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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플로 Apr 26. 2020

0. 시작하며

아이오와 이야기


"그래서, 네가 가는 데가 어디라고? 오하이오?"


아이오와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받게 되는 질문이다.


"아이오와요, 오하이오가 아니라."


"아, 아이오와. 거기가 감자 많이 난다고 하는 곳인가?"


"그건 아이다호구요, 아이오와는 옥수수가 많이 난대요."


"어, 그래."


오하이오, 아이오와, 아이다호. 가서 살 사람에게는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관심거리지만, 한국에 남아 있을 사람에게는 사실 그리 상관 없는 일이다. 혹시 누군가 미국으로 관광, 또는 출장을 가게 되더라도 들르게 될 가능성이 0 퍼센트에 가깝다는 점에서도 이름이 비슷해 보이는 저 세 개의 주는 별 차이가 없다. 동부에 있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들도 아니고, 햇살 쨍한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나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엔젤레스도 아닌, 북미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아이오와 주의 아이오와시티. 몇 시간씩 자동차를 운전하며 달려도 옥수수밭과 콩밭 밖에 안 보이는 이곳에 도시가 있고 대학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시내라고 해도 차를 타고 10 분만 외곽으로 나가면 인가를 찾아보기 힘든 동네. 금요일 밤이 되면 시내 중심가는 부어라 마셔라 시끌벅적하고, 2013 년에는 급기야 아이오와 대학이 프린스턴 리뷰에서 선정한 파티 스쿨 1 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학기가 끝나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유령도시라도 된 것처럼 썰렁해지는 곳.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사건사고들이 터져나오는 대한민국 서울과 비교하면 글자 그대로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아이오와,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았던 아이오와시티다.


그렇게 심심한 동네에 살다 보면,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예전이라면 별 거 아니라고 지나쳤을 법한 구경거리도 왠지 재미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아이오와에 여러 해 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절교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한테 보러 오라고 권해 줄 수는 없지만, 이곳에 사는 나는 기회가 될 때 한 번 찾아가서 구경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되는 장소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 긁어모아 봐야 종로거리를 한나절 걸으면서 찾아볼 수 있는 구경거리와 이야깃거리에도 미치지 못하겠으나, 아이오와의 옥수수밭 한가운데서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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