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문학을 전공까지 해야 하냐 묻는다면

인문학의 효용에 대한 합리적 의심

by 김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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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면 인문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대학 전공으로서의 인문학에 대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말들이 많다. 비단 공대나 이공계들의 의견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과, 독어독문학과, 정치외교학과 학생들도 스스로에게 자문하곤 한다. 그게 지금 문제를 해결해 주냐


의심은 합리적이다

인문학 관련 전공학생들이 말한다. 전공 수업을 듣고 이론을 외우다 보니 지금 시각으로는 더럽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더라. 방법론적 한계가 너무 뚜렷해서 이걸 배우고 있는 시간이 무의미 해보였다. 그리고 흥미 본위로 공부한다 해도 다들 자기랑 관점이 비슷한 사상가들 안에서 탐구하며 자기 시야를 굳힐 뿐이다라고 한다. (이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현대사회가 그 실패를 증명했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현대의 양산형 경영서적보다 수준이 낮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은 지나치게 개인간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그것이 가능한 과정에 대한 설명도 상식 수준이라고 말한다. 정말 공감이 갔다. 진취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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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의 유의미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저급한, 혹은 지금와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 되버린 이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그 안에 유의미한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예언은 실패했지만 '공산당 선언' 속 자본주의 한계에 대한 통찰은 매우 뛰어났다.

하버마스는 거시적 사회영향을 간과했지만 개인간 의사소통 과정을 설명한 부분은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져 있고 설득력있다. 실존주의 사상은 지나친 염세주의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인간해방을 가능케하는 큰 이론적 축 중 하나다.


진실은 늘 어딘가의 사이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양극단의 시야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변증법적으로 우린 이성과 진리에 다가간다.


우리가 하는 인문학 공부는 담론을 높은 수준에서 진해하기 위한 준비다. 인문학은 충분히 진취적이다. 평범한 사람의 편합한 철학에서 나아가서 정말 생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선 과거의 것을 소화해야 한다. 누군가 걸어온 길이다. 공부하는 것은 우릴 편협한 시야와 비이성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주관을 끊임없이 검증받는 일이다. 그것도 굉장히 똑똑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사회학, 정치학, 철학, 심리학,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고, 어떤 원리가 세상을 돌아가는데 개입하고 있으며,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인문학은 불안에 대한 테라피다.


그리고 이런 긴 설명이 아니더라도,

호기심 많고 많이 탐구한 사람들 끼리의 담론은 듣고 있으면 재밌고 창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