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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하늘 말고 다른 길

외항사 승무원 10년 동안의 도전과 실패, 그 긴 여정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가슴이 울렁인다. 작은 창문을 통해 점점 멀어지는 활주로를 내려다보니 새삼 실감이 난다. 난생처음으로 마치 새가 된 것처럼 하늘을 난다. 항상 궁금했던 감각을 실제로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해 호찌민 공항에서 10시간 이상 경유해서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밤늦게 도착한 호찌민 공항은 고요하고 탑승 게이트 의자는 텅텅 비어있었다. 무거운 노트북을 잠금장치를 이용해 의자에 걸고 나니 같은 비행 편을 타고 온 한 탑승객이 말을 걸어온다. 그도 동일한 비행 편을 타고 시드니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동행이 생기고 나니 안심이 된다.


새벽에 도착한 시드니 공항은 고요했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는 순간, 생존모드가 발동한다. 이곳에서 일 년 동안 나를 먹이고 입히고 그렇게 살아남아야 한다. 안락한 기내 좌석과 승무원들이 가져다주는 식사와 음료의 사치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유지에서 만난 동행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캐리어를 끌던 그녀들, 이제 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승무원 들이었다. 그녀들을 기다릴 안락한 휴식이 부러워졌다. 나도 저들처럼 일 하고 편안하게 쉬고 싶다. 막연한 소망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다시 또 그녀들을 마주한 건 홍콩을 경유하는 귀국 비행 편이었다. 낮에 도착한 홍콩은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탑승권을 발권하고 잠시 화장실에 들른다. 때마침 빨간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있다. 말을 붙여보고 싶다. 다음 비행 편 티켓을 보여주며 그녀에게 탑승구가 맞는지 확인차 물어본다.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 뒷면의 정보까지 체크하며 성실하게 응답해 준다. 프로페셔널한 그녀가 정말 멋져 보인다. 대화를 나눴으니 만족하고 그곳을 나선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여기저기 지원을 하다 보니 '케세이퍼시픽' 항공에서 때마침 승무원을 공개채용 중이다. 망설일 것도 없이 영문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한다. 내 생애 그토록 글자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적이 있었을까? 수없이 퇴고를 한 다음 온 정성과 마음을 모아 지원서를 제출한다. 며칠 후 정말 기적처럼 서류전형 통과 메일을 확인하게 된다. 영문으로 온 생애처음의 면접제안 메일을 확인하니 마음 한편이 기대와 자부심으로 가득해진다. 나도 공항에서 만난 그녀들처럼 멋진 유니폼에 단아한 올림머리를 하고 캐리어를 끌고 전 세계를 누비게 되리라! 회사돈으로 다양한 나라를 순방하고 호텔에서 숙박하고 조식을 즐기며 여행할 수 있게 되겠지... 빨간 유니폼에 단정한 머리를 하고 멋진 미소를 짓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짜릿해진다.  


꼬박 하루동안 준비한 첫 지원에 서류통과를 하고 면접을 앞두고 있으니 나는 정말 행운아라고 스스로를 여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긴 개미지옥의 서막인 것을... 나는 그렇게 첫 쾌거를 맛보고 스스로 긴 여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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