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트레이닝 시스템 이식하기
업무 기록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작업 시간은 줄어들었고, 시행착오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분명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록은 과연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 내가 겪은 경험을 빠짐없이 정리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남겨두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기록이 쌓일수록 또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찾는 사람이 없었고, 찾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자료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고, 어떤 내용은 작성한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결국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묻고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기록이 있어도 공유되지 않으면, 그 기록은 회사 내에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특정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기록은 그 사람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병목을 만들었다. 또, 정리되지 않은 기록은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가 내용을 오해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였다. 결국 기록은 남겨두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커진다.
현장에서의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말과 경험(노하우)으로 전해지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문서와 구조로 정리되는 지식이다. 전자는 사람을 통해 전달되고, 후자는 문서를 통해 전달된다. 흔히 전자를 암묵지, 후자를 형식지라고 부른다.
내가 일하던 현장은 대부분 암묵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알려주고, 직접 해보면서 익히고, 반복하면서 몸에 익히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빠르게 적응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정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알고 있어야 전달이 가능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지식 전달도 함께 멈추게 된다. 같은 작업을 하면서도 사람마다 방법이 달라지고, 기준이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하게 본 것은 암묵지는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경험은 기억에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상황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 그때는 분명하게 알고 있던 판단 기준도 시간이 지나면 모호해지고, 결국은 다시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겪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어 문장으로 정리하고, 순서를 만들고, 기준을 붙였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된 내용들은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며 회사에 기준을 만들고, 지식을 만다는 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록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잘 활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위치를 알려주고, 직접 찾아보도록 안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아보는 것을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찾기 번거롭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현장에서는 매뉴얼을 먼저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손으로 부딪혀 보고,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그때 질문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빠르게 습득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개인의 태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 자료를 두고도 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뒤집어 보았다. 사람들은 매뉴얼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용이 어렵거나, 구조가 복잡하거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내 기록들은 자연스럽게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결국 기록은 존재하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상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아졌다. 이제는 기록의 존재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사용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문제는 기록의 양이 아니라, 기록의 형태였다.
그래서 나는 기록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문제는 단순히 매뉴얼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식 전달 측면에서 학습하는 방식 자체를 고민해봐야 했다.
현장 사람들은 설명을 먼저 읽기보다, 직접 해보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론을 먼저 배우고 적용하는 방식보다, 행동을 통해 감각을 쌓고 그 뒤에 이해를 붙이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교육 방법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접하게 된 개념이 구성주의였다.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을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즉, 누군가가 설명해 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학습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모습은 이미 그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매뉴얼을 읽기 않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고, 막히는 순간에 질문을 하며 이해를 쌓아갔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람들의 방식이 아니라, 내가 만들었던 문서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뉴얼을 '읽는 문서'가 아니라 '사용하는 도구'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긴 설명은 줄이고, 작업 순서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한눈에 흐름이 보이도록 단계를 나누고, 실제 작업과 동일한 순서를 배열했다. 필요한 정보는 작업 중에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콤팩트화 했다. 설명보다는 행동을 기준으로 했다. 거기에 그 행동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구조적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구조를 바꾸고 나서야 매뉴얼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참고용으로만 존재하던 자료가, 실제 작업 과정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매뉴얼을 보며 혼자 작업을 진행했고, 누군가는 막히는 순간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질문의 방식도 달라졌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도해 본 뒤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기록은 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문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고민들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