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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스 Oct 06. 2023

포인트오브뷰 : 디깅, 뎁스, 레이어드

성수동 포인트오브뷰(POV) 방문기


"Word Create worlds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를 창조하려면 언어가, 워드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나의 언어가 풍부면 풍부할수록 이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언어가 내 인생을 창조하는 거거든요." 

- 유영만 교수



위 내용은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님이 유튜브 지식인사이드 채널에 나와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큰 도움이 되는 말씀임과 동시에 브랜딩과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지혜가 담긴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크고 작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기획자), 좋은 것들 중에 더 좋은 것을 골라 제안을 하는 사람들(마케터)이니까 이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강점이 될 수밖에 없겠죠. 또 어휘력은 한 사람의 인식의 폭을 결정하는 창이라는 말도 있는데 위 유영만 교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브랜드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풍부한 어휘력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브랜딩이라고 하면 멋지게 도식화된 BI 가이드나 로고, 화려한 목업 이미지가 가득한 비주얼 덩어리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브랜드 마케터'를 주제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때 취준생 분들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브랜드 마케터가 되려면 디자인 능력이 출중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답을 드리곤 합니다.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라고. 


물론 자신이 구상하고 기획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멋지게 표현할 수 있고, 함께 일 하는 팀원들에게 아름다운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상 브랜딩은 훨씬 더 복잡하고 여러 가지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완성된 어떤 결과물을 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이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보호하고, 때로는 무너진 것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라 보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인격이 성숙하고 성장하는 과정과 같달까요.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각물을 제작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작업의 연속이며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요구되고, 내 안의 논리와 치열하게 싸우는 일이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어휘(단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됩니다. 내가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깊이감으로 연결되고 표현의 경로가 다양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쌓인 깊이와 단단해진 기획은(자아는) 사업과 브랜딩을 해 나가며 맞닥뜨릴 수많은 질문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해 주죠.


그런데, 포인트오브뷰 방문기라면서 왜 이렇게 어휘의 중요성만 이야기하느냐고요? 바로 오늘 방문기의 주인공 포인트오브뷰(POV)를 이끌고 있는 아틀리에 애크리튜 김재원 디렉터님이 말하는 브랜딩 노하우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재원 디렉터님은 항상 본인의 브랜딩 출발점이 '단어'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비주얼 이전에 단어와 문장이 있고, 이를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연결하며 공간 설계를 한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지점은 브랜딩을 '집필'한다는 표현을 즐겨 쓰신다는 것인데요.


"사실 브랜딩을 하는 건 브랜드를 집필하는 것과 같다.

그 집필한다는 게 갑자기 뭔가 써지거나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하고 리서치도 하면서 하나둘씩 완성되는 것을 뜻하는데, 때로는 그게 소설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어디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돼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집필된다는 생각이 든다."


- 김재원 디렉터 (월간 디자인과 인터뷰 중)



저는 위 인터뷰를 보며 평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브랜딩 방법론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 뭐랄까 일종의 동질감도 느껴졌고, 발견의 기쁨으로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일종의 힌트를 얻었달까요. 위 내용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본다면 이렇게 요약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집요하게 조사하고(Digging), 거기서 얻은 기획의 단서에 깊이감(Depth)을 더해 한층 한층 쌓아간다(Layerd)"


이 3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고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제품 하나하나, 공간 하나하나 다 설명하는 리뷰보다는 포인트오브뷰를 이해하고 느끼는 저의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층 TOOL 도구

포인트오브뷰는 총 3층으로 되어있고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제품도, 공간의 컨셉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1층은 말하자면 입문자를 위한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인 문구점의 통념을 깨고 소장 가치와 활용 가치가 충분한 문구용품들이 넘칩니다. 엽서, 노트, 다이어리, 필기도구부터 시작해서 해외 매거진과 에세이 등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찾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이 한가득입니다. 상품과 POV에서 직접 디자인한 일러스트가 소장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키고요. 


제가 특히 좋았던 공간은 매장 안 쪽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Writer, Collector, Gardner, Publisher, Thinker 등 무언가를 만들고 편집하고, 수집하는 이들을 위한 책장이 놓인 곳이었습니다. 각각 해당 분야에서 깊이 있는 취향과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과 잡지를 추천해 주는데 이 책들만 다 읽어도 지적 확장에 엄청난 도움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포인트오브뷰를 기획하고 가꾸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읽는 사람이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고요. 작은 POP대에 적힌 사려 깊은 편지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듯 1층은 TOOL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특별한 영감을 얻는데 필요한 도구를 소개하고, 누구든 이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2층, 3층에서는 또 어떤 게 나올지 기대감을 갖게 하기 충분했고요. 좋은 첫인상과 호감을 얻는데 제대로 작동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심지어 문구 용품에 큰 관심이 없는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이라도 해야지 싶어 노트를 구입하게 됐을 정도니까요.)


김재원 디렉터님, 그리고 이 공간을 함께 기획한 크루들은 'TOOL(도구)'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깊고 다채로운 해석을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얼마나 많은 선택과 탈락 속에 이 공간이 만들어졌을까?를 역으로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For Writer, Collector, Gardner, Publisher, Thinker, Designer.





2층 Scene 장면

1층이 입문자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2층은 한층 몰입의 강도가 올라가는 공간입니다. SCENE(장면)이라는 말에 맞게 고전 문학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조화롭습니다. 데스크 원목의 질감, 무게감이 느껴지는 조명의 조도, 컬렉터의 깊은 취향을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오브제까지.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판매 상품 옆에 놓인 설명글들이었습니다. 매력적이고 낭만적이며 사려 깊습니다. 유명한 문학 속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디렉터님의 철학이 담긴 내용도 있었습니다. 세심한 설명과 제안의 문구들을 읽으니 마치 물건 하나하나에 이야기와 영혼을 깃든 듯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POV 안의 도구들은 좋은 상품을 넘어 특별한 정서감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느껴집니다. 도구와 공간을 대우하는 이런 진지한 태도들,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환대,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표현 양식. 이것은 단순히 멋들어진 비주얼 덩어리나 인테리어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감정들입니다.




3층 archive 보관

마침내 도착한 3층의 주제는 'Archive'. 즉 보관입니다. 창작에 영감을 주는 도구(1층)를 지나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2층)하게 하고 이윽고 3층에 도달하면 마치 나의 창작 세계도 완성되는 듯한 기분을 받습니다. 특히 3층은 판매의 목적보다는 체험에 초점을 맞춘듯한 VMD가 눈에 띄는데요. 더 클래식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낡고 오래된 가구, 거칠게 드러나는 타일 텍스처 등 앤틱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이곳은 어떠한 환경에 있듯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은 도구와 영감의 재료를 쓸 자격이 충분하고,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창작물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공간은 저에게 깊은 감상과 많은 질문, 그리고 기획의 깊이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강렬한 정서감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집의 세월과 집요한 조사가 뒷받침 됐을까요? 또 얼마나 까다롭고 예민한 감각의 조준의 시간들이 필요했을까요? 가히 대하 소설을 집필하는 것과 맞먹는 노고가 들어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포인트오브뷰를 통해 제가 배운 것은 유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같은 외형의 것이 아닌(물론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기획에 임하는 태도와 집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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