 컬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는 동양인(한국인)의 스타일이 쿨한 것이 됐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현대에 접어들어 한국 아니 동양 문화의 역사상 지위가 이 정도까지 올라왔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물론 고대 중국 문화가 그런 위치에 잠시 있었던 적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문화 트렌드의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대에서의 그 의미는 또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려운 걸 한국이 해낸 것이다. (국뽕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일정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하나 더 파고들어가 보면 얘기할 것들이 더 많겠지만 엄청 정제해서 쓰려다 보면 글 자체를 쓰기 귀찮아 질 것 같아 일단은 이 정도만 끄적여 본다. 언제 기회가 되면 계속 다듬어 가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글이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문화건 흥망성쇠를 겪는다. K-컨텐츠도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사이클에 의해 다른 트렌드에 밀려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의 배경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었다는 점이다.

결국 열린 자세를 가지고 치열하게 노력해서 잠재적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주제와 퀄리티를 얼마나 갖췄는지 끊임 없이 자문하면서 컨텐츠를 한 단계 진화 시키는 게 주효하지 않았을까.


휘갈겨 쓰느라 주장이나 근거에 헛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부분 포함해서 여러분들의 생각도 혹시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같이 얘기해 봐도 좋을 것 같다 :)


작가의 이전글 [딘닷의 한국유랑기 #6] 전라남도 나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