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시작하다.

중소기업에 트레이닝 시스템 이식하기

by RAMI

나는 한 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미국의 한 중소기업이 한국에 법인을 세웠고, 그때 직원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동안 직함도 여러 번 바뀌었다. 시스템 엔지니어에서 시작해 디자이너가 되었고,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지금은 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중소기업 특성상 한 사람이 하나의 역할만 맡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직함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쌓여 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부터 지금까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물론 처음부터 각을 잡고 트레이닝에 필요한 문서들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현장에서 경험하며 알게 된 것들을 신입 사원이나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를 열어 업무 내용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초창기 회사가 빠르게 사업에 적응하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업무에 조금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다 입사 2차에 회사에서 신규로 개발한 장비를 제조하고 납품하며 설치까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처음 만져보는 장비였기 때문에 조립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배선을 연결하고 현장에 가서 설치하는 과정에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과정들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조 과정에서의 업무 흐름부터 작업 중 유의해야 할 상황들, 자주 발생하는 실수들, 그리고 현장에서 대응해야 하는 방법과 트러블슈팅까지 가능한 한 빠짐없이 남겨 두려고 했다. 그렇게 모인 기록들을 정리해 해당 장비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반발이 심했다. 기록을 요구하는 나에게 불만도 숨기지 않고 뱉어냈다. 아무리 필요성을 설명해도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결국 내 의견에 동의해 준 직원 한 명과 함께 이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하던 기록과 그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매뉴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작업시간의 단축이었다. 특히 설치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보통 설치를 가면 적게는 5일에서 많게는 10일까지도 소요했었다. 그런데 단 3일 만에 셋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작업에 익숙해질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줄어들었고, 결국 10일 동안 하던 일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비용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작업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인건비가 절감되었고,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프로젝트의 전체 일정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현장에서 시간에 쫓기던 직원들도 업무를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은 쉽게 지속되지 않았다. 분명히 효과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났다. 성과는 분명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중소기업에서는 당장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다. 눈앞에 있는 작업을 끝내는 것이 곧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은 종종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일 정도로 여겨진다. 바쁠수록 가장 먼저 버려지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기록을 중요하지 않고, 귀찮은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바쁜 업무에 기록까지 할 정도로 지구력을 갖은 경우도 많지 않다. 결국 기록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면 좋은 일 정도로 남게 된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 것은 달랐다. 일을 빠르게 끝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록은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한 번 정리해 둔 내용은 다음 작업에서 시간을 단축시켰고, 그것을 직원들에게 교육하고 매뉴얼과 같이 찾아볼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 주었을 때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결국 기록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반복을 줄이는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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