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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cus Mar 31. 2019

바이스 : 자신도 궁금하지 않은 것을 묻다

이 글을 올리는 현재, 아직 <바이스>는 한국에 정식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뒤 작성하였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서 그냥 읽으셔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 나중에 영화를 보신 뒤 제 감상과 비교해보면 더 풍부하게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도 궁금하지 않은 것을 묻는, 바이스


영화 초반 아담 맥케이 감독은 한 질문을 던지는데요. 비밀스러운 지도자, 딕 체니. 밥버러지 백수에 불과했던 그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나. 전형적인 누아르 문법이죠. 저는 이런 스토리텔링 정말 좋아하거든요.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영화 <아수라>를 떠올려보세요. 그 영화가 좀 지나친 감은 있어도 주인공 한도경이 주변의 악을 마주하며 어떻게 같이 악마가 되어가는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잖아요.

그런데 속았습니다. <바이스>는 이런 스토리텔링에 별 관심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의 핵심은 악마가 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잔인해지고 속수무책으로 무자비해지는 인물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스>는 딕 체니의 심리를 잘 모릅니다. 대놓고 말해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무슨 장치를 심냐면 낚시하는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조용한 사람을 조심하라. 그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딕 체니는 원래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인물이다.'



낚시하는 이미지 장치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활용됩니다. 저는 이 장치가 게으르게 선택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훌륭한 작가는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는 거죠. 그런데 <바이스>는 딕 체니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 중반, 딕 체니는 어떤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러닝메이트가 되어 부시의 부통령으로 출마해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죠. 그는 이 통화를 받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옆에서 아내가 그럽니다.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때 내레이션이 들립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 딕 체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니. 바로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 영화이고 문학인데요. <바이스>는 딕 체니의 속마음을 상상하지 않아요. 그러니 첫 질문, 딕 체니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대신 엉뚱한 대답을 하죠. 영화의 후반에 딕 체니가 카메라를 보고 관객을 향해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들 요구대로 했을 뿐입니다." 투표로 뽑혔으니 내가 한 행동들은 당신들의 의견을 대표한다는 말이죠.



영화 내내 딕 체니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던 감독은 마지막 순간에 관객에게도, 일반의 미국 시민들에게도 비판의 총구를 들이댑니다. 아마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마지막 순간과 같은 효과를 의도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다르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마지막 순간에 돈에 대한 욕망이 전염되는 장면. 이 장면이 효과적인 이유는 평범했던 조던 벨포트가 욕망을 따라 악마가 되는 과정을 우리가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 만드는 소동과 참극을 영화 내내 목격했습니다. 그 참극의 씨앗이 다시 퍼지는 결말은 우리를 뜨악하게 만듭니다. 제2의, 제3의 조던 벨포트가 탄생할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반면 <바이스>에서 우리는 평범했던 딕 체니가 어떻게 악마가 되는지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한순간 휙, 딕 체니는 악마가 됩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그 공백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심정의 변화를 관객에게 설득하지 못하죠. 이걸 낚시라는 장치로 가려두었을 뿐입니다.

사실, 딕 체니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표현하기가 곤란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것이 효과적이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못합니다.



<바이스>는 장점이 뚜렷한 영화입니다. <빅 쇼트>의 장점을 계승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계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빅 쇼트>의 화술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바이스>의 진화된 화술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 화술의 예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관람의 재미를 반감시킬 것 같습니다. 마치 영화의 진행에 무한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들썩거리며 진행되는 영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아요. 전작 <빅 쇼트>의 화법을 기대한 저로서는 다양한 인서트 쇼트와 교차 편집되는 부분들에서 꽤 만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뛰어난 스타일도 능수능란한 화술도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는 정확하게 질문합니다. 그러나 <바이스>는 대답하지 않은 질문의 영화로, 감독 자신도 관심이 없던 질문을 건넨 영화로 제게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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