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단호하게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만일 우리가 심원한 문제들을 토론하는 것만큼 부지런히 악을 뿌리 뽑고 덕을 심는다면,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죄악이나 추문들이 없을 테고 수도원에서도 그처럼 많은 방종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는 무슨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는가를 심문받을 테고, 얼마나 잘 토론하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는가를 심문받을 것이다. 자 말해보라. 한때 학문으로 명성을 날리던 학자들과 박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생전에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이제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1권 3장 (p. 31)



처음에 우연히 책장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뽑아 들고 책장을 넘기다가, 말 그대로 내 마음에 꽂힌 첫 문장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난 쉬어줘야 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는데 이 말을 읽는 순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안식년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쉼은 단순히 ‘일하지 않기’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래 왔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당연시 했던 삶의 방식을 멈추어 서서 되돌아보는 행위이다. 그것이 진짜 안식이다. 삶을 바로잡기 위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아니 멈추고 가만히 있으니 삶이 스스로 바로 잡힌다.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거할 수 있는 집에 갔을 때 첫 달은 아침에 일어나서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거실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유학했던 동네라 보고 싶었던 지인들도 있었지만 도착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 가면…’이라고 말하며 노래를 불렀던 음식을 먹으러 가지도 않았다. 집 주변 산책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생각처럼 잠이 많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산책도 하고 책을 뒤적거렸지만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침에 나갈 때 보았던 내 모습과 저녁에 들어와서 보는 내 모습이 항상 같다며 집주인은 놀라워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 스스로도 매우 당혹스러웠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친 삶에 대한 자기 연민인가? 울면서도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여전히 당혹스러웠다. 어디에서 시작된 기도인지 왜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기도 내용이었다. 안식년을 갖게 해져서 드리는 감사 기도도, 주어진 시간 동안 잘 지내게 인도해 주시도록 구하는 기도도 아니었다. 일명 ‘회개기도’였다.

회개라는 말은 무겁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도 아니어서 아마도 기독교 배경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금방 다가오지 않는 언어 일 수도 있다. 단순한 후회나 죄책감이 아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본질적 인식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내가 울음을 터트리며 내 삶을 회개했을 때 나에게는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과 내 가족도 기꺼이 그렇게 알아줄 것이다. 해외에서 다른 나라 말로 공부해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연구소를 시작했고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많은 곳에 초청되어 강의하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내담자들의 문제를 듣고 상담하고 학생들과 토론하고 책을 읽고 강의 자료를 준비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가르쳤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낭비하지 않고 베풀며 살려고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바쁘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야 맞다고.

그런 나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토마스는 단호하게 묻는다.


“네가 누구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누가 너를 기억하느냐”


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내 말을 듣는 삶, 아니 내 이야기를 듣도록 만드는 삶을 자랑스러워했다. 열심히 걸어 나름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너의 이름을 모른다”라는 말 앞에서 멈추었다.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죄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언가 된 것처럼 살아온 삶이다.


토마스 머튼도 말했다 (곧 소개할 또 다른 토마스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위험이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까 봐.”

게슈타포와의 논쟁 138


나의 회개는 내가 다시 아무것도 아님을 잊었던 데 대한 통한이었다. 처음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서러움과 죄책감, 화가 뒤섞여 며칠을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 끝에 토마의 말을 삼키고 느낌 자유로움은 컸다. 마치 그동안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을 벗겨내듯 세상이 선명해졌다. 비가 온뒤 보는 세상같은 풍경이었다. 그래서 토마스의 단호한 언어는 통한으로 회개하는 그 순간에 경험한 ‘위로’이다. 그러나 그 순간 밖에서는 단호하다 못해 협박처럼 들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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