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우 감독의 <김군>을 보았습니다. <김군>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찍힌 어떤 사진 속의 인물을 찾아 나서는 영화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무장한 시민군. 광주 사람들은 그를 '김군'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주옥 씨는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는 '김군'을 아버지의 막걸리 가게에 자주 들르던 학생이었다고 어렵지 않게 기억합니다. 강상우 감독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주옥 씨가 주먹밥을 나누어 줄 때 사용했던 양은 대야 전시를 보고 영화 <김군>을 만들기로 결심하죠. <김군>은 당시 비극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사람의 사연으로부터 출발한 셈입니다.
반면 극우 논객 지만원은 사진 속의 '김군'을 가리켜 북한군 제1호, 이른바 제1광수라고 지칭합니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칩입한 사건이었고, 그때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계엄군은 북한군에 대항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죠. 증거로서 600여 명에 달하는 '광수'들을 지목하면서 말입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의 사진 위에 붉은 점과 화살표를 그려 놓고 이들을 북한군, '광수'라고 말합니다.
영화 <김군>은 '김군'의 정체와 행방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지만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시작되죠. 워낙 말도 안 되는 주장이기에 관객들은 이제 영화가 반박을 시작하겠군, 예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주장에 맹렬히 반박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김군>이 단지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에 그치지 않고 깊고 슬픈 드라마로 확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군>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한 보수 논객의 주장을 단지 저널리즘적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그 주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당시 광주의 비극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그래서 그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지만원의 주장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있고 또 그 트라우마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떤 주장에 반박하다 보면 스스로 그 주장의 프레임에 갇혀버릴 때가 있습니다. 대개 그런 경우 그 주장도 답변도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게 됩니다. 지만원의 주장은 다분히 폭력적이고, 그 주장에 대답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폭력적입니다. <김군>은 영리하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만원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자신들의 삶으로 반증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김군>엔 내레이션이 없습니다.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목표라서 그렇습니다. 또한 광주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연출부 스태프의 모습이 광주 시민의 모습과 함께 화면에 담겨요. 강상우 감독은 인터뷰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의 모습만 보이는 것을 피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듣는 사람'의 존재 때문입니다. <김군>은 말하지 않고 듣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래서 김군이 북한군이라는 거야, 시민군이라는 거야?라고 질문한다면 그건 영화가 의도한 바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겠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GV가 이어졌습니다. 중년의 관객 한 분이 손을 들고 이렇게 질문하더군요. "어쨌든 지만원 박사님의 주장에 팩트로서 제대로 반박하지 않았으니 김군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네요? 북한군의 소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거죠."
아마도 지만원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의 질문. 이에 강상우 감독이 대답합니다. "지만원 씨의 주장은 팩트로서 반박하는 자료가 이미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영화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반박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어요. 김군을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담는 것으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군>은 자료화면을 통해, 김군이 1980년 5월 24일 송암동 순찰 과정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당했다는 사실을 김군 최후의 목격자인 시민군 최진수 씨의 증언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김군이 북한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주장하는 일은 광주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 자체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일 텐데요.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에서는 어린 여공이 등장합니다. 그의 가족은 극도의 가난 속에서 연탄가스로 자살하죠. 같은 공장에 다니는 상훈과 그는 같이 살면 연탄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동거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경악합니다. 사실 상훈은 부잣집 아들이었고, 단지 빈민 체험을 위해서 잠시 공장에 다녔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라고 말합니다. <김군>을 보면서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른 것은, 비극을 겪고 난 뒤 겨우 남은 조금의 삶마저, 어떤 이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지만원에 의해 북한군으로 지목되었던 많은 사람이 북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영화 <김군>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광주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39년간 트라우마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맨 모습을, 바로 그들의 증언을 통해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은데 왜곡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시민군의 말은, 그들이 겪은 비극에 비해 가장 최소한의 것만을 요구하고 있기에 더욱 비통하게 들립니다.
<김군>은 말하지 않고 듣는 영화, 주장하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런 미덕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극대화됩니다. 영화 말미에 시민군 세 사람은 38년 만에 만납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영화관에 앉아 그때의 광주 사진을 봅니다.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과거를 기록하려는 감독의 의지 덕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객이 되어 영화관에 모여 앉아 <김군>이라는 기록을 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5.18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 또한 기록하려는 사람의 의지 때문입니다. 김군의 사진을 찍었던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사진기자 역시 "이 영화는 하나도 빼지도 보태지도 않은 5.18 그대로의 기록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김군>은 기록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강상우 감독은 "그분들이 눈으로 목격한 것을 직접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라고 말합니다. 기록 영화로서의 <김군>은, 김군의 정체를 쫓다 마주한 김군들의 무수한 삶을 기록한, 신중하며 진실한 태도의 영화입니다.