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해외여행의 종점인 미국 LA에서 폭풍우를 뚫으며 한국으로 돌아오던 13시간 동안 나는 두 끼의 기내식과 한 번의 간식을 해치우고, 모니터의 미니 게임을 몇 개 두들기다 결국 두 편의 SF 영화를 골라 봤다.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조그마한 좌석에 갇혀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고역이었는데, 그래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는 동안에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본 영화는 한창 남미를 여행하고 있을 적에 'B급 감성을 지닌 잘 만든 영화'라는 소개글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어 무척 궁금한 터였다. 마침 할리우드 신작 영화 목록에 이 영화가 있었고, 나는 경건하게 이어폰을 꽂았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했다. 이런 밋밋한 풍경에서 어떤 독특한 소재를 뽑아낼지 기대가 되면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족 간의 갈등이 큰 주제가 되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냈기에 지루하단 평 없이 긍정적인 찬사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알파 에블린이니 버스 점프니, 제대로 이해할 시간도 없이 현실의 기술을 아득히 뛰어넘는 상상을 쫓아가는 동안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알파버스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주인공과 완전히 똑같은 심정이었달까. 이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다른 우주에서 건너온 악당은 꼭 저런 은박지 쫄쫄이를 입거나 곡예를 추며 싸워야 하는 걸까? 그런데 영화는 어느 순간 그 모든 정신없는 것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깨달음을 던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나 자신과의 소통,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 삶의 모든 갈림길에서 최악의 선택을 한 우주의 에블린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감상 포인트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연이은 장면들은 서사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제외하고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 초반의 평화로운 일상이 끝나고부터는 매 순간 예상을 깨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정신없다.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고급진 재료를 B급 감성이란 맛있는 - 그러나 몸에 좋지 않은 - 소스에 버무려 평범함을 뛰어넘는다. 고차원적인 엉뚱함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기 일쑤다. 혹은 너무나도 유치해서 상상으로만 남겨두었던 것들을 영화에서 발견하고 입꼬리를 올릴지도 모른다. 이런 혼돈의 한가운데서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가는 결국 무방비한 상태로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될 텐데, 웃음을 즐기느라 바쁜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영화의 큰 플롯은 영화나 소설 좀 읽어본 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장면에서부터도 예상할 수 있다시피 뻔하다(가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밤낮없이 일하는 엄마와 엄마의 독단적인 성격에 질린 딸,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지쳐버린 아빠가 의미하는 것이 관계의 끝밖에 더 있겠는가). 하지만 핵심을 드러내는 연출과 과정이 참신해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제도 새롭게 와닿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 뒤에 딸과 엄마의 마음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건 조이를 쫓아 수없이 많은 우주를 건너 - 개인적으로 SF 장르 중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 모녀가 마침내 눈이 달린 돌의 세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울었다. 한없이 조용하고 서정적인 풍경 속에서 진심을 터놓은 모녀의 대화는 내 마음의 둑마저 허물었다.
그 외에 영화의 과학 및 기술 설정이 무척 독창적이라, 장르적인 부분에서도 재미있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SF 장르에서 자주 쓰여 현재는 흔한 소재가 되었지만, 본 영화에서는 '버스점프'라는 신박한 기술을 내세워 무척 흥미로웠다. 버스점프는 멀티버스 내 또 다른 자신과 연결되는 기술로, 개연성 없는 행동을 하는 순간 다른 우주로 연결되는 길이 열리는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 상상이 유쾌하고 재미있기에 나 또한 가끔 상상하게 되었다. 내가 절대 하지 않을 것만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면 다른 우주로 건너가 그 우주의 나와 연결될 수 있을까,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최악의 무기가 베이글 - 혹은 블랙홀 - 형태를 띤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볍게만 본다면 흑미 베이글이 온 우주를 파괴할 수 있다는 설정에 웃을 수 있겠으나(오늘도 누군가는 아브로나스를 뱃속에 집어넣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온전한 우주를 형성한다는 말을 끌어다 오면 꽤나 멋있는 비유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우주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그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별일 테다. 각기 다른 감정이 모여 다채로운 빛을 내며 삶을 색칠한다. 어느 순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마음의 별 중 하나가 폭발한다. 고이고 고인 감정은 터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낼 것이고 이는 블랙홀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블랙홀은 꼭 베이글을 닮았다.
개인적으로는 손가락이 전부 핫도그인 세상이 싫다. 손가락을 출렁거리며 교감하는 것도 싫고, 서로의 손가락을 먹는 것이 애정 확인 방법이라는 것도 싫다(지금 생각해 보니 핫도그가 치즈처럼 늘어나는 게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꼽자면 그것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란 말씀. 동양인이 SF 영화의 주연인 점도 마음에 든다. 한국인이 아니란 점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SF 장르에서 동양인 얼굴을 보는 게 익숙해지는 건 좋은 징조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내가 기대하는 빠르기만큼은 아니지만, 또 진이 날 정도로 느리지는 않아 괜찮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등장하는 버스점프 기술은 특수 기기를 착용해야 한다. 해당 기술은 알파 버스의 에블린이 발명해 냈으며 그들은 현대 사회를 뛰어넘는 수준급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여러 번 버스점프를 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고 미래로 넘어가서 휘황찬란한 꿈을 꾼다. 현재의 나와 다른 멋진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 버스점프가 아니고 무엇일까. 하지만 최악의 우주에서 온 에블린은 빛나는 여러 우주를 지나쳐 다시 최악의 우주로 돌아온다. 최악의 삶 또한 나의 선택으로 자라난 유일한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단 하나의 우주를 조금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