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과 도착 사이 바로 그 지점
'아직인가...'
기내 좌석 모니터에서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빠르게 뉴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난기류 때문인지 기내가 많이 흔들렸다. 덜컹덜컹. 긴장되었다. 나는 비행공포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비행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난기류에 대한 공포는 남아있다. 왜일까? 난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내 마음은 이 확률을 믿지 않는다.
'XX, 떨어지면 다 죽는 거잖아!'
이런 마음을 잠재우려 억지로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 본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덜컹! 에 급하게 코미디 프로그램을 끄고 다시 한번 더 남은 시간을 체크한다. 쓰읍... 5분도 지나지 않았군...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려고 했지만, 시야에 들어온 건 젊은 인도커플의 꽁냥 거림. 원래 창가 자리는 내 자리였지만, 커플의 계속되는 부탁에 자리를 바꿔줬다. 미세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리만 안 바꿔줬어도 저 지랄을 안 봐도 되는 거였는데...
비행시간은 나에게 가장 큰 고역이다. 인류를 지탱해 주는 땅에서 올라와 중력을 거스르며 날아가고 있다. 출발 지점도 아니고 도착 지점도 아닌 그 중간, 여행을 멀리 갈 수록 그 중간지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런데, 나는 왜 인도를 가는 것일까?
그 출발은 이렇다. 이번 겨울에 갑자기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비어버렸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다들 그렇듯이 일상을 살다 보면 지긋지긋해지고 벗어나고 싶어 지니까 말이다. 그러자 바로 "인도"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인도는 인류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구대상이다. 매우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인종과 언어 그리고 종교가 제대로 짬뽕이 되어 굴러가고 있는 나라이다. 테크 산업도 뛰어나고 경제적으로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젊은 인구도 많은 다이내믹한 나라다. 인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 이보다 더 뛰어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에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만류한다. 문화적으로 많이 다르고 또 상대적으로 불편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다는 것은 나는 인도를 단순한 휴양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말은 꼭 남기고 싶다. 단순 휴양을 원한다면 더 나은 곳들이 많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관점 그리고 삶의 다채로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보다 나은 곳은 없을 거라는... 거엇!
하는 생각은 또 한 번의 난기류에 급하게 정지되었다. 아... 신이시어.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다행인 것은 곧 뉴델리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현지시간으로 이미 자정을 넘겨버린 늦은 밤, 비행기는 넓고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비행은 곧 끝이 나고, 나의 여정은 곧 시작한다. 한쪽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처럼, 나는 인도라는 미지의 문을 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마치 운전자가 된 것처럼 발로 기내 바닥을 세게 밟았다. 슈트어디스가 다가와 좌석을 바로 세워달라는 요청에 순간 머쓱해지며 좌석을 세우고 눈을 감았다.
이제 곧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