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제가 어디서 수학했는지, 하다 못해 만든 영화가 뭔지만 열려줘도 제 글과 결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믿음을 줄 수 있을 텐데 그걸 왜 숨기냐고 답답하다고요.
저는 그 말에 ‘그건 너무 잘난 척 같잖아요~’하면서 웃어넘겼어요. 왜 그런지 설명을 못하니 구렁이처럼 담을 넘긴거죠.
그런데 그분은 제 말을 정정하셨어요.
“잘난 척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그 분은 정작 글보다 자기소개에 열을 올리는 작가들을 아주 많이 봐왔다고 하셨어요.
엄청난 직함이 가득한 자기소개는 나쁘지 않으나 과한 기대를 갖게 해서 빠르게 실망시키는 역할을 한다고요. 하지만 너무 정보가 없어도 이 글을 얼마나 전문적인지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첨언하더라고요.
부끄러웠어요.
나는 그걸 왜 자랑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왜 신뢰를 얻는 것과 잘난 척을 하는 것을 같은 선상이 두었을까요?
항상 날카롭게 생각하라고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했으면서 제가 그 어딘가에서 뭉개버리고 있었으니 창피했죠.
나는 왜 이 지점에만 오면 생각을 뭉개버리고 나에 대해서 드러내지 않을까? 기를 꺼리고 있을까요?
누구나 그렇듯 나도 쉽게 얻은 것이 하나 없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노력을 해서 이 자리에 왔건만 왜 저는 저에 대해서 이리도 비밀이 많을까요?
그 이유를 ‘겸손’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아요.
저는 소위 잘 나가는 감독도 아니잖아요.
얼마 전에 세금 정산해 주는 앱을 다운받아 보니 제가 또래에 비해 연봉도 현저히 작더라고요.
그런데 무슨 겸손이겠어요. 겸손이란 자고로 가진 자만 할 수 있는 것인걸요.
그럼 ‘열등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아주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걸 열등감이라고 말하면 이것도 재수 없게 들리는 거... 뭔지 알죠?
제가 가진 것들이 많으니까요. 저에게는 많은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어도 스텝들과 배우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아름다은 나의 영화가 있고,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는 강단이 있고, 작업하기 충분한 나의 집과 나의 자존감지킴이들인 가족들이 있는걸요.
그러니 감히 열등감이라고 할 수도 없죠.
이렇게 적고 보니 그 이유에 가장 가까운 것이 ‘두려움’ 일까 싶어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업계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걸 많이 보게 돼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때 그 상황을 알면 충분히 이해될 것들도 단순하게 글자로 옮겨지거나 몇몇 사람들의 상상력을 거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상황이 나빠지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불편해서 sns도 하지 않아요. 질문을 하겠다고 남는 학생들과는 단둘이 강의실에 남아 있지도 않아요. 어떤 종류의 구설이든 아무것도 원하지 않거든요.
‘겸손’이라고 해도 ‘열등감’이라도 해도 누군가에게 왜곡되어 들릴까 두려운 마음.
그 마음이 제가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인가 봐요.
그러면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그 두려움을 이겨내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저는 좀 더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을 텐데요.
그 답은 저 말씀을 하신 분과 헤어지려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해주신 말씀에 있었어요.
“정성스러운 글을 써보세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문득 마음이 몰랑해지더라고요.
정성스럽다는 말이 어여쁘게 들렸거든요. 지금껏 내가 하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생경한 말 같기도 했고 어쩐지 무거운 말 같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써 놓은 글보다 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글을 써야 한다니.. 되게 무겁고 무서운 말이잖아요.
그런데 여러 사고의 결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어떤 안도가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다면 어떤 오해의 가능성에서 멀어질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가 되는 말.
나의 생각 속으로 한걸음한걸음 성실하게 걸어가고 그 길을 고이고이 적어 내려간다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편안함이 담긴 말.
정성스럽게
자! 그럼 뭘요?
정성스럽기로 마음먹은 저는 제 글과 저에 대해 여러분에게 한 뼘 곁에 두는 믿음을 주기 위해 저의 어떤 걸 꺼내야 할까요?
그걸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걸어온 걸음걸음을 살피게 되더라고요.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터였을까?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그때는 언제이고 누구이고 뭐였을까?
그 산책길 위를 걸으며 꼬박 지난 몇 주를 쓴 거 같아요.
이제 그만 혼자 하는 산책을 멈추고 시작하려고요. 저의 이야기를요.
제가 하고 있는 일들, 속한 학교들, 주어진 직함이 아니라 제가 만났던 평범하지만 나에게만큼은 비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거예요. 더 정확하게는 그 사람들에게 던졌던 쑥스러운 그 한마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돌이켜보니 그 많은 사람들에게 수줍은 마음을, 민망한 마음을 이겨내고 던졌던 그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그들과의 인연도 없었을 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