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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cus Feb 01. 2019

24프레임 : 영화는 시간을 담는 예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정의하는 영화에 대해서


영화란 무엇인가. 이건 끝판왕 질문입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죠. 뒤집어 말하면 가장 마지막에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탐색하는, 그 모든 즐겁고 괴로운 과정을 거친 뒤에, 그때도 완전히 확신에 차지는 않은 작은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를 뱉을 수 있는 그런 질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한다면 바로 그런 지난한 과정의 종착지에 도달하고 싶을 것이므로, 언젠가 반드시 자신만의 답을 찾을 것이라고 굳은 결심을 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4 프레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유작, <24 프레임>을 작년 전주영화제에서 봤습니다. 유작이라서 그랬을 겁니다. 저는 왠지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줄 것만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답고 유려한 장면들에 마음을 뺏기면서, 그의 정의는 무엇일까 상상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 도착하고,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24 프레임>을 통해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그 어려운 질문에 끝내 대답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영화라는 예술, 그가 생각했던 영화의 정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떠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어쩐지 대단한 위로를 받은 것 같아 울컥한 마음으로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장면의 현실성을 어디까지 묘사할 수 있는지가 늘 궁금합니다.
화가는 전후를 알 수 없는, 단 한 순간의 프레임을 포획해서 현실성을 묘사하죠.

I always wonder to what extent the artist aims to depict the reality of a scene.
Painters capture only one frame of reality and nothing before or after it.


<24 프레임>은 위와 같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말이 화면에 나타나며 시작됩니다. 화가는 한 프레임을 포획한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영화감독은? 화가가 하나의 프레임을 포획해 화폭에 담아낸다면 영화감독은 여러 장의 프레임, 즉 움직임을 포착해 영화에 담아낼 겁니다.


<24 프레임>에서 그가 한 시도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진가이기도 한 키아로스타미는 그가 찍은 사진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력으로 복원합니다. 사진의 정지된 시간을 4분 30초의 활동사진으로 바꿔놓는 것입니다. <24 프레임>의 장면 대부분은 그가 복원한 활동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에 시간을 부여한 셈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얼어붙은 이미지를 시간의 흐름에 대입하는 겁니다.
카메라 셔터가 포착한 한순간, 그 순간의 앞과 뒤를 상상해보고 싶었어요.

I was trying to imagine the moments before and after my shutter snapped and isolated a single instant; to put the frozen image back into the flow of time.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빵과 골목길>


그런데 왜 시간일까요. 그건 그가 생각하기에 시간이야말로 영화를 영화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시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단편영화는 <빵과 골목길>입니다. 소년이 빵을 사 들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사나운 개가 골목길을 지키고 있죠. 감독은 소년에 대한 개의 반응을 찍고 싶습니다. 소년과 개를 한 쇼트에 동시에 담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개가 별 반응이 없습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촬영 감독이 개와 소년을 따로 촬영하자고 권유해도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40일을 기다립니다. "영화는 기다리면 기적이 찾아옵니다. 그걸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는 따로따로 편집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기다림이 주는 기적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들이는 일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충분한 시간이 건져내는 어떤 우연과 그런 우연이 드러내는 현실의 생생함을 탐구했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파이브>


그래서 그는 롱테이크를 선호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카메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고정된 롱테이크를 편애했죠. 그는 쇼트를 나누는 일을 끔찍이 싫어했다고 해요. 시간에 대한 깊은 믿음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그의 2003년 영화 <파이브(Five)>는 시간에 대한 믿음의 극단에 있습니다. 단 다섯 개의 쇼트로 이루어진 영화는 고정된 롱테이크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풍경을 비춥니다. 출렁이는 파도와 해변을 지나는 사람들, 강아지들과 오리 떼들, 그리고 달빛.


누군가에겐 지루한 영화로 기억될 겁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겐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됩니다. 그 사람은 영화에 담긴 시간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영화가 이야기 대신 시간을 보여줄 때 어떤 관객은 감정을 상상하고 마음을 탐색합니다. 우리는 파도와 사람들, 강아지와 오리 떼, 그리고 달빛에 감정이입합니다.


<24 프레임>
<24 프레임>
<24 프레임>
<24 프레임>


그러면 이제 우리는 <24 프레임>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가 생각할 때 시간은 생명력이고 영화는 그 생명력을 포착하는 예술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고정된 한 프레임을 보여주는 사진보다는 사진이 찍힐 당시 자유로이 움직였을 피사체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작업, 즉 사진을 영상화하는 작업이 그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복원해 만든 스물네 개의 활동사진으로 <24 프레임>을 구성했습니다. 시간을 복원해 생생함을 불어넣었어요. 움직이는 말과 새, 흔들리는 나무와 파도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24 프레임>의 마지막 장면


그러다 마지막 쇼트가 도착합니다. 큰 창문 너머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앞의 컴퓨터와 엎드려 있는 사람입니다. 앞서 보았던 장면들을 생각하면 흔들리는 나무만 있으면 충분한데, 컴퓨터와 책상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을 함께 보여주는군요. 컴퓨터 화면에는 정말로 영화가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컴퓨터 화면의 영화가 재생되기 시작합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처럼 영화의 인물들이 조금씩 움직입니다. 


창문 너머 흔들리는 나무. 화면 너머 움직이는 인물. 그는 마지막 프레임에 이르러 두 상황이 똑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복원한 자연과 시간을 담아낸 영화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의 마지막 영화에서 드디어 스스로 고민해온 영화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담아내는 것. 그것이 영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도, <Love Never Dies>가 배경음악으로 흐릅니다. 마지막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마지막 노래. 가사가 들립니다. Love keeps on beating when you're gone. 당신이 없어도 사랑은 살아 숨 쉴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제 모든 가사는, 내가 죽어도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그의 고백이 됩니다.


사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것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영화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마지막 장면은 한 영화감독의 마침표로 너무나 완벽해서, 그 완벽함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장면의 마법 같은 순간이 그의 마지막을 위로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영화란 무엇인가. 키아로스타미는 대답을 영화로 합니다. 그의 유작 <24 프레임>은 살아있는 시간을 담아내려는 그의 마음을 쓸쓸하면서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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