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인류학자의 첫날밤: 피로와 사기의 상관관계

새벽 2시의 뉴델리, 이성과 수하물이 동시에 증발하다

by 파블로

새벽 두 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마침내 뉴델리에 도착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전투적으로 나갈 준비를 했고, 나 또한 여유 부릴 것 없이 후다닥 복도에 줄을 섰다. 마침내 기내 문이 열리고 비공식 경보 시합이 시작되었다. 빨리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짐을 찾아 이곳을 나가야 한다 라는 게 자동입력이 되었었고 나는 그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였다. 창가+앞쪽에 앉은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만족하며 빠르게 전진하여 코너를 돈 순간… 두둥!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 이미그레이션 줄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핸드폰도 사용하지 말라는 공항 직원의 말에 나 포함 모두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왜 쓸데없이 긴장이 되는지 이상했다. 마침내 그곳을 통과하였고 나는 빠르게 짐을 찾으러 갔다.


이제 마지막 스테이지인데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빽빽하게 둘러싸 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짐 찾는 것도 전쟁인가 싶었다. 나는 수줍게 뒤에서 다소곳이 서있었는데,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렸다. 이렇게 가마니처럼 서있으면 진짜 가마니처럼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나도 그들에 빙의하여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껴들어가서 미어캣처럼 까치발을 들고 애타게 내 배낭이 나오기를 기다린 지도 30여분째...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내 배낭이 먼저 수화물 칸에 탑재되어 맨 나중에 나온다는 것을 가정한다고 해도 여태까지 한 번도 이렇게 늦게 나온 적이 없었다. 여러 인도인들이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이 인도에 도착 안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때부터 패닉이 시작됐다. 들어있는 게 옷, 침낭 같은 것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려 '내' 배낭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근처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 해주고 손짓만 하였다. 다행히, 항공사 직원을 찾아서 물어보니,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황당해서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미 항공사 직원들에게 따지고 있었고, 몇몇은 화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그 순간만큼은 나도 짐에 대한 불안을 잊고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새벽에도 다들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마침내 항공사 직원은 우리의 짐이 공항에 도착은 하였으나 착오로 인하여 맨 나중에 나온다는 것을 알려줬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이미 시간은 다섯 시를 넘었고 나는 너무 피곤했다. 비행기 티켓값 조금 아끼겠다고 새벽에 떨어지는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이때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안 이랬어도 됐잖아! 아무튼,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배낭이 나왔고 그 순간 엄청난 짜릿함을 느꼈다. 저게 나오는구나 드디어...! 이산가족상봉을 한 마냥 배낭을 따뜻하게 끌어안았고(무거웠다) 드디어 출구 표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사실 이때까지도 명확한 다음 목적지가 없었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것과 자칭 인류학자로서 인도의 많은 모습들을 경험하고 탐구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막상 공항을 나오니 갈 곳을 잃은 철새처럼 주위를 방황했다. 이미 태양은 뜨고 있었고, 그 순간 많은 여행자들의 출발지라고 불리는 빠하르간지로 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뉴델리역으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큼직한 뉴델리 기차역 사이즈에 넘쳐나는 사람들로 인해 어디로 갈지 몰라 당황했다. 그리고 이곳은 각종 삐끼와 사기꾼들로 넘쳐난다는 글을 읽었던 차라 경계심도 풀로 장전이 되어 있었다. 육교처럼 보이는 곳에 삐끼로 추정되는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보여 나는 그를 피해 옆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거기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점잖은 사람이 나한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봤고, 나는 빠하르간지 쪽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러자, 거기는 역 반대편 쪽에 있어 걸어가기에는 애매하니 저 앞에 있는 오토릭샤를 타고 가는 게 어떻냐고 하였다. 여태까지 전투적인 인도인만 보다가 신사적인 사람을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래... 일반화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표본으로 14억 명을 한꺼번에 판단하려 하다니... 이 얼마나 오만한 판단인가! 이렇게 하나 배웠다는 흡족함을 느낀 채 그를 따라 쫄래쫄래 오토릭샤 쪽으로 갔다. 그는 걸어가면서 친절한 조언을 해줬다. 요즘 델리 치안이 좋지 않으니 외국인으로서 더 조심하라는 것, 그리고 오토릭샤는 아무거나 집어타지 말고 정부공식승인된 것만 타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오토릭샤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여줬고 오토릭샤왈라에게 힌디어로 쌸라쌸라~ 하더니 나보고 도착해서 20루피만 내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원한다면 팁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당연히 지갑을 열어 그에게 팁을 주었다. 그래.. 팁은 이런 친절한 사람에게 줘야지... 그와 반갑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오토릭샤는 출발하였다.


그래도 완전 안심은 안되었기에 혹시 몰라 구글맵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냥 옆으로 돌면 되는데 릭샤는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웨얼아유고잉? 물어봐도 묵묵부답. 아니나 다를까 곧 오토릭샤는 멈췄고, 수상하게 보이는 허름한 여행 에이전시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내가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운전사는 20달러를 요구하였고, 나는 순간 화가 나서 당연히 안 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데 안에서 한 명이 더 나와 돈을 달라고 하였다. 뭔가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는 것 같아 나는 500루피를 주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마침내 빠하르간지에 도착해서 묶을 호텔을 찾다가 너무나 피곤해진 나는 그날 뉴델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잠도 못 잤고 이미 지쳐있었다. 그 사기꾼 일당은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졌고 그냥 어디론가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바로 기차역으로 돌아가 티켓을 사서 뉴델리와는 작별을 고했다. 안녕 뉴델리... 정신 차리게 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 당분간은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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