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017)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by mieni



연출: 홍상수
출연: 권해효, 김민희, 김새벽

아무렇지 않게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가 아내는 갑자기 의심의 마음이 인다.
당신 요새 운동도 안하면서 왜 이렇게 살빠졌어? 라는 질문이 어째서 당신 여자 생겼구나. 로 이어지는지 그 과정을 생각해보니 생략된 간극사이에 둘의 과거가 잔뜩 묻어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 질문을 몇 번이고 했었던가. 이미 의심으로 가득한 아내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던 남편은 아무말 못하고 헛웃음만 짓다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그런 시절이 얼마나 반복되었을까에 대한 아픔이 시작이었다. 아내는 얼마나 오랜 시간 남편을 의심하고 추궁해오고 혼자 가득한 의심으로 추해졌을까.

출판사 사장인 남자와 직원이었던 여자는 마치 비극적 운명의 남녀처럼 사랑한다. 그들이 서로의 몸을 탐한다고 할 때 오로지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부둥켜안고 쓰다듬기만 한다. 가벼운 입맞춤도 하지 않고 오로지 손을 잡고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래서 겨울이었을까. 겨울의 연인은 두껍게 부푼 코트의 동그란 팔처럼 감정자체도 둔해보인다. (물론 둘의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둔하지 않겠지만 겉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둘은 절실하겠지만 절실해보이지 않는다.

흑백의 화면속에서 새벽녘의 길에서 남자는 하얗게 명멸하는 불빛들을 휴대폰으로 찍는다. 밝은 것은 희고 어두운 것은 까만 흑백화면에서 사람만이 회색으로 존재한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기에 사람들의 행동은 늘 애매하다. 아내의 분노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이년저년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분명 피해자의 입장임에도 아내의 신경질적인 행동은 그녀의 분노를 퇴색시킨다. 남자의 눈물과 변명은 비겁하다. 그가 자상하고 배려심깊은 남자라는 건 도리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전제이다. 창숙은 사랑만을 위해 남자를 선택한 것같지만 자신이 팜므 파탈이라도 된 양 착각에 빠져 이런저런 계교를 부리지만 그 모든 행동이 우습고 촌스럽다. 그러니까 그들 중 누구도 잘한 것이 없고 동시에 잘못한 것도 없다. 분명하지 않은 그들은 각자 추한 모습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내고 영화는 그것에 어떠한 색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아름이 나타난다.
-이름이 무슨 뜻이에요?
-그냥. 모든 게 다 아름다우라고 아름이에요.

아름은 글을 쓰는 학생이고 신을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신을 믿는다고 하면 소위 지성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될까봐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름은 모든 일의 결과를 신의 의지로 돌린다. 그러기에 그녀만은 회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존재하지도 않는 걸 어떻게 믿는다고 확신할 수 있냐고 말하며 자신의 믿음에 반문하기도 하고 믿고 느끼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고도 말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일들을 표정으로 먼저 드러내기보다는 언어로 변환하여 입밖으로 낸 후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같아보인다. 유일하게 그녀가 순수하게 기뻐하던 모습은 택시 기사가 칭찬했을 때였다. "특별해보이세요. "
이 이야기에서 그녀는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 불청객 같기도 하고 잘못 튀어나온 조연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밤눈처럼 빛이 나고 분명해보인다.

그는 빗속에서, 백합 속에서, 그리고 재현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완벽하게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은 어디에도 욕망이 없고 이해관계를 따지려 들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의 < 그 후>에 백합과 비가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책과 눈이 있어서 모든 것이 마지막엔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

그녀의 청바지 입은 모습은 정말 이상적이다. 청바지를 입었을 때 어떻게 보이고 싶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영화에서 김민희가 코트를 벗어보이는 그 장면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이다. 후에 데저트 부츠와 해링본 코트의 차림도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이 되면 나도 저렇게 입고다니고 싶을 정도로 맘에 쏙 들었다.

+김새벽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녀를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보고 잊고 있다가 이 영화에서 보았는데순수하고 차분한 얼굴의 나쁜 여자를 참 잘도 연기한다. 처연함을 무기로 여자들에게 매달리던 이전 영화들의 남자주인공이 그녀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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