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 TMI
2021-01-27
80년대 시위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것이 화염병이다. 주로 소주병에 휘발유를 담아 심지에 불을 붙여 던지는, 최루탄과 백골단의 몽둥이에 대항하는 시위대의 무기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바로 옆 대학교에서 시위하는 날이면 직접 봤던 것 같기도 하고. 화염병의 영어 명칭은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 같은 이름의 맥주를 예전에 마셔본 기억이 있다. 동명의 진짜 칵테일도 있다는데 그건 아직 못 마셔봤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소련과 핀란드가 전쟁을 하던 당시 소련의 외무성 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무기라고 한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현재 러시아의 행정구역 상으로는 키로프 주 출신의 인물. 몰로토프라는 성은 원래 가명으로 쓰던 것인데, 러시아어로 '망치'라는 뜻을 가진 몰로트에서 (mallet 과 같은 어원이겠지?) 유래했다고 한다. 스탈린 이전에 소련의 주석이었던 사람이니 거물이었겠지. 키로프 주 인접한 지역의 도시 중에 과거 소련에서 시의 이름이 몰로토프였던 곳이 있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주석직에서 물러나기 얼마 전,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시의 이름을 몰로토프로 바꿨다고. 구미시 명칭을 박정희시로 바꾸겠다던 정치인이 생각난다.
1940년에서 1957년까지 이름이 몰로토프였던 시의 원래, 그리고 지금 이름은 페름이다. 페름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페름 시.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페름기(Permian Period)의 이름이 이 지역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일전에 언급했던, 그러니까 매리 애닝을 다룬 영화 암모나이트에 애닝의 연인으로 그려진 샬롯 머치슨의 남편인 (헥헥) 로드릭 머치슨이 러시아의 페름 지역에서 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화석들을 많이 발견했고, 석탄기 지층보다 상부에 위치한, 시기적으로 나중에 만들어진 이 지층들을 페름계(Permian System) 지층이라고 명명하고, 페름계 지층이 만들어진 시기를 페름기라고 부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대부분 석탄기와 페름기에 만들어진 지층, 업계용어(?)로는 평안계 지층에서 발견된다. 지금은 대부분 폐광되어 석탄생산량이 최대였던 80년대 중반(약 2천2백만톤)에 비해 20분의 1밖에(약 1백만톤) 생산하지 않고 있지만, 정선, 영월, 태백, 삼척 등 강원도 일대의 탄광지대에서 캐내던 석탄이 대략 지금으로부터 3억년 전(+-수천만년)에 퇴적된, 평안계 지층에서 나왔다. 6-70년대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석유 중에서도 휘발유로 만들지만 페름기 지층에서는 석탄이 나온다. 화석연료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석유는 신생대 지층에서 많이 발견되니 시기적으로는 꽤 차이가 있다.
사실은 작은껍질화석(Small Shelly Fossils)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러시아의 행정구역 목록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페름 시의 이름을 발견하고 위키피디아의 페름 시 페이지를 들어갔다가 과거에 시 이름이 몰로토프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 생각나서 연관관계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보니 이상한 글이 나와버렸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우겨야지. 사진은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찾은, 2014년 2월 8일에 마신 맥주 몰로토프 칵테일. 13% ABV 이니 보통 맥주보다는 알콜 함량이 높지만, 휘발유가 들어있진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