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것

기술과 감각의 조화

by 루씨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할 당시, 일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올랐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과 관련된 책이라면 닥치고 다 읽었다. 일을 잘하기 위한 자기계발서부터 내 직무와 관련된 마케팅 서적들을 대략 100권 정도 읽으며 시중에 나온 지식들을 다 흡수하고자 스폰지가 되었다. 책에서 배운 것들을 실전에 적용했는지 혹은 그저 날라갔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욕심만큼 실전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을 잘한다는 것"이 뭔지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 도서관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 이라는 이름의 책을 발견했다. 이건 내가 계속 내게 지난 2년동안 던진 물음이었고,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일본의 최고 전략 컨설턴트라 알려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집필한 야마구치 슈와 일본 최고 경쟁전략 전문가라고 불려지는 구노스키 겐이 서로 대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핵심은 기술과 감각의 균형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얻게되는 '기술'과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해서 얻어진다고 정의할 수 없는 예술적 & 추상적 '감각'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사람이 곧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사람들은 더 많은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여러 강의를 듣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렇지만 감각은 이런 지식이나 노력으로 바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을 하는 능력에 있어서 기술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듯이다. 즉, 기술이 아닌 영역에서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그 능력을 감각으로 정의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 中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모범 사례라고 생각되는 두 사람의 영상 클립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 한명은 오스카 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통역사 '샤론 최'였다. 나는 원래 유퀴즈의 애청자인데 이번에 새로 나온 게스트가 바로 샤론 최였다. 그녀는 봉준호와 뇌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통역 실력과 전달 실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실전 통역 경험이 거의 전무하고 전문적으로 통역을 공부해본 적 없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학생이었다는 것이었다. 오스카 무대에 올라 매끄럽게 영어로 통역하는 모습은 완전히 프로였는데도 말이다. 인터뷰를 들어보니 전혀 긴장하지 않고 쉽게 영어를 통역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도 실제로는 불안함과 떨림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며 수 많은 연습으로 통역을 준비했다고 한다.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실력이 아니라 그동안의 꾸준한 영어 공부와 연습들이 모여 그녀를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었고, 큰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까지 그릇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https://youtu.be/kgPrRew9Uqw

유퀴즈 샤론 최 인터뷰



물론 어느정도까지는 이런 공부와 노력을 통해 실력이 갖춰질 수는 있지만, 샤론 최가 지금까지 통역한 영상을 보며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타고난 언어 감각, 순발력, 재치가 있음을 느꼈다. 특히나 언어 같은 경우에는 달달 외우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직접 부딪혀 보고 사용해보며 얻어지는 순발력과 감각이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하면서 한번도 사전에 답변을 공유받지 않고 모두 즉각적으로 통역을 진행했다는 그녀는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나 농담도 매끄럽게 통역해냈고, 제한된 시간 내 빠르게 통역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간결하게 문장을 표현할 줄 알았다. 이는 타고난 언어 센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샤론 최가 바로 기술과 감각을 모두 갖춘 "일 잘하는" 통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주인공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캔(Catch me if you can)"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실제 모델 '프랭크 아바그네일(Frank Abagnale)'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130억에 달하는 수표 위조를 하고 때론 파일럿으로, 의사로, 변호사로 신분을 위조하며 살아가는 레오나르도의 연기가 굉장히 재치있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였고,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에 매우 충격을 먹었다. 심지어 사기꾼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FBI를 도와 사기꾼들을 잡는 사람으로 변모했다니. 예전에 본 영화였지만 그 이후로 몇 번 더 보고, 최근에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영화 클립을 보게되었다. 다시 보아도 스토리가 재미있어 이 사람에 대해 더 서칭해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만들어진지 꽤 되었으니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그는 최근에도 Scam me if you can이라는 일반인을 위한 사기 방지 가이드북(?)을 냈고, 40년 이상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실제로 변호사로 사칭할 때도 2주만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천재가 다름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 3년 전 구글에서 강의한 1시간 짜리 영상을 봤다. 한시간동안 전혀 쉼없이 스토리를 풀어내는 그는 말빨(?)이 장난 아니었다. 영화보다 영화같은 그의 인생은 정말 놀라웠다. 한 시간 동안 캐치 미 이프유캔 오디오북을 듣는 기분이었다.


https://youtu.be/vsMydMDi3rI

Catch Me If You Can l Frank Abagnale l Talks at Google


(본인의 성공이나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장 소중한 "가족"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감동이었다.)


I woud remind you what it truly is to actually be a man. It has absolutely nothing to do with money, achievements, skills, accomplishments, degrees, professions, positions. A real man loves his wife. A real man is faithful to his wife. A real man, next to God and his country, put his wife and his childeren 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is life....What I strive to be everyday of my life a great daddy.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한 구글러의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한다.


People always say to me, you were brilliant, you were genis. No, I was an adolescent. And that was why I was successful. I was so young that I had no fear of being caught. I was so yong that I didn't think about consequences. Everything I did was not premediated. Everything was done by opportunity and or by chance.

사람들은 늘 제게 '당신은 천재다, 뛰어나다'라고 말하지만 당시 저는 그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였죠. 저는 너무 어렸기에 잡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다음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했던 모든 행동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은 그때 그때 일어나는 기회와 찬스를 잡아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가 파란만장한(?) 사기꾼 시절을 보냈던 나이는 16살부터 21살때까지 였고 이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기었다. 그는 이혼한 부모님에 대한 충격으로 규칙에 어긋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이 천재여서가 아니라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감행했다고 말한다. 모든 일은 철저히 전략을 세우고, A, B, C 대안을 세워서 한 일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실행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승무원들과 지나가는 팬암 조종사의 모습을 보고 쉽게 수표를 발행하고 세계를 공짜로 다닐 수 있겠다 생각해서 유니폼을 주문했고, ID 카드를 만들었고, 그들이 쓰는 용어를 익혔다. 하나 하나 실행해나가자, 더 많은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는 모두 그의 재치와 순발력, 자신감이 이루어낸 것이었다. 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그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따랐다. 자신감은 때론 그게 근거없는 자신감이라 할지라도 진짜 그 사람을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하는 마법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처럼 이 모든걸 '사기'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겠지만..(ㅋㅋ) 그야말로 감각이 뛰어난, "일을 잘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레오 리즈시절에 찍은거라 너무 잘생겼다.......


이러한 감각은 창의성으로 직결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실행해본 후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나아지는 것. What if 라는 물음을 던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 그게 바로 일을 잘하는 감각을 키워나가는 것이며 창의성이 발현되는 일이다. 마케팅의 대가 '세스 고딘(Seth Godin)'도 창의력있게 일한다는 것은 캐치 마인드 게임처럼 처음부터 완벽한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무언가 그려질 때마다 수많은 오답을 외치고 그 중 하나 얻어 걸리는 '정답'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확실히 열심히 공부한다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본인만의 감각을 키우는 일이기에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을 앞둔 오늘, 이것저것 부딪혀보기로 마음먹으며 일해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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